지구 내부 구조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학창 시절 지구과학을 배운 사람들은 지진파를 이용하여 지구 내부 구조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아마 기억할 것이다. 사실 인간의 기술로 지구 내부 깊숙히 파고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에 지진파를 이용하여 지구 내부 구조를 알아내는 것은 사실상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이 수학적으로, 지구물리학적으로, 그리고 계산과학적으로도 잘 정립되어 왔기 때문에, 인류는 지구가 아닌 다른 천체의 내부 구조도 비슷한 방법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달이나 화성, 금성 등 인류가 보낸 탐사선이 착륙한 태양계 천체의 내부 구조는 인공 지진이나 자연 지진에서 발생하는 지진파를 분석함으로써 알아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교과서에 기술된 지구 내부 구조는 지진파를 통해 알아낸 것이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각-맨틀-외핵-내핵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진파는 크게 실체파 (body-wave)와 표면파 (surface-wave)로 구분되며, 지구 내부 구조를 알아내는데 활용되는 지진파는 그 중 실체파다. 실체파는 다시 P파 (primary wave)와 S파 (secondary wave)로 구분되는데, P파는 종파 (longitudinal wave), S파는 횡파 (transverse wave)의 특성을 갖는다. 종파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스프링 장난감을 생각하면 된다 (그림 1 참조). 스프링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방법으로 진동시키면 스프링의 간격이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는 파동이 진행한다. 이것이 P파다. 그래서 P파를 압축파 (compressional wave)라고도 부른다. 반면 횡파는 스프링 자체를 사인곡선처럼 위아래로 흔들었을 때 나타나는 파동이다. 이를 전단파 (shear wave)라고도 부른다. 이 두 파의 진행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지구 내부에서의 진행 특성도 달라진다. P파는 종파이기 때문에 매질을 압축하거나 팽창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진행 속도가 빠르며, 매질의 밀도에 상관없이 진행할 수 있다. 반면 S파는 횡파이기 때문에 매질을 이루는 입자를 상하좌우로 진동시키는 동작을 수반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진행 속도가 느리고, 입자들이 잘 뭉쳐있는 고체 매질은 통과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액체 매질은 잘 통과하지 못 한다.
이 두 지진파의 진행 특성이 다르다는 점을 이용하여 지질학자들은 지구 내부의 구조를 유추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P파의 전파 속도는 매질의 탄성률 (bulk and shear modulus)과 밀도 (density)의 함수로 결정된다는 점을 이용할 수 있다. 종파인 P파의 전파속도 vp는
vp = ((bulk modulus+(4*shear modulus/3))/density)^1/2
으로 주어진다. 반면 횡파인 S파의 전파속도 vs는
vs = (shear modulus/density)^1/2
로 주어진다. 두 관계식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P파의 전파 속도는 매질의 bulk modulus 까지 고려하기 때문에 S파보다 빠르다. 광학에서 다루는 스넬의 법칙 (Snell's law)은 굴절률 (refractive index)이 다른 두 매질 사이의 계면에서 빛이 굴절 (refraction)하는 원리에 대한 물리학 이론이다. 지진파 역시 물성이 다른 계면에서 굴절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물성은 굴절률이 아닌 탄성률과 밀도다. 예를 들어 P파나 S파가 A라는 매질을 지나고 있다가 전파 속도가 더 빨라지는 B라는 매질을 만나면 A-B 매질에서 더 큰 각도로 (즉, 좀 더 계면에 평행한 방향으로) 굴절된다. 반대로 B에서 더 느리다면 더 작은 각도로 (즉, 좀 더 계면에 수직인 방향으로) 굴절된다. 빛의 굴절에 대입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굴절은 공기 중에서 진행하던 빛이 물에 입사하여 굴절되는 경우일텐데, 이 경우 물에서 빛의 진행 속도가 더 느리므로 빛은 공기-물의 계면에서 물속으로 조금 더 계면에 수직인 방향으로 굴절된다. 지진파가 지구 내부로 전파될 때는 처음에는 주로 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즉, 지각에서 맨틀 방향으로 들어갈수록 압력이 높아짐에 따라 지진파의 전파 속도가 빨라지므로 점점 수평 방향으로 굴절된다. 그래서 지진파가 맨틀을 지나는 방식은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표시되는 것이다.
만약 지진파가 맨틀을 지나 외핵의 경계면 (대략 깊이 3,000 km 지점)까지 도달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주로 액체 금속으로 이루어진 외핵은 주 성분이 암석인 맨틀에 비해 밀도가 1.6배로 급상승하는 동시에 평균 탄성률은 40% 수준으로 떨어지는데 이 때문에 P파의 전파 속도는 맨틀에 비해 외핵에서는 절반 정도로 급감한다. 평균 탄성률이 급감하는 까닭은 외핵이 액체 상태이기 때문이다. 액체 매질의 shear modulus는 대부분 0에 가까운데, 이로 인해 외핵에서의 P파 전파 속도는 vp = (bulk modulus/density)^1/2 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S파는 아예 외핵에서 전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S파의 진행에 관여하는 탄성률은 오로지 전단 탄성률만 있기 때문이다. 즉, vs = (shear modulus/density)^1/2 의 관계식에서 액체 매질의 경우에는 shear modulus = 0이므로 이론적으로는 액체 매질에서의 S파의 전파 속도는 0이 된다. 바로 이 차이를 근거로 지질학자들은 P파와 S파의 진행 유무를 판별하여 외핵이 액체 상태임, 그리고 P파의 음영 각도를 기반으로 맨틀과 외핵의 경계면 깊이를 추정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림 2 참조). 흥미롭게도 S파는 다시 내핵에서 진행되는 것이 간혹 관찰되는데, 이를 근거로 내핵은 외핵과 달리 고체 상태임을 유추할 수 있기도 했다. P파 역시 외핵과 내핵의 경계에서 탄성률과 밀도의 차를 겪게 되고, 그래서 굴절된다. 이를 종합하면 그림 2에 나와 있는 것처럼 두 파의 굴절, 음영 지역 등의 데이터를 얻어낼 수 있고, 적어도 밀도와 탄성률을 기준으로 지구 내부의 층을 크게 지각-맨틀-외핵-내핵의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게 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잘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지난 2017년 1월 22일, 환태평양 조산대에 자리잡은 남태평양 솔로몬제도 Bougainville 지역에서는 규모 7.9 Mw의 대형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세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재산 피해와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이 지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의 내부 구조를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최근 2월 21일자로 네이처지의 자매지인 종합 과학지 Nature Communications에 보고된 'Up-to-fivefold reverberating waves through the Earth's center and distinctly anisotropic innermost inner core' 라는 제하의 논문*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3-36074-2
에서 호주국립대 소속 지구물리학자 Thanh-Son Pham과 Hrvoje Tkalcic은 2017년 1월 솔로몬제도에서 있었던 지진파 데이터를 수집하여 지구 내핵이 단일한 고체 상태의 금속 핵이 아닌, 적어도 두 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는 구조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하였다. 비유하자면 계란 노른자가 그냥 하나의 노른자인줄로만 알았는데, 그 안에 작은 노른자가 한겹 더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셈이다. 이들이 이용한 데이터는 다른 지질학자들도 많이 이용하는 지진파 반향 (reverberating waves)였지만, 이들은 전 세계 수백 곳의 관측소에서 기록된 지진파 데이터를 수집하여 진원지로부터 지구 내핵을 통과하여 다시 몇 번의 굴절-반사를 거쳐 왕복하며 진행된 반향 데이터를 골라내 그 데이터에 기록된 지진파의 속도 편차를 정밀하게 분석했다. 그림 4에 나온 것 같이 진원지와 관측소 사이에 이렇게 몇 번의 반사-굴절 경로를 거쳐 전달된 지진파가 제대로 분리될 수 있다면 이들이 어떤 경로를 거쳤고, 그 경로에 어떤 매질이 있었는지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원래대로라면 (즉, 내핵이 그냥 단일한 핵이었다면) 생기지 말았어야 할 지진파 속도 편차가 관측된 것. 이들은 이러한 경로 차이 뿐만 아니라, 지진으로 인한 지구 자전축의 미세한 진동 편차도 추적했는데, 이 과정에서 진원과 지구 정반대편 근처에서 기록된 데이터도 같이 분석했다. 진원과 진원 반대편 사이를 편도로 이동하는데에는 대략 20분 정도 걸리는데, 이들은 최대 5번까지의 지진파 왕복을 기록했고, 그 과정에서 지구 내핵을 통과하면서 기록된 진동 편차도 기록했다. 이러한 편차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진파의 반향에 영향을 주는 불균일 층의 존재가 있어야 했고, 이 편차를 설명하기 위한 모델에 맞춰 데이터를 fitting 한 결과 지구 내핵 안에 반지름 650 km 정도의 작은 고체 매질 핵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림 4 참조). 지름으로 따지면 대략 한반도정도 되는 크기의 미니 핵인 셈이다.
논문의 저자들은 이 새롭고 작은 미니 내핵의 정체가 무엇인지까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지구의 가장 깊숙한 내부에 있을 것이므로 밀도가 더 높은 형태의 철-니켈 금속핵일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혹은 아예 다른 결정구조를 갖는 금속핵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더 많은 지진파 반향 데이터가 쌓이면, 혹은 이전에 기록된 비슷한 왕복 반향 데이터 신호를 정밀하게 분석하면서 점차 그 정체가 드러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진파를 이용하는 연구는 비단 지구 내부 구조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석유나 광물 같은 지하자원 탐색, 광케이블 설치를 위한 지질 구조 탐색 등에도 활발하게 이용되는 방법이다. 이미 연구 역사가 오래된 방법이고 활발한 연구로 이어지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또 인류가 인류의 모행성에 대한 이해를 그야말로 한 층 더 깊게 만들어 주는 훌륭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인류는 지구를 연구할 수 있는 초분광 위성 이미지, 중력 센서, GPS 등 여러 첨단 수단을 갖추게 되었지만, 여전히 지진파 신호 분석은 지구의 가장 내밀한 부부분까지 들여다 보는 가장 좋은, 그리고 아마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는 마치 우리에게 익숙한 청진기만 가지고도 첨단 MRI로도 못 잡아내는 미세한 환자의 증상을 잡아내는 숙련된 노의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앞으로도 지진파를 이용한 지구, 그리고 지구 외의 다른 태양계 천체, 혹은 태양계 외곽의 천체 (예를 들면 성간 여행을 하여 태양계에 진입한 소행성 등)의 내부 구조를 추정하고 분석하는 방법으로 지진파는 계속 활용될 것이다. 지진파에 대한 보다 정밀한 분석, 더 새로운 수학적 계산 알고리즘, 다른 방법과의 연결을 통해 우리는 지구와 지구 외의 천체에 대한 이해를 한 층 더 깊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