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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Sep 25. 2024

[ABP: 우주 안에서 물리 상수는 늘 일정할까?]

상수의 진짜 의미

20세기 초중반, 물리학의 혁명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양대 기둥 위에서 정신없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물론 이제는 물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많이 들어봤을 플랑크,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수많은 물리학자들은 오로지 수학과 논리만 가지고도 인류가 도달하지 못 했던 자연의 가장 내밀한 비밀에 도달한다는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두 기둥은 서로 잘 어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양자역학의 초기에는 상대성이론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고, 상대성이론 (1905)의 주창자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가장 근간이 되는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기도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자연은 이 두 기둥이 각자 따로 놀게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양자역학의 핵심 방정식인 슈뢰딩거 방정식 (1926)은 전자의 상태를 확률론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상태함수를 활용하고, 그 함수의 형태는 수학적으로는 파동함수 (wave function)으로 기술됩니다. 문제는 전자가 빛의 속도에 점점 근접하는 경우에는 슈뢰딩거가 주창한 원래의 방정식만으로는 그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전자의 상대론적 효과를 고려할 수 있는 양자역학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던 셈입니다. 이 상황을 수학적으로 제일 먼저 깔끔하게 해결한 물리학자로서 폴 디랙 (Paul Dirac)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디랙 방정식 (Dirac equation)은 상대론적 양자역학의 효시가 된 방정식으로서, 원래의 형태는 전자 같은 페르미온 (Fermion, 반정수 (1/2, -1/2, 3/2 같은 수)의 스핀 (spin)을 갖는 입자를 통칭)의 거동을 설명하기 위한 방정식이었습니다.


디랙이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양자역학에 상대론적 효과를 도입한 결과물이 수학적으로 깔끔하게 기술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우선 전자의 상대론적 에너지와 운동량 관계식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식을 미분방정식 형태로 거슬러 올라가고자 했는데, 그 이유는 방정식의 결과물로 얻어지는 파동함수의 확률을 양수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유도한 방정식은 4개 성분을 가지는 (즉, 수학적으로는 4차원) 파동함수였는데, 그가 얻은 결론은 전자 같은 페르미온에는 전자의 자유도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스핀 같은 특성이 존재햐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디랙이 자신의 방정식을 유도하고 그 해를 들여다보고 있던 시점에는 전자의 스핀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학적 정합성만 따졌을 때는 스핀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핀이라는 용어는 언뜻, 피젯스피너처럼 뭔가 회전하는 뉘앙스를 품고 있지만, 실제로 팽이처럼 전자가 회전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유비적 장치로 팽이를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저 편의적 장치를 뿐입니다. 대신 그 유비를 조금 더 흥미롭게 활용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자를 공으로 생각해 봅시다. 전자는 전하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뭔가 대전된 금속구를 상상하면 될 것입니다. 이제 이 금속구가 어떤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당연히 강체의 회전에 해당하는 각운동량 (angular momentum)이 있을 것이고, 회전하는 전하의 전자기유도에 의한 자기모멘트 (magnetic moment)가 생성될 것입니다. 이들의 비율을 자기회전비율 g (gyromagnetic ratio)라고 하는데, 이론적으로 g는 다음과 같이 유도될 수 있습니다.


g = 2*(1 + (alpha/(2*pi) + ...)


위의 식에서 alpha를 미세구조상수 (fine structure constant)라고 부릅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한 이론체계는 이후 양자전기역학 (quantuem electrodynamics, QED)로 발전했는데, 이는 양자장론 (quantum field theory, QFT)라고도 불립니다. 양자장론은 이후 현재 인류가 우주의 기본 원리 (즉, 기본 입자와 기본 힘)를 이해할 수 있는 표준모형 (standard model)의 근간이 됩니다. 바로 이 양자장론은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한 가장 정교한 이론적 모형이기도 한데, 정말 흥미롭게도 양자장론을 통해 이론적으로 계산된 자기회전비율의 값이 정말 놀랍도록 실험적으로 정밀하게 관측된 값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QED로 계산된 g값 (더 정확히는 (g-2)/2의 값)은 이렇습니다.


(g-2)/2 = 0.001 159 652 181 643 (764)


뒤의 괄호는 에러범위에 들어가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실험적으로 관측된 g값은 이렇습니다.


(g-2)/2 = 0.001 159 652 180 73(28)


실험적으로 g값을 측정하는 정밀도는 레이저 기술의 발전이나 측정 센서의 정밀도 향상 등으로 인해 계속 높아지고 있으나, 값 대부분에는 큰 변화는 없고 소숫점 맨 마지막 자리의 에러범위가 조금씩 좁아지고 있을 뿐입니다. 위의 두 값을 비교해 보면 알겠지만 이론적으로 예측된 값과 실험적으로 측정된 값은 소숫점 11자리까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대략 1/800억 정도의 정밀도 범위 안에서 이론과 실험이 일치하는 셈입니다. 현생 인류가 지구 상에 출현한 이후, 지금까지 200만년 넘는 시간 속에서 꾸준히 이룩해 온 지식과 과학의 업적은 다양하지만, 이 정도 정밀도의 완벽한 성취는 아마도 그 중에서도 아주 눈에 띄는 업적일 것입니다. 그 정도로 이 미세구조상수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자부심은 대단했고, 측정이 정밀해지면 정밀해질수록 오히려 아주아주 미세한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한 탐구가 이어지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치 사실 자체는 전자는 양성자나 중성자처럼 그것을 이루는 또 다른 입자가 있는 것이 아닌, 그냥 전자 자체가 기본 입자라는 것, 즉, 그 안에는 다른 하부 구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연구는 엉뚱한 방향으로 다른 흥미로운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미세구조상수를 뒤집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1/alpha 값이 대략 137이 나왔습니다. (더 정확히는 137.035999...) 미세구조'상수'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숫자는 단위가 없는 그냥 상수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 비율을 지구 어디에서 측정하든, 그리고 아마도 우리 은하계 어디에서 측정하든, 그리고 더더욱 아마도 우리 우주 어디에서 측정하든 똑같아야 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마치 빛의 속도가 우주 전체에서 일정할 것이라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미세구조상수를 이루는 요소를 다시 한 번 살펴 봅시다. 


alpha = (e^2)/(4pi*eps0*c*hbar)


여기서 e는 기본전하량, eps0는 진공에서의 유전율, c는 빛의 속도, hbar 는 플랑크상수 (h)를 2pi로 나눈 값입니다. 이 관계식은


alpha = (e^2/(4pi*eps0*r))/(hc/lamba), lambda = 2*pi*r


로 쓸 수 있습니다. 이는 반지름 r인 구 형태의 전자 (하전입자) 두 개가 r만큼 떨어져 있을 때의 정전기적 척력에 의한 에너지와 그 입자 한 개가 자신의 지름만큼의 파장을 가질 때의 에너지의 비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원리만 놓고 보자면 미세구조상수를 결정하는 요인은 오로지 기본전하량과 진공의 유전율, 그리고 플랑크상수 밖에 없으므로, 이 세 가지 기본 물리적 상수가 일정하다면 미세구조상수도 일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 우주 안에서라면 이 기본 물리적 상수가 달라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미세구조상수도 일정해야 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지난 2020년 4월, 호주, 영국, 폴란드, 포르투갈, 독일, 이탈리아, 미국의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연구진은 VLT (very large telescope)를 이용한 심우주의 퀘이사 (quasar)에 대한 근적외선 관측 결과를 분석한 결과, 이 미세구조상수가 우리 우주에서 꼭 일정한 값이 아닐 수 있음을 Science Advances지에 'Four direct measurements of the fine-structure constant 13 billion years ago'라는 제하의 논문으로 보고했습니다.*(*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ay9672


이 논문에서 연구진은 이 퀘이사를 둘러싼 전자기력을 측정하고, 그 데이터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물은 사뭇 흥미로웠습니다. 미세구조상수의 변동값을 delta_alpha라고 한다면 delta_alpha/alpha0의 값이 -2.18 (+-7.27)*10^-5 정도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즉 원래의 값보다 약 0.002% 정도 차이나는 것처럼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주 미세한 차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이 미세구조상수를 계산한 이론값과 실험값이 1/800억 수준에서의 정밀도 안에서 일치하고 있었음을 생각해 보면 이는 정말 큰 편차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이 정도 편차가 우연히 나올 확률은 0.007%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즉, 우연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편차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주 먼거리에 있는 퀘이사 근처의 우주 환경은 우리 지구가 있는 우주의 환경과 다르기라도 하다는 것일까요? 우리 우주의 이곳저곳은 사실 기본전하량이나 플랑크상수나 진공유전율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라도 한다는 것일까요? 물론 아직 그러한 속단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실험적으로 미세구조상수의 측정 정밀도는 계속 향상되고 있지만, 정작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천체를 관측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데이터의 정밀도는 여전히 그 수준에는 미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복된 관측과 다른 대상에 대한 관측 데이터가 계속 쌓이고 이 편차가 계속 재현되거나 더 확실한 근원이 밝혀진다면 실제로 미세구조상수가 다를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미세구조상수가 특정한 값으로 (즉, 단위에 상관없이) 수학적으로 정해진 것 자체가 누군가 이 우주를 창조한, 그리고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을 정도로 우주가 진화할 수 있게끔 미리 조정한 (이를 미세조정우주 가설이라고도 합니다) 증거가 아니겠는가 주장하지만, 제 개인적 의견으로는 그것은 불가지론과 딱히 다를 바 없는 추측일 뿐입니다.


유전체 막에 전자기파를 조사했을 때 관측되는 양자 홀 효과에 따른 패러데이 회전 (source: TU Wien)


적어도 우리 우주 안에서의 미세구조상수가 정말 조금씩 차이가 나는지를 더 명확하게 밝혀내기 위해서는 그 측정 방법이 바뀌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와계 천체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는 방법에 의존하고 있는데, 최근 오스트리아와 미국의 과학자들은 다른 측정 방법을 개발했습니다.*(*https://aip.scitation.org/doi/10.1063/5.0105159)


그들은 Applied Physics Letter지에 보고한 'Universal rotation gauge via quantum anomalous Hall effect'라는 제하의 논문에서, 정수 단위의 양자 홀 효과 (integer quantum hall effect)를 연구하기 위한 과정에서 찾아낸 특이한 결과를 설명했습니다. 어떤 물질에 레이저 빛을 조사할 경우, 만약 그 막이 전자기파의 편극 방향 (polarization)을 바꿀 수 있다면, 그 물질의 전자기적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경우 편극 방향 변화는 대개 그 물질이 두꺼울수록 잘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진이 찾은 방법은 아주 얇은, 수 나노미터 수준의 두께를 갖는 얇은 유전체 막(dielectric thin film)에 레이저를 조사하여 편극 방향을 측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막에 조사된 레이저 빛은 편광 방향이 연속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점프하듯 바뀌었는데, 그 점프 각도의 단위를 측정해 보니 정확히 미세구조상수와 일치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편광 변화 각도 측정만으로도 미세구조상수를 측정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정밀한 실험 측정 방법은 하전된 입자와 전기장 혹은 자기장과의 상호작용을 측정하면서 다른 기본 물리상수로 이를 연산하는 방법을 취했는데, 그런 과정 없이도 이제는 직접적으로 한 번에 미세구조상수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열린 셈입니다. 


물론 이 방법이 정말 정밀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는 그 편광 방향을 얼마나 정밀하게 (예를 들어 1/1000억 수준의 각도 분해능) 측정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정밀도가 충분히 보장되는 장비가 개발된다면 이제 이 장비를 이용하여 아주 먼 (즉, 아주 오래된) 천체로부터 오는 빛의 편광을 직접적으로 측정하여 이로부터 그 우주 (혹은 그 시점)에서의 미세구조상수를 측정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 우주가 장소에 따라 혹은 시간에 따라 미세구조상수가 조금씩 바뀌어 왔는지, 정말 그랬다면 어떤 상수가 바뀌어 온 것인지, 정말 그렇다면 수십, 수백억년 전의 원자나 분자를 구성하는 방식이 지금과 얼마나 차이가 났을지, 더 나아가 우리 우주의 진화가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인지 등 정말 흥미로운 질물과 답으로 이어지는 탐구의 여정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주 오래 전 수학과 물리에 관심이 많던 제 친구의 전화번호에는 1137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는데, 그 친구가 우리 우주에서 절대 변하지 않을 단 하나의 진리인 1/137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강조했던 일화가 생각납니다. 137은 그 자체로도 소수이며, 137을 이루는 3과 7도 소수이고, 37도 소수이며 13도 소수이고, 17도 소수입니다. 즉, 137은 1을 제외하면 어떻게 조합해도 모두 소수입니다. 물론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정말 137이라는 숫자 속에 우리 우주의 비밀이 감춰져 있다면, 그리고 그 비밀이 알고 보니 더 큰 비밀을 감추고 있는 입구에 불과한 것이라면 정말 흥미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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