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반도체 산업에 주는 교훈훈
한국에서 2024년 12월 초 정말 뜬금없는 계엄령으로 급작스런 사회 혼란의 시기가 왔을 때, 미국의 인텔에서는 CEO 팻 갤싱어 (Pat Gelsinger)가 조용히 은퇴를 선언하고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갤싱어는 전임 CEO인 ㅋ모씨보다는 더 기술 이해도가 높고, 무엇보다도 본인 스스로가 1980년대 386 시절부터 설계-공정을 아우르는 모든 분야를 굴러본 40년 인텔맨이었기 때문에, 갤싱어에 거는 기대는 내외부에서 어느 정도는 있었다. 갤싱어는 특이하게도 설계 엔지니어 출신 (예를 들어 80386을 거쳐 80486 설계의 실질 주역 중 한 명)이었지만, 파운드리 공정 설계에도 참여하고 장비도 만질 줄 아는 드문 공정쟁이이기도 했다. 반도체에서 설계와 공정을 모두 잘 아는 엔지니어를 찾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인텔의 CTO였던 갤싱어가 잠시 인텔을 떠나 있다가 다시 CEO로 영전되어 들어온 후 물려받은 인텔의 상황은 이미 많이 기울어져가는 타이타닉 같은 상황이었다. 인텔은 일찍이 2000년대 중반부터 모바일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실제로 2008년 야심작이었던 아톰 시리즈 AP를 출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별로였다. 애초에 모바일 환경에 어울리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는지 인텔의 아톰은 별 성과가 없었고, 결국 2016년 인텔은 적자만 보던 모바일 AP 사업에서 철수했다. 인텔이 야심 차게 준비한 GPU 사업 역시 2010년 인텔의 야심작이었던 GPGPU인 라라비가 취소되면서 사업을 접었다. 무엇보다도 인텔이 전통적으로 강점을 가지고 있던 파운드리 공정 기술의 진화와 안정은 2010년대 내내 죽을 쑤며 TSMC와 삼성에게 기술의 리더십을 내어 준 상황을 초래했다.
갤싱어가 CEO에 취임하던 2021년 초, 인텔의 상황은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별로 안 보였던 상황이었지만, CTO 출신이었던 갤싱어가 뭔가 해주겠더니 하는 기대가 있었는지, 어쨌든 인텔의 주가는 반짝하면서 8% 정도 올랐다. 시장은 정말 그에게 일말의 인텔 체질 개선에 대한 책임 완수에 대해 기대를 하는 상황이기도 했던 것으로 보이나, 사실 인텔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텔이 있어온 40년 IDM 역사가 더 이상 이어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점이었다. 더구나 설계-제조-OEM까지 혼자서 다 하는 구조이다 보니, 제대로 된 팹리스 고객사라는 개념이 있을 리 없고, 따라서 반도체 생태계 확장 전략이 부재한 상황을 너무나 억지로 늦게까지 끌고 왔다는 것은 인텔이라는 공룡이 바뀌고 있는 시대에 적응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2010년대 내내 인텔을 향한 시장의 의심은 도대체 왜 칩을 제대로 못 만드냐는 것, 그리고 과연 스스로 설계한 제품을 스스로의 파운드리에 만드는 것이 경쟁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갤싱어가 취임하기 전부터 인텔에 대한 주주들, 고객들의 요구는 슬슬 파운드리를 분리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IDM의 사업을 창립한 주역인 인텔의 자존심이 허락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텔더러 자기가 설계한 CPU를 자존심 접고 TSMC에 가서 만들라는 요구, 떼어낸 파운드리는 레거시로 돌려서 그냥 돈 되는 안정적 공정만 하라는 제안 등은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을 것이다. 인텔의 영혼을 버리라는 뜻 같았을 것이다.
어쨌든 무거운 기대와 책무 속에 신임 CEO가 된 갤싱어는 이러한 내외부의 압박을 이겨내려 인텔의 사업부 구성을 조금씩 변혁시켰다. 예를 들어 취임 첫 3개월 동안 그는 인텔의 데이터 플랫폼 그룹을 2개의 사업부로 나눴는데, 이는 급격히 바뀌는 AI 데이터센터 시장을 노리는 전략이었다. 한 사업부는 데이터센터+AI그룹으로, 또 다른 사업부는 네트워크 플랫폼, IoT, connected 부문을 맡는 방식으로 분리했는데, 이는 다분히 AI 반도체로 가는 전진 기지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AI 반도체로 가기 위한 전진 기지는 그냥 부서만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하드웨어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실력이 있었느냐로 결정된다.
사실 2021년에도 이미 AI 반도체, 즉, GPGPU에서는 엔비디아가 독주하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정작 인텔이 따라잡아야 하는 상대는 멀리 가버린 1위 엔비디아가 아니라, 자신을 턱밑까지 쫓아 온 2위 AMD였다. 2020년 기준으로, 10년 전만 해도 인텔에게 있어 AMD는 마치 10년 전의 삼성에게 있어 하이닉스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갤싱어는 AMD를 견제하는 동시에 엔비디아를 따라잡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었지만, 당장 2위를 놓고 다투던 AMD에 대한 견제부터 그의 전략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취임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 인텔의 제조 능력이 돌아왔고, 동세대에서는 AMD를 충분히 압도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치는 인터뷰를 했다.*
*"AMD has done a solid job over the last couple of years. We won’t dismiss them of the good work that they’ve done, but that’s over with Alder Lake and Sapphire Rapids."
물론 이는 갤싱어가 시장 상황을 오판해서였기보다는, 인텔 투자자들에게 인텔의 자신감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에 기반한 의견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갤싱어는 AMD를 좀 많이 과소평가했고, 인텔은 반대로 좀 많이 과대평가했다. 인텔이 2021년 하반기에 출시했던 12세대 엘더레이크는 인텔7 공정으로 제조되었는데, 정작 더 저사양으로 생각되던 AMD의 라이젠 7600 시리즈와 비슷하거나 더 떨어지는 벤치마크 성능 수치를 보였다. 인텔7 공정 스펙대로라면 라이젠 7900보다 더 벤치점수가 높게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더 떨어졌던 것이다. 여기에는 공정 수율 이슈도 있었지만, 설계 이슈도 있었다. 인텔은 12세대부터 하이퍼쓰레드(HT) 아키텍처를 좀 더 최적화한 변화를 주었는데, 이것이 잘 설계되었다면 로직칩 성능 향상에 도움이 되었겠지만, 설계에 미스가 있을 경우 오히려 HT 기능을 꺼야만 겨우 칩이 돌아가는 결과가 초래되므로 (마치 엄청 비싼 옵션을 넣어 자동차 가격이 올라가는 동시에 자동차 내부는 좁아졌지만, 정작 그 옵션이 고장 나면 제값도 못할뿐더러, 여전히 좁은 실내에 있어야 하는 상황과 비슷) 없느니만 못한 상황이 초래되었던 것. 가격마저도 AMD 라이젠보다 더 비싼 상황이라 시장에서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설계 이슈는 늘 있었던 것이라 차치하고서라도, 인텔의 파운드리 공정 기술의 정체는 정말 답답할 지경이었을 것이다. 노드 숫자는 계속 내려가는데 (즉, 10나노 이하에서 점점 7, 6, 5나노 등으로 낮아지는 상황), 그에 걸맞은 트랜지스터 집적 밀도 향상은 스케일링 로드맵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발열 문제는 계속 잡히지 않고, 공정 원가는 계속 올라가는 상황은 갤싱어 체제에서도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갤싱어는 2022년 여름, 당시 인텔 제품 생산에 제일 많이 투입되던 10나노 공정 (인텔7 공정에 해당) 원가를 낮췄다는 발표를 한 적도 있었지만, 이러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문제는 인텔이 12세대를 넘어 슬슬 13세대 랩터레이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인텔7 공정의 수율이 무조건 안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상황은 부정적이었다. 수율이 안정되기는커녕, 원가를 통제할 수 없어, 결국 13세대 출시가는 12세대보다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AMD에 점점 밀리고 있던 형국에, 칩 제조 가격 경쟁력은 계속 떨어지니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것.
인텔은 사실 소비자 PC용 CPU보다는 데이터센터용 프로세서 시장이 본진인데, 2023년에는 이 시장마저도 인텔의 경쟁력이 신통치 않았다. 인텔은 이 시장을 타깃으로 원래 2023년 중에 서버용 ASIC인 사파이어 래피드를 출시할 예정이었으나, 그 출시 시점은 2025년 이후로 미뤄졌다. 가장 큰 이유는 인텔7 공정 안정화가 아직도 미지수였다는 것과, 원가 통제에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그즈음 갤싱어와 인텔 경영진은 로직반도체에 더욱 집중하겠다며 주변 사업들을 과감하게 쳐내기도 했는데, 인텔이 꽤 오랜 시간 공들여온 차세대 반도체 기술 중 하나인 실리콘 포토닉스(Silicon Photonics) 마저도 2023년 말에 Jabil에 넘겨 버렸다. 이러한 주변 정리는 갤싱어는 취임 초기에 확인했던 오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주변 사업을 정리하면서 당장 굴릴 수 있는 현금 확보에 더 치중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미 그 시점부터 갤싱어는 자신의 힘으로는 현 상황, 현재의 축적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2023년 말, 2024 CES를 앞두고 갤싱어는 14세대 메테오레이크를 발표했는데, 14세대부터는 공정이 인텔7에서 인텔4 공정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는 나름 상징적인 매듭처럼 보였다. 인텔7 공정의 삽질은 잊어달라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추진한 인텔4 공정도 사실 알고 보면 TSMC 기준으로 따진다면 7나노 공정에 해당한다. 양산 시점으로만 따진다면 2023년의 인텔4 공정은 이미 2018-2019년 사이에 양산에 투입된 TSMC 7나노 공정에 비해 대략 4-5년 정도 격차가 나는 수준이다. 이를 잘 알고 있던 갤싱어는 굳이 변명하지 않고 곧이어 인텔3 공정 (TSMC 4나노 공정에 해당)을 거쳐 인텔20A 공정으로 (TSMC 2나노 공정에 해당) 15세대 애로우레이크를, 그리고 인텔18A 공정으로 (TSMC 1.8나노 공정에 해당) 16세대 퓨처레이크로 진화하는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화려한 로드맵과는 달리 이미 인텔7 공정부터 누적된 파운드리 공정의 진화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 문제는 당연히 진화를 가로막는 공정 상의 수많은 기술적 이슈들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
예정대로였다면 지금쯤 (2024년 말), 인텔은 인텔20A 공정을 넘어 인텔18A 공정으로 진입하면서 16세대 퓨처레이크 양산 계획을 발표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최근 보고된 (첨부 그림 1 참조) 인텔18A 공정의 수율이 정말 말 그대로 너무나 처참하기 때문이다. 인텔18A 공정은 그 네이밍이 의미하는 것과는 달리 TSMC의 1.8nm 공정과 절대 같은 스펙이 아니다. 트랜지스터 집적도로만 따진다면 (사실 파운드리에서 붙이는 노드 숫자는 물리적 해상도 (half-pitch) 크기가 아니라 트랜지스터 집적도로 환산되는 일종의 테크노드 관용어구임) 인텔18A 공정은 TSMC 3나노 공정과 수준이 비슷하다. 참고로 TSMC 3나노 공정인 N3E는 이미 2023년 하반기부터 양산 공정에 투입되었는데, 여기의 가장 큰 고객은 애플이고 다음이 엔비디아다. 만약 인텔 공정이 이 정도 스펙을 갖춘 양산 체제 공정이었다면 인텔의 15, 16세대 CPU는 물론, 데이터센터용 ASIC 성능도 꽤 좋았을 것이지만, 실제 성능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인텔의 기술 진화 속도 정체, 특히 파운드리에 분야에서의 난맥상은 당혹스러운 문제였다. 인텔은 2024년 초 IFS (인텔파운드리서비스)의 출범을 발표했고, IFS 중심의 파운드리 생태계를 만들어 고객을 위한 파운드리로 거듭나겠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것이 인텔이 자사의 파운드리를 분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실제로 갤싱어는 파운드리 분사는 없을 것이라 2023년 말에 이미 여러 인터뷰에서 언질 한 바도 있었다. 인텔이 차라리 파운드리 분사, 나아가 아예 법인 분리를 발표했다면 모를까, 결국 파운드리라는 것이 고객 물품뿐만 아니라, 인텔 CPU, ASIC를 제조하는 라인을 공유한다면, 고객사들은 그러한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가 아무리 GPU 생산이 급해도 TSMC를 패스하고 IFS에 물량을 위탁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갤싱어와 인텔의 경영진이 믿고 있던 복안 중 하나는 2024년에 받게 될 바이든 정부 칩스법 하의 보조금 대략 200억 달러, 국방부가 주문한 군사용 칩 제조 물량 30억 달러 정도를 이용하여 공정 기술 개선을 이루고 파운드리 공정 양산 진화를 하는 것이었겠지만, 칩스법 보조금은 아직 지급되기 전이고, 그나마도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서 지급될지 여부마저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인텔은 UA LINK 같은 나름의 미국 AI 반도체 생태계 형성에도 한 번 승부수를 던져보려 했지만, 엔비디아 진영의 경쟁력이 너무 막강하여 메타, 알파벳, 아마존 같은 미국 주요 팹리스들 입장에서 인텔의 뒤떨어지는 파운드리에만 의존하는 것은 너무나 리스크가 크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그러한 인텔의 승부수마저도 여전히 신통치 않은 상황이다. 갤싱어는 2023년 말, 엔비디아가 지배하는 AI 반도체 시장의 핵심 기술이 다름 아닌 CUDA에 있다고 인식하는 우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현재 AI 업계가 엔비디아의 표준 같은 CUDA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식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인식이었다. CUDA가 AI 반도체를 활용하기 위한 고객사들에게 중요한 진입 장벽인 것은 맞지만, CUDA는 진입 장벽을 목표로 만들어진 기술이 아닌, 사용자의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인터페이스에 불과한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엔비디아가 가진 진짜 경쟁력인 core + memory + 2.5D packaging + data bus & link의 칩렛 및 집적을 위한 설계-공정 동시 최적화 기술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은 갤싱어의 현실 파악 능력이 거기까지였음을 보여준다. (혹은 아마 알면서도 제대로 말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주주 눈치 때문에.) 차라리 인텔이 엔비디아로 쏠리고 있던 고객사 중 일부라도 잡기 위해 CUDA 호환 가능한 칩을 더 싸게 만들겠다는 전략을 보였다면 그나마 AI 반도체로 조금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승산이 조금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인텔 경영진과 갤싱어는 과거 인텔의 선배들이 쌓았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였고, 인텔의 체질을 개선, 특히 AI 반도체 시장에서 이 거대한 공룡이 살아남게 만들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던 CEO가 엔비디아의 상황을 그저 운이 좋았다든지, 그들이 만든 GPU가 시대를 잘 만났다든지, 자신이 인텔에서 나와 있던 시간을 엔비디아가 기가 막히게 타이밍 맞게 잘 이용한 것뿐이랄지 하는 일종의 정신승리를 시전하고 있었으니 체질 개선은커녕, 문제는 누적될 뿐이었다.
어쨌든 파운드리에서부터 문제가 하나씩 풀려 나갔어야 했던 인텔은 자신 있게 밀었던 18A, 그리고 2세대 EUV 공정에서 모두 10% 미만이라는 극악의 수율을 기록하게 됨으로써 (실제로 2세대 EUV는 수율이라는 개념조차 현재 측정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알려져 있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실패하였다. 갤싱어가 자신 있게 TSMC의 3나노 공정, 나아가 1.8나노 공정과 1:1로 붙을 수 있다고 자신했던 인텔18A 공정은, 정작 TSMC의 1.8나노 공정은커녕, 1년 빨리 양산에 들어간 TSMC의 N3E 같은 3나노 공정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수율을 기록하게 됨으로써, 공정 개발에 들어간 250억 달러가 블랙홀로 사라지는 결과만 초래했다. 참고로 TSMC의 2024년 하반기 기준, 3NE 공정 수율은 무려 90%에 달한다.
어찌 보면 예견되었던 문제들 (예를 들어 1세대 EUV를 건너뛰고 2세대로 바로 진입, 테스터 없이 연구-양산 간격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문제, 선행 공정 문제 해결 없이 다음 세대 공정 바로 진입, 팰리클, 마스크 문제 해결 없이 바로 진입, 고객사 수요와 기술 개발 방향 무시하고 자사의 로드맵만 고집 등)를 그냥 묻어두고 몇 년 내로 승부를 걸려 했던 갤싱어는 스스로 그 결말을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CEO로서 자신의 시한은 얼마 남지 않았으며, 연이은 CPU 성능 저하와 시장 장악 실패,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AI 반도체 교두보와 그를 위한 공정 기술 안정화를 이루지 못한 책임은 결국 CEO가 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텔의 주가는 연이은 기술 개발 난맥과 시장의 시원찮은 반응으로 인해 2024년 내내 급락을 거듭했고, 이제 인텔을 10개 팔아도 엔비디아를 사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으며, 퀄컴 같은 팹리스 업체들이 외려 인텔 파운드리 인수를 타진한다는 소식까지 나오게 되면서 인텔의 위상은 추락했고 동시에 갤싱어의 리더십 자리는 줄어들었다. 갤싱어는 1,200만 달러의 퇴직금을 받으며 반도체 업계를 떠나게 되었지만 (물론 다른 업체로의 복귀 가능성은 여전히 있음), 인텔이라는 공룡이 과연 이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는 미지수다. 2024년 12월 4일 자 로이터에 보도된 인텔의 임시 CEO David Zinsner 인터뷰를 보니 인텔의 경영진들은 아직도 파운드리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There's nothing fundamentally challenging on this node now. It is about going through the remaining yield challenges, defect density challenges," he said."
인텔 경영진은 여전히 인텔18A 공정에는 큰 문제없다면서 '수율 문제와 defect 문제만 잡으면 됨'이라고 하면서 현실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요리에 실패한 요리사가 '요리는 문제없음. 재료와 소스 문제만 해결하면 됨' 이러는 것과 같다. 결국 이런 식의 숙제 미루기가 계속되면 인텔 입장에서는 적자만 누적되는 파운드리에 대해서 분사 외에는 답이 없을 것이고, 인텔은 전통적인 CPU보다는 맞춤형 ASIC과 ARM 기반 인공지능 전용 칩 설계 팹리스 기업으로 거듭나는 경로를 택해야 할 수도 있다. 이는 인텔의 IDM 시대가 끝나고, 인텔이 여러 자회사로 분사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음을 의미한다.
인텔의 상황은 비슷한 IDM 모델을 이용하여 약 30년 동안 반도체 업계에서 성장해 온 삼성전자에게 있어서는 정말 좋은 레퍼런스이자, 반면교사이자, 결국 제대로 대응 못 하면 그대로 밟게 될 전철의 사례가 될 것이다. 물론 주로 메모리반도체에 집중해 온 삼성과 인텔을 1:1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삼성도 2010년대 들어 파운드리에 본격 투자하기 시작했고, 어쨌든 로직반도체, 특히 AI 반도체로 가는 길목에서 이 파운드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인텔의 사례를 충분히 숙지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삼성 내부에서도 이미 문제가 무엇인지는 대부분 파악했겠지만, 그것에 대한 솔루션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인텔에게는 거슬러 올라가자면 2006년부터 지금까지 그런 기회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결국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그 착오에서 얻은 교훈을 충분히 되새기지 않고 무리한 사업과 공정 건너뛰기가 누적된 끝에 이제는 정말 절벽으로 몰리는 위기 상황 밖에 남지 않았다. 삼성이 이러한 업계 선배 인텔의 경로와 현 상황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고 깨달아야 하는지는 삼성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물론 삼성에게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