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을 하기 위해서는 융합을 멀리해야 한다는 역설
가장 男子다운 취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女裝이다. 단어의 정의 상, 여장은 남자만이 할 수 있고, 따라서 여자에게는 형용모순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장 남자다운 취미가 되는 역설이 되는 것이다. 이 농담 아닌 농담은 꽤 잘 알려진 우스갯소리다.
비슷한 논리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융합을 잘하려면 융합을 멀리해야 한다.
이게 무슨 얼토당토 하지 않은 이야기인가? 융합을 잘하려면 당연히 융합을 좋아하고 가까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애초에 융합이라는 것이 서로 다른 분야를 한 군데 모아 섞는 것임을 생각해 보면, 이는 당연한 이야기다.
탕수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돼지고기와 전분과 튀김가루와 야채, 그리고 각종 소스가 필요한데, 이들 재료는 서로 성질이 완전히 다른 것들이다. 그런데 맛있는 탕수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 재료가 각자의 풍미를 지켜야만 한다. 그런 시도는 한 번도 안 해 봤지만, 최고의 탕수육을 만들겠다고 전국 각지의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모아 커다란 웤에 넣어 불나게 섞고 볶으면 정말 최고가 될까? 그냥 원래 탕수육의 맛이나 남아 있으면 다행일 것이다.
한 때, 학계에서는 융합 열풍이 불었고 지금도 그 경향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융합 때로는 융복합이라는 희한한 용어가 분야 가리지 않고 유행처럼 번졌고, 많은 학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과제 기획이든, 지원 프로그램이든, 학교 차원에서의 드라이브든, 뭐든, 일단 융합을 해야 뭐가 될 것 같으니 너도나도 융합을 외치고 복합을 외쳤다. 실로 많은 과제, 프로그램, 심지어는 대학원이나 학과가 그 과정에서 명멸했으며, 어느샌가 원래 A전공, B분야의 전문가였던 학자와 연구자들은 부지불식간에 C전공, D 분야의 전문가로 둔갑해 있었다.
몇 년 전 학회에서 만난 선배 한 명이 기억난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 그 양반은 원래 전공은 물리학이고, 박사는 고체물리로 받았으며, 포닥은 화합물 반도체를 했던 양반이었다. 그런데 학회에서 본 그는 리튬 배터리와 솔라셀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마침 나도 솔라셀을 조금 연구할 때라 솔라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선배가 '야. 그런데 너도 솔라셀하냐? 넌 원래 계산 쪽 아니야?'라고 묻길래, '형, 형은 원래 GaAs 소자 하던 양반이 웬 유기 태양전지예요?'라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더니 '순진한 소리 하네. 요즘 에너지 재료 쪽 연구 안 하면 돈이 전혀 안 돼요. 학생들도 안 와요. 일단 발이라도 걸쳐야 해. 유남생?' 이렇게 답변이 되돌아왔다. 그 선배는 요즘엔 광 메타 재료 쪽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근래에 만났던 지방 사립대에 재직 중인 동료는 '요즘엔 웬만한 지방 사립대는 기초과학을 독립된 학부로 안 키워요. 알아서 사라져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물리학과, 화학과, 생명공학과를 합쳐서 하나로 만들려고 하는데, 도대체 이렇게 합치면 뭐가 되는 겁니까? 어차피 돈도 못 따 오고 대학원생도 못 받는 처지지 알아서 구조조정하라는 이야기인가요?'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대부분 이런 과정에서 괴물처럼 합쳐진 학과들은 '융합 xxxx학과, 학부' 등으로 개명된다.
물론 연구자나 학자들이 평생 한 주제만 연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학교에 따라서는 유사해 보이는 프로그램을 조정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융합은 항상 그럴듯한 핑계가 되는 것만도 아니고, 미명으로 치장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목적일 수도 없고, 수단일 수도 없다. 융합은 각 분야의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의기투합하든, 실리적으로 게임을 나누든, 어쨌든, 잠깐 한 팀이 되어 하나의 목적을 해결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 목적을 달성했거나, 문제가 풀렸다면, 혹은 설사 그렇지 못했더라도, 서로의 필요가 없어졌고, 실리가 남아있지 않으며, 의기투합의 추진력이 떨어졌다면 자연스럽게 일몰이 되는 것뿐이다. 여러 재료를 볶아서 탕수육을 만들었고, 그 탕수육을 맛있게 먹었다면 그것으로 효용은 다 한 것이다. 탕수육을 만드는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탕수육의 효용은 뒷전으로 미룬 채, 계속 웤에서 볶기만 하면 그 중국집은 그냥 탕수육 집이 되어 버린다. 당연히 탕수육에 질린 손님들의 발길은 점점 끊기게 될 것이다. 탕수육을 만드는 과정에서 1차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것은 탕수육의 맛을 최고로 만드는 것이고, 2차적으로 얻어야 하는 것은 좋은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고 각 재료의 풍미를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는 시행착오, 그리고 그 끝에 얻어지는 노하우다. 탕수육을 잘 만드는 중국집은 다른 요리도 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탕수육만 줄곧 만드는 중국집은, 제일 간단한 짜장면 조차도 형편없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탕수육만 만들기 때문에 금방 매너리즘에 빠지고, 결국 맛에 대한 연구는 답보를 넘어, 퇴화할 가능성마저 생긴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융합 전문가 100명을 모으면 더 창의적이고 창발적인 융합이 되는가? 절대 아니올시다 다. 오히려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흥미에 의해, 우연에 의해, 재미를 위해, 그리고 확연한 목적에서 비롯되는 필요에 의해 모여서 뚝딱거려야 겨우 될까 말까 한다. 나는 연구자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내 분야뿐만 아니라 굉장히 이질적인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동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의 전문 지식이라고 해도 꼭 그 전문 분야에만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그 지식과 스킬이 다른 분야에 접목되었을 때 훨씬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될 수 있음을 많이 경험했다. 예를 들어 3D printing을 이용하여 그래핀-고분자 복합재를 헬멧형 EEG sensor로 만드는 연구에 참여했던 적이 있는데, 그 연구에서 나는 통계물리학의 percolation model, 이미지 처리나 신호처리에서 다루는 wavelet analysis, 재료공학에서 다루는 재료역학 모델링을 주도하였고, 그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실험하는 공동연구자와 긴밀하게 공유하여 그 결과를 좋은 연구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과정에서 얻은 경험은 다른 연구에도 발전적으로 응용될 수 있었는데, 예를 들면 혈관이나 신경에 부착할 수 있는 고분자 기반 전극 재료 관련 연구가 그렇다. 이 연구에서는 고분자 재료의 기계적 변형 모델링, 신경세포가 보이는 signal에 대한 웨이블릿 분석 등에 대한 기여를 하였다. 사실 신경생리학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만약 처음 하는 연구였다면 많이 헤맸겠지만, 다행히도 앞서 했던 EEG sensor 관련 연구에서 적용했던 내 지식과 기술들이 통용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크게 무리 없이 다른 분야 학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되었고, 또 몇몇 중요한 데이터들을 잘 처리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연구들이 융합 전문가들로만 이루어진 팀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과연 이 정도로 풍부한 데이터와 깊이가 더해질 수 있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융합 전문가들은 융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볼 기회를 포착하기 힘들다.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해도, 어디까지 깊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면, 결국 그 깊이는 구글링 해서 나오는 정도가 한계다. 구글링 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라면 사실 굳이 융합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관심만 있다면 아는 척할 수 있으며 잘하는 척할 수 있다. 다만 막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그러한 것들의 얕음이 드러나고, 결국 이상과 현실의 간극만 커져 갈 뿐이다.
결국 어떤 목적에서의 융합이든 융합은 permanent 한 process 혹은 program이 되어서는 안 되며, 융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계적으로 합치는 것이 아닌, 재료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재료의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최대한 서로 다른 재료들을 조합해 보는 것이다. 합치기 위해 먼저 분리할 줄 알아야 하며, 분리된 재료들은 그 자체로 인정되어야 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창발 되는 다양한 시각과 풍부한 깊이를 추구하되, 그것을 하나의 접시에 올려놓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여장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남자여야 하는 것처럼, Converging 하기 위해서는 일단 먼저 Diverging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