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는 우리 말고 누가 또 살고 있을까?
내 또래의 과학도라면 아마도 학창 시절, 칼 세이건의 명저 '코스모스'를 몇 번이나 탐독했을 것이고, 조금 더 나이 들어서는 칼 세이건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컨택트'도 감명 깊게 감상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영화 컨택트에서는 주인공 조디 포스터가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의 거대한 구조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첫 번째 첨부 사진 참조). 사실 지구 상에는 훌륭한 천체 망원경이 여럿 있지만, 하필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이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이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이자 유명한 행성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 박사의 개인적인 관심사가 그쪽 분야에 쏠려 있기도 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은 1974년 11월, 우리 은하계 내에 있는 헤라클레스 구상성단 M13을 향해 주파수 2388 MHz의 마이크로파 신호를 송신했다. M13은 지구에서 대략 25,000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니, 아레시보에서 쏘아 보낸 신호는 25,000년이 지나야 겨우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고, 행여나 되돌아온다면 그것은 5만 년이 지난 후 일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먼 거리까지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신호 세기를 갖추기 위해,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은 원래 외부 전파 신호를 수집해야 할 안테나를 송신용 안테나로 변용하여 무려 450 kW 규모의 초강력 전파를 집중적으로 발산했다. 이 전파가 과연 M13까지 무사히 도달할 것인지는 우리 세대에서는 당연히 알지 못할 것이고, 아마도 5만 년 정도가 지나면 지구 상의 누군가가 (혹시나 그때까지 지구에 인류가 살고 있다면) M13의 누군가로부터 받은 답신을 해석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에서 발신한 신호는 당연히 디지털 신호였다. 2388 MHz 마이크로파 전파를 두 가지 주파수로 변조하여 0과 1로 이루어진 1679비트의 신호를 1초에 10개씩 송신하는 방식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 1차원 string 디지털 신호는 73행 23열의 2차원 행렬로 변환되면, 2번째 첨부한 그림 같은 메시지가 된다. 이 메시지는 외계 문영의 존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리고 칼 세이건의 절친이기도 했으며, 당시 아레시보 천문대 대장이기도 했던 미국의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 (Frank Drake) 박사가 제안하여 작성된 메시지였다. 메시지는 비교적 간단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초반에는 이진수로 표현된 1-10까지의 수, 다음으로는 유기체를 이루는 주요 원소들의 주기율표상 원소번호 (H, C, N, O, P), 다음으로는 DNA의 분자 구조, 다음으로는 인류의 대략적인 형태, 다음으로는 인간 유전자를 구성하는 핵산의 가짓수, 다음으로는 인류의 물리적 크기와 당시 지구 상의 인구, 마지막으로 태양계와 태양계 내의 지구 위치, 그리고 아레시보 망원경의 모습이 담겨 있다.
애초에 M13 구상성단에 외계 문명이 살고 있을지 여부도 모르는 상황에서, 왜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은 어마어마한 전기 에너지를 소모하면서까지 언뜻 무의미해 보이는 0과 1로 이루어진 암호 같은 신호를 발산한 것일까? 당연히 이 신호를 외계의 지적 존재가 만에 하나라도 캐치하여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물론 그 존재가 적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기만을 바랬을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아레시보 천문대에서 이렇게, 언뜻 보면 낭만적이기까지 한 실험을 한 시대적 배경에는 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프로그램의 출범이 있다. 60-70년대, 서구의 천문학계는 전파, 특히 마이크로파는 자연적으로 거의 발생 소스가 없으므로, 인공적인 요소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외계에서 만약 특정 주파수의 전파가 다른 대역의 전자기파에 비해 유달리 더 강하게 감지되면 그것을 외계 문명의 신호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1980년대, SETI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출범하였고, 1984년에는 아예 SETI 연구소가 정부 지원으로 설립되면서 전파를 이용한 외계 문명 탐색은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칼 세이건은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SETI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으며, 막대한 규모의 외계 전파 데이터를 분석하며 외계 문명의 증거를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으며, 결국 마땅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는 이유로 1993년, SETI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대폭 삭감되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HP가 이 프로그램의 지원을 맡아 이후 10년 정도 더 연장되었으나, 하루에서 몇 기가바이트씩 쏟아져 들어오는 전파 신호의 분석은 굉장히 지난한 작업이라, 결국 연구소 단위에서 이 프로그램을 유지하기는 어려워졌고 SETI@Home 같은 형태로 프로그램이 겨우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마저도 2011년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하던 UC 버클리 대학의 연구자금이 바닥나 공식적인 운영이 매우 어려워졌다. 이후에는 소수 독지가들의 기부금 등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프로그램의 상징이자, 전파천문학의 주요 수단 중 하나였던 아레시보 전파망원경 역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얼마 전 철골구조물이 붕괴되면서 완전히 망가져 버리며, SETI의 시대는 저무는 것처럼 보였다.
2015년 7월, 러시아의 억만장자 유리 밀너 (Yuri Milner)는 영국 왕립학회를 찾아, 위기에 빠진 외계 문명 탐사 연구를 존속시키기 위해 1억 달러를 기부하여 'Breakthrough listen'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 엉뚱하고 미친듯한 기부로 인해, SETI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던 미국과 호주의 전파망원경은 생명이 일단 10년 더 연장되었다. 유리 밀너는 한술 더 떠, 누구든 외계 문명의 신호로 확실히 판명될 수 있는 신호를 찾은 사람에게는 무려 100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는 선언도 했다. 이로써 전 세계의 아마추어 천문가들은 웹에서 공개되는 전파 신호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찾기 위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2016년 4월 유리 밀너는 'Breakthrough Starshot Initiative'라 불리는 더 엉뚱한 계획을 발표했다. SETI와 마찬가지로 역시 1억 달러의 비용을 들여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계인 알파 센타우리까지 갈 수 있는 우주선을 공모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이를 가능케 하는 유력한 후보 기술도 발표했는데 그것은 바로 '라이트 세일'을 이용해서 광속의 20%까지 가속, 아주 그럴듯한 기간인 20년 이내로 알파 센타우리까지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라이트 세일은 원리상으로는 솔라 세일과 유사하지만,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태양풍을 이용할 수 있는 확률이 급감하므로, 태양 대신 레이저 등을 이용하여 가속원으로 삼는 방식이다. 이론적으로는, 이 계획을 위해 100,000m^2 (가로*세로 316m*316 m) 넓이, 즉, 잠실운동장 10개 정도는 충분히 덮을 정도의 거대한 면적을 갖는 '돛'이 필요한데, 최대 가속 효과를 내기 위해, 우주선 무게 자체는 100 g 미만이어야 한다. 실로 배꼽이 배보다 커야 하는 구조를 갖는 우주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므로, 이것이 기술적으로 달성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돛을 설사 그래핀으로 만든다고 해도, cm^2 당 0.1 mg 정도의 밀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100,000 m^2의 그래핀 무게는 100 kg에 달한다. 즉, 우주선 무게의 1000배가 넘는다. 지금으로서는 이러한 극단적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적당한 소재가 없는 셈이다.
알파 센타우리 쌍성계까지 가기 전에, 유리 밀너가 제시한 일단 가능한 첫 목표는 쌍성계의 세 개 항성 중 하나이자,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외계 항성인 프록시마 주위를 돌고 있는 외계 행성 프록시마 b (proxima b)다. 다만 라이트세일 기술이 실제로 실현된다고 해도, 결국 가속뿐만 아니라 감속이 문제가 되는데, 감속이나 주위 항성에 의한 플라이바이까지 생각하면 대략 100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Heller, R., & Hippke, M. (2017) "Deceleration of high-velocity interstellar sails into bound orbits at Alpha Centauri", 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 Volume 835, L32, DOI: 10.3847/2041-8213/835/2/L32
유리 밀너의 엉뚱한 계획에 응답이라도 하듯, 지난 2월, 유리가 후원했던 미국과 호주의 전파망원경을 중심으로 한 SETI 연구단은 그간 모은 1-12 GHz 대역 사이의 전파 데이터 2PB 분량을 공개했다.**
**https://phys.org/.../2020-02-breakthrough-petabytes-seti...
일단 2PB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데이터이므로, 이 건초 더미 같은 데이터 속에서 정말로 바늘을 찾아낼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되었는데, 얼마 전 흥미롭게도 이 중 꽤 그럴듯한 인공 신호가 있을 수 있다는 예비 분석 결과가 발표되었다.***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lien-hunters.../
UC 버클리 연구팀은 Breakthrough listen이 공개한 데이터 속에서, 지구로부터 '겨우' 4.2 광년 떨어진 외계 항성 프록시마 센타우리 (Proxima Centauri)에서 2019년 4월 29일에 발진한 것으로 보이는 982.002 MHz의 전파 신호를 찾아냈다. 이 주파수 대역의 전파는 주로 인공위성 통신 용으로 사용되는 전파로서, 자연적으로는 발생하는 소스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신호가 정말 프록시마 센타우리 근처 행성에 살고 있는 외계 문명이 지구로 보낸 통신용 주파수 신호라는 것을 바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필터를 거치긴 했지만, 여전히 이 신호가 지구나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된 신호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그 정도로 장거리 전송을 할 계획을 세운 외계 문명이었다면, 이 신호의 감쇠율을 최소로 만들기 위해 여러 번 주파수 변조한 흔적이 있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와 같은 기술을 채택하고 있다면....) 하지만 관측된 결과에는 그러한 변조 흔적은 없었으며, 그 이후에 다시 관측된 적이 없었으므로, 모종의 우연일 수도 있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다른 1회성 천체 활동에 의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외계 항성계에서 이 신호가 나온 것 자체는 매우 흥미로운 관찰 결과임에 틀림없다. 다만, 프록시마 센타우리 주변에는 프록시마 센타우리 b, c라는 행성이 공전하고 있는데, 이 행성들은 생명체가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실제로 이 행성에 외계 문명이 번성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현재로서는 매우 난망한 상황이긴 하다.
그렇지만 Breakthrough listen 프로그램이 시작한 지 겨우(?) 3년 만에 이 신호를 찾아낸 사실 자체는 매우 긍정적이며, 향후 이런 류의 독지가 기부 기반의 프로그램들이 더 많이 생길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언제 찾을지 불확실하기만 한 신호 찾기에만 마냥 몰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오로지 세금으로 운영하는 것은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언제든 좌초할 수 있지만, 이렇게 독지가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즉, 독지가의 인내심과 자비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프로그램의 생명은 연장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하필 유리 밀너가 Breakthrough Starshot Initiative에서 천명한 1차 탐사 계획 대상이 프록시마 센타우리였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지, 아니면 다분히 의도된 타기팅 관측이었을지 궁금하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유리 밀너가 breakthrough listen 신호에 100만 불의 상금을 걸기도 했으려니와, 그 자신이 프록시마 센타우리에 대한 거액의 탐사 계획을 지원하고 있기도 하니, 그의 관심을 계속 이 프로그램에 붙잡아 두기 위해, 전 세계에서 외계 문명 신호 탐사를 하는 천문학자들이 고도로 계획된 모종의 scheme에 따라 이 신호 발견 사실을 발표한 것일 수도 있겠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상상일 뿐이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외계 문명의 탐사 지원 주체가 누구든, 지구 근처의 항성계 하나씩 하나씩 외계 문명의 후보군 여부를 이렇게 전파 천문학 방법으로나마 꾸준히 판별하고 검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인류는 언젠가는 지구, 그리고 태양계를 벗어나야만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고, 그때 어디로 갈지를 모르는 상황이라면 결국 태양계 안에서 멸망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 만년, 혹은 몇 십만 년 후, 인류는 어떤 특별한 기술을 이용하여 프록시마 센타우리, 알파 센타우리, 그리고 더 먼 외계 항성계 중, 인간이 살만한 행성을 갖춘 곳으로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인류의 후손이 가장 먼저 참고할 데이터는 20세기 중후반에 시작된 SETI 프로그램의 누적된 데이터 들일 것이다.
우리 세대는 아마도 외계 문명의 증거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스러져 가겠지만, 결국 인류가 남긴 지적 유산은, 그것이 기록되고 보존되는 한, 후손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 인간 문명의 존속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칼 세이건이 프랭크 드레이크와 함께 반 세기도 더 전에 SETI를 꿈꾸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그는 아마도 두 눈에 들어오는 천체의 화려한 이미지 너머, 먼 훗날 광활한 외우주를 탐험하는, 그리고 제2의 지구를 찾아 떠나는 자신의 후손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던 것 일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