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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Sep 17. 2020

인재를 알아보는데 점수 말고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인재를 뽑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가?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세계적인 명문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인 MIT는 이제 적어도 이공계 박사과정 학생 입학 전형에서는 몇 년 전부터는 GRE 점수를 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억울하다. 08년만 해도 GRE 요구 수준이 꽤 높았다...). 지원자가 입학 서류로서 굳이 뭔가 도움이 될까 제출하겠다고 한다면 말리지는 않지만, 그것을 공들여 검토하거나, 입학 사정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심사위원은 단연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점점 이곳에 오기 전에 무슨 논문을 썼는지, 어떤 연구실에서 어떤 연구 경험을 쌓았는지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었는지, 그 증빙 자료가 있는지를 무조건 우선적으로 본다. 실무 능력이 거의 없는데, 점수와 추천서만으로 합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주 강력한 추천서가 있거나, 아주 특이한 경력이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물론 외부 펀드를 들고 온다면 플러스 점수가 붙기는 한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CS나 AI 쪽으로 가려는 지원자들은 무조건 github 기록도 같이 본다. 실무적으로 해당 분야에 이미 발을 들여놓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학부 시절의 학점, TOEFL, GRE 등은 전형에 참고는 하되, 우선순위에서 보면 2차적인 요소가 되었다. 물론 아예 안 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1차적인 요소가 비슷하다면 참고할 수 있는 요소는 된다.


지난 9월 초,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U of California)가 학부 신입생을 뽑을 때 더 이상 SAT과 ACT 점수를 고려하지 않으려는 정책이 법원으로부터 승인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https://www.usatoday.com/story/news/education/2020/09/02/university-california-colleges-barred-using-sat-act-results/5689307002/?fbclid=IwAR0TFDJcAXy-7uDfwgN_dOkq2vK-Jo9cUAcM3zXPtqIy3olwBSURLE3qIOY

이는 마치 우리나라 주요 국립대가 신입생 뽑을 때 수능을 참고하지 않고 (물론 내고 싶은 학생은 내겠지만) 학생을 뽑겠다는 정책이 교육부나 법원으로부터 승인받았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이다. 


박사 과정 지원자들과는 달리 학부 신입 지원자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학생들일 텐데 (물론 늦깎이 학생도 있고 편입생도 있겠지만...), 이들이 수능 점수 말고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교 내신, 고교 특별활동 기록, 거기에 조금 재능 있는 학생들이라면 전국 혹은 주 단위의 competition (경시대회, 운동대회, 콩쿠르 등), 또한 봉사 활동 점수, 좀 힘 있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추천서, 그리고 자기소개서가 전부일 것이다. 만약 그나마 객관적인 실력 평가 자료로 여겨졌던 SAT와 ACT가 더 이상 중요한 입시 사정 요소로 간주되지 않는다면, 이제 적어도 미국에서 좀 괜찮은 주립대 가려는 학생들의 입시 전략은 꽤 큰 변동을 겪게 되지 않을까 한다. 


아마도 내신 강화 전략과 더불어, 자신이 왜 특별한 지원자인지를 어필하는 각종 비교과 활동들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지질학자가 되고 싶어 주립대 지질학과를 지원하고 싶은 학생이라면, 방학마다 근처 주립대 캠퍼스를 찾아가 인턴이든 뭐든 volunteer로 field-work 따라다니며 연구 활동에도 참여해 보고, 기회가 되면 논문도 같이 써 보는 등의 활동을 하여 자신의 edge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수학과에 진학하고 싶은 학생이라면 주, 전국 단위 경시대회 외에도, 자신이 수학에 재능이 있다는 자료를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흥미로운 난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을 블로그에 올린다든지, 수학을 시각화하는 자료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다든지 하는 자료를 만들 수 있으리라 본다.


미국만 이런가? 한국도 이미 인재를 선별하는 방식이 20세기의 낡은 구습에 얽매여있을 여유가 없다. 지난 8월 입시 정보회사인 진학사가 주관한 3천 명이 넘는 취업준비생 (취준생) 대상으로 이루어진 설문 조사에서, 취업에 가장 중요한 스펙이, 취준생 스스로 판단컨대 더 이상 출신 학교나 외국어 점수 같은 클래식 스펙이 아니라는 응답 결과가 나왔다. 특히 드라마틱한 부분은 출신 학교, 즉, 학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열에 한 명 밖에 안 된다는 것. 이에 반해, 실무 경험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무려 넷 중 셋이나 된다. 이에 대해 물론, 뽑는 사람의 입장도 들어 봐야겠지만, 취업 시장에 가장 민감하고, 가장 정보가 밝을 취준생들 스스로가 이렇게 판단할 정도라면, 이미 사회가 인재를 정의하는 기준이 크게 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도대체 취준생들, 특히 신입 직원이 되려는 사람들이 어디에서부터 경력을 쌓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겠지만, 의외로 직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은 꽤 있다. 가장 흔한 인턴부터 시작해서, 공모전 기록, 각종 대회 참가 기록, 연구개발직 같은 경우라면, 학부생 연구원 경험과 그로부터 나올 수 있는 특허, 논문 등의 실적, 창업 등의 경험 등이 그것이다. 자기 자본 없이도 오로지 시간과 에너지만 있으면 해 볼 수 있는 경험 쌓기의 기회가 많이 있고, 앞으로는 대학들도 직무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더 공격적으로 자기 학교 재학생들에게 더 많은 경험 쌓기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국제 경험이나 어학 점수 같은 요소는, 세계를 상대로 경쟁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꽤 중요한 요소처럼 보이지만, 막상 취준생 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반응도 흥미롭게 보인다. 둘 다 7%로서, 아주 마이너 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면 도대체 영어 점수나 해외 경험이 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가 반문할 수도 있는데, 막상 회사에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써야 하는 상황이나, 겨우 신입사원이 어설프게 만든 해외의 인맥 (SNS 친구도 해외 인맥이라고 포장하는 경우도…) 정도가 회사에 반드시 필요한 케이스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영어는 필요하다면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면 되고, 정말 중요한 해외 고객 상담은 그 직무에 특화된 영어 혹은 해당 국가 외국어 능통자가 하면 된다. 웬만한 일반 직무에까지 외국어 고득점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문맥을 정확히 파악하고, 문서 작성을 정확하고 깔끔하게 할 수 있는 모국어 능력이 회사 입장에서는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회사 업무는 소통으로 대부분 이루어지는데, 그 결과물을 반드시 문서로 남겨야 하니, 글쓰기 능력, 그리고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취업 시장에서도 이럴진대, 이제 허울만 좋은 학벌이나 점수에 목매는 행태는 조금씩 사회에서 사라지는 추세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미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2010년대 초반에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고, 아마도 사회가 점점 성숙해갈수록, 대학 진학률은 OECD 평균 수준인 50-60% 수준으로 내려올 것이다. 학령인구는 2020년대 들어 40만 명대가 붕괴되고, 2030년대 30만 명대, 그리고 2040년대쯤 되면 20만 명대가 될 것인데, 그중 절반 정도만 대학에 진학한다고 가정한다면, 이제 N수생, 외국인 다 합해도 연간 대학 신입생 숫자는 15-20만 명이나 되면 다행일 수준일 것이다. 한국의 대학은 아마도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해외 유학생에 대한 더 적극적인 유치 정책, 평생교육원 강화, 대학원으로의 시스템 이동 등을 획책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하부 구조가 학부생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사히 살아남을 대학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오랜 기간, 대학들이 독점적으로 고수해 온 취업을 위한 부가 가치 창출, 커리어를 위한 브랜드 가치 제공이라는 고유한 장점도, 이제 취준생들 입장에서는 정작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수준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현실이 이럴진대, 대학 본연의 위치가 무엇이기 따지기 전에, 대학만이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이 무엇인지 많은 고민이 드는 시점이 되지 않았다고 할 도리가 없다. 결국 국가 입장에서도 교육은 포기할 수 없는 국체의 기초이고, 나라 경쟁력의 초석이니, 좌시하고 있을 수는 없는데, 오히려 역설적으로, 경제 규모가 10위권에 육박한 거대한 나라 입장에서, 이제는 대학도 그에 걸맞은 수준이 될 수 있도록 나라의 간섭은 최소화하고, 대학이 알아서 자생력을 갖게끔 자율성을 더 광범위하게 부여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그냥 정부 입장에서 좌시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입시정책 자율화부터 (이렇게 되면 U of California처럼 수능을 받지 않는 대학이 많아질 수도 있다.), 재정 지원 사업을 빙자한 고삐의 제거, 그리고 정원 조정과 등록금 설정을 시장에 맡겨야 하는 시점이 도래했다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시대 변화에 반응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더 이상 한국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다. 학생들, 취준생들은 훨씬 명민하게 시대의 흐름에 반응하고 있고, 화석화된 학벌이나 선후배 의식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직업들이 10, 20년 내로 로봇, 인공지능, 자동화 공정에 의해 대체될 것인데, 언제까지 20세기의 유물로 25년 남짓 살아온 젊은 사람들의 인생을 재단하는 것을 고수할 것인지, 언제까지 그놈의 스펙 타령으로 사회의 자원을 낭비하는 것을 버리지 않을 것인지, 교육의 소비자, 종사자, 그리고 정부 모두 좀 스스로 따져 봐야 한다.


21세기의 사회는 저 밑바닥부터 인재에 대한 정의가 다시 써지고 있다. 과거 수능이나 내신 점수로 전교 1등부터 100등까지, 수능 1%부터 99%까지 줄 세워 배치표 맞춰 학생들 적성은 생각도 안 하고, 오로지 입시 전략에 맞춰 학생을 뽑아 공장식으로 제조하던 시절은 이제 저물고 있다. 많은 직업은 AI로 대체될 것이고, 많은 대학들이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이다. 이렇게 상황은 대내외적으로 급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20세기의 틀에 박힌 교육과 구시대적인 점수로 사람 판단하기 방식의 입시는 이제 그 환경 변화에서 살아 남기 힘든 구조다. 과거 대학이 독점적으로 계층 사다리를 독점적으로 제공하던 시절에는 대학의 입시 정책은 곧 사회의 계층 이동 정책과 연결되는 것이니, 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매번 고통스러운 정책의 변화가 수반되었지만 (그리고 딱히 그로 인해 상황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이제는 그랬던 시절이 유유히 지나가고 있다. 정말 대학에서만 할 수 있는 공부나 자격이 필요한 사람이 연령에 상관없이 진학하는 고급 교육 기관이 되어야 하고, 대학은 학벌이 아닌, 학생의 잠재성을 개발하는 기관으로 변모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려면, 각 대학의 특색이 살아나게끔 대학에게 자율성을 충분히 부여해야 한다. 모든 대학이 백화점처럼 모든 분야에서 무한 경쟁을 할 필요도 없고, 특히 사립대라면 특화된 분야에 대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게끔 정책의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 기초 학문과 교양 학문을 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국공립대에 대한 지원 확대와 정원 확대로 갈음해야 하며, 연구중심대학은 그 임무가 이공계 고급 연구 인력의 양성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사립, 국립 가리지 않고, 연구개발 사업의 집중 투자와 그로 인한 산업적 부가가치 창출에서 재원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지분 (예를 들어 창업하는 회사의 주식 확보 등)의 확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20년 이후의, 의사나 변호사 같은 클래식 전문직의 전문성이 여전히 only human job으로 살아남을지 여부는 모른다. 과학자나 엔지니어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예술가 역시 예외는 아니다. 분야 상관없이, 전문직 혹은 전문가로서 그 job을 갖는 인간이 여전히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그 직업을 갖게 될 후보자의 초중고 시험 점수나 기록이 아닌, 성인이 된 후, 그 job을 수행할 준비가 된 사회성과, 인간성, 그리고 그 job에 대한, 꾸준한 준비로 충분한 자격을 갖췄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과 증거를 갖췄을 때만 비로소 유효할 것이다.


사회는 이렇게 이미 탈 교육, 탈 점수, 탈 정량평가 추세를 향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소싯적 수능 점수, 수석 졸업 여부, GPA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지적 게으름을 우리 사회가 고수할 것인지 한 편으로는 걱정되고 한 편으로는 암담하다. 맛집 찾아갈 때 그 집의 주인장이 남긴 답글, 메뉴에 대한 정보, 요리가 나온 맥락 등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골목식당이나 유명 프로그램에 나왔느냐 여부, 별점과 리뷰 수 등, 사람들의 욕망을 숫자로 다시 대리 욕망하는 관점에서 맛집을 찾게 되면 십중팔구 후회한다. 맛집 선택도 이런데, 하물며 10년 후, 20년 후, 어떤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사회의 일원이 될지 모를, 갓 20세가 될락 말락 한 젊은이들을 점수의 조합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얼마나 성급하겠는가. 그리고 그 점수의 조합만 믿고 전문직 자격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겠는가. 그리고 그 판단과 판별을 거쳐 사회로 나와 드디어 바라던 포지션에 오르는 첫 발을 딛게 된 사람들이, 판단과 판별의 숫자 기록만으로 스스로를 충분한 전문성을 갖췄다고 믿게끔, 그리고 그것이 오로지 자신의 성취라고 최면을 걸리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우리 사회에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이제는 이러한 반문을 사회 구성원들이 드러내고 던질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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