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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l 13. 2021

불완전성의 미학

무질서가 반드시 안 좋은 것은 아니다.

불완전성 혹은 무질서는 보통 안 좋은 의미로 쓰인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결국 대부분 불완전한 상태에서 완전을 추구하는 인생의 질곡, 무질서의 상태에서 질서를 추구하는 지난한 과정 끝에 정보의 완벽한 상실로 접어드는 여로 아니겠는가. 당연히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불완전성 혹은 무질서가 만들어 내는 완전성 혹은 질서는 그 자체로 모순처럼 보인다. 디스플레이 패널에 있는 수백만-수천만 개의 픽셀 중 하나라도 데드 픽셀 (dead pixel)이 되면 민감한 사람의 눈에는 바로 보인다. 아무리 해상도가 좋고 최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이 적용된 패널이라고 해도, 채 5 마이크로미터도 안 되는, 세포 만한 크기의 데드 픽셀 몇 개 때문에,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그것이 신경 쓰여 제대로 작품에 집중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듯, 99% 아니 99.9999% 완벽하더라도 0.00001%의 불완전함이 남아 있다면 완벽이라고 못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세상 대부분은 완벽, 완전, 질서, 최적이라는 상태가 되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다. 설사 겨우 그러한 상태를 달성한다고 해도 대부분 (물리학적 맥락에서) 불안정하며, 다시 무질서, 불완전, 미완성의 단계로 전이되곤 한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무질서, 불완전, 미완성의 단계로 '전이 (transition)'되는 것 자체가 자연의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열역학 2법칙과 엔트로피 개념을 굳이 가져오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인생 속에서, 타인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속한 시스템을 관찰하면서 이러한 특성을 매일 같이 느낀다. 결국 애초에 이러한 특성 자체가 자연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완성, 완벽, 완전, 질서로 가는 궤도라는 사실, 그것이 아이러니컬한 진리처럼 다가온다.


서평을 생각하면서 내 연구 주제의 한 축이기도 하고, 읽은 책의 한 주제이기도 한 무질서 혹은 불완전성에 대한 낡은 기억을 꺼내 봤다. 이 기억은 영화 '굿윌헌팅 (Good Will Hunting)'의 초반부에 나오는 두 남자의 대화 속에서 얻은 기억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윌 (멧 데이먼 분)이라는, 수학 천재이자 현실은 시궁창 같은 불우한 청년이고, 조연은 션 (로빈 윌리엄스 분)이라는 상담 심리학자이자 역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외로운 중년의 남자다. 둘 다 어딘가 공허하고 불완전하며 다소의 무질서 속에 살고 있는 상태이다. 윌은 그 와중에 어떤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꽂혀 있고, 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션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아래는 윌이 그녀에게 대시할지 션과 상담하는 가운데, 둘이 나눈 대화 중 일부*이다. 


영화 '굿윌헌팅'의 두 주인공 윌(좌)과 션 교수(우)

(*이 내용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Horizon에 기고한 KIAS 박권 교수님의 '양자얽힘'에 관한 글 초반부에서 발췌 및 편집함. https://horizon.kias.re.kr/1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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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내 걱정은 하지 말아요. 내 앞가림을 내가 할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그러니까, 아름다워요. 똑똑하고요. 그리고 웃겨요.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다른 여자들과는 달라요.


션: 그래, 그럼 전화 걸어, 로미오.


윌: 왜요? 그렇게 해서 그녀가 사실은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라고요? 아주 지루하다는 것도요?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아주 '완벽'해요. 망치고 싶지 않아요.


션: 아마 지금 이 순간 '완벽'한 것은 너겠지. 아마 네가 망치고 싶지 않은 것은 바로 그걸 거야. 내 생각에 이건 '초강력 철학'이야. 윌, 그 방식대로 하면 아무도 진짜 알 필요 없이 평생을 살 수 있게 되지… 내 아내는 긴장을 하면 방귀를 뀌고는 했어. 그녀는 다양하고도 멋진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지. 근데 있잖아. 그녀는 자면서도 방귀를 뀌고는 했어. [웃음] 그런 것까지 네가 알게 해서 미안하다. 어느 날 밤에는 방귀 소리가 너무 커서 개를 깨웠지. 그녀가 깨서 “당신이 그런 거예요?”라고 내게 물어봤어. 그래서 뭐 그냥 그렇다고 했지.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거든… [웃음] 세상에나.…


윌: [배꼽 빠지게 웃으며] 그녀가 자기 자신을 깨웠다고요?


션: [역시 파안대소하며] 맞아! … OMG… 하지만, 윌, 그녀는 2년 전에 죽었어. 그런데 그런 자질구레한 것이 기억나는 거야. [윌은 웃음을 멈춘다.] 근데 멋진 것은, 그러니까, 그런 작은 것들이야. 아, 그런 것들이야말로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들이지. 나만 알고 있는 작은 특별함들 말이야. 그런 것들이 그녀를 내 아내로 만들었던 것이지. 오, 그녀도 나에 관한 사소한 것들을 알고 있었겠지. 사소한 잘못들도 모두 알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결점'이라고 부를 거야. 하지만 아니지. 그런 것들이야말로 진짜 좋은 것이야. 나는 나만의 작고 특별한 세계에 누구를 들일지 선택할 수 있어. 친구여, 너는 '완벽'하지 않아. 긴장감을 덜어줄까? 네가 만난 그녀 있잖아, 그녀도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진짜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너희가 '서로'에게 '완벽'하냐는 거야. 그게 중요한 거야. 그게 친밀함이라는 것이지. 너는 이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친밀함에 관해서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도해 보는 것뿐이야. 나 같은 늙은이로부터는 배울 수 없는 것은 명백하겠지. 설사 내가 알아도 너같이 하찮은 녀석에게는 말해 주지 않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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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윌헌팅의 대화 scene에서도 볼 수 있듯, 불완정성 혹은 무질서는 시스템에 있어 오히려 특별함을 부여한다. 데드 픽셀은 인간의 눈에는 불완전한 미완성의 기기로 정의되겠지만, 어떤 예술가의 눈에는 그 픽셀의 위치와 색, 그리고 깜빡이는 주파수가 그 기기에 특별함을 부여할 수 있다. 


단지 예술적 맥락뿐만 아니라, 과학적 맥락에서도 불완전성 혹은 무질서는 완벽한 시스템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특성을 부여한다. 멀리 갈 것 없이, 양자 컴퓨터의 화두 중 하나인 결함이 있는 다이아몬드 (defect in diamond)가 그런 케이스 중 하나다. 다이아몬드를 이용하는 타입의 양자 컴퓨터는 탄소의 3차원 결정 안에 특정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결함 (비어 있다든지, 다른 원소가 끼어들어 있다든지, 탄소 원자의 배열이 다소 흔들렸다든지 하는 등의 결함)을 일부러 발생시켜, 그 결함을 중심으로 양자 정보 (qubit)을 처리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냥 완벽한 다이아몬드는 그 내부의 탄소 원자들의 전자 스핀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큐비트 역시 구분할 수 없지만, 아주 작은 결함, 예를 들어 수 나노미터 크기의 vacancy가 있고 그 결함에 질소 같은 원자가 결합해 있다면, 그 결함을 중심으로 독특한 중심 전자 스핀이 전자기장으로 형성될 수 있다. 이 결함에 마이크로파 자기장을 걸어 주고, zeeman 효과를 유도하면 스핀 정보를 읽을 수 있다. 만약 다이아몬드에 결함이 없었다면, 그 결함을 중심으로 발생될 수 있는 특별한 스핀 정보는 발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양자 컴퓨터 용 다이아몬드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냥 투명한 다이아몬드에 비해, 특별한 색이 나오는 다이아몬드  컬러 다이아몬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당연히 영롱하게 빛나며 완벽하게 컷팅된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더 비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칼라 다이아몬드가 더 비싸다. 이유는 단순하다. 칼라 다이아몬드가 더 희귀하기 때문이다. 대략 전체 천연 원석 다이아몬드 중 2% 만이 칼라 다이아몬드로 채굴된다. 칼라 다이아몬드가 희귀한 까닭은 애초에 투명한, 즉, 거의 완벽한 다이아몬드의 단단한 결정 구조 때문이다. 칼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이아몬드에 탄소가 아닌 다른 원소가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만 탄소 원자의 sp3 결합, 그리고 그것이 3차원에서 거의 완벽한 결정이 되는 고온고압의 환경에서 다른 원자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1/50의 확률을 뚫고 일부러 결함이 생겨난 칼라 다이아몬드는 매우 희귀한 것이며, 값어치는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로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완벽을 추구하며, 질서가 잘 잡힌 상태를 좋아한다. 그것은 각자가 처한 현실이 불확실하고, 불완전하며, 무질서가 늘 상존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굿윌헌팅에서 션 교수가 이야기했듯, 모든 존재의 특별함은 그 완벽성에 있지 않고, 오히려 불완전성에 있다. 모든 것이 자리가 완벽히 잡힌 상태는 장기간 유지가 불가능하기도 하려니와, 다른 삶과 구별될 수 있는 특별함이 없다. 완벽한 결정성을 갖는 다이아몬드는 귀금속으로서의 의미가 있지만, 그 너머의 양자 컴퓨터 혹은 칼라 다이아몬드로서의 새로운 의미, 특별한 의미를 줄 수는 없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불완전한 상태, 질서가 완벽히 잡힌 상태가 아니라, 다소 무질서한 상태,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여전히 손 볼 것이 많은 미완성 상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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