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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l 13. 2021

참을성이 필요한 연구

장기간의 호흡이 연구에 필요한 이유

어떤 '단일' 실험 결과를 얻기 위해, 무려 반 세기를 기다릴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조직이 있을까? 그런 팀이 있을까? 그런 과학자가 있을까? 


이웃나라 일본은 한 가지 주제에 오랜 기간 천착하여 기어이 뭔가를 이루고야 마는 전통이 있다. 그것은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라, 한 주제에 집중하고 또 집중해서, 아무도 못 얻는 데이터를 얻고야 마는 전통이 1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보통 기초과학 분야에서 그런 전통이 위력을 발휘하여, 20세기도 그랬지만, 특히 그들이 21세기 들어와 거의 한 해 걸러 노벨 과학상을 수상하는 원동력의 일부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2018년 연말에 보도된 뉴스에서는 일본 농림수산부 (Japan’s Ministry of Agriculture, Forestry and Fisheries)가 주관한 연구 결과가 화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연구는 일본 규슈 동남쪽 니치난 시 (Nichinan city) 근처의 고다니야마 산 (Godaniyama)의 사면에 1973년부터 조성한 임업 실험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연구진은 숲 조성 사업을 하면서,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이 커질 때, 과연 나무의 생장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테스트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장균이나 실험용 생쥐처럼 짧게는 하루, 길게는 1-2년 정도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실험과는 달리, 나무의 생장 실험은 오랜 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실험이라, 1973년에 시작된 실험은, 45년이 지난 2018년에야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인데, 결과는 놀라우리만치 재밌고 아름다운 패턴으로 나타났다 (아래 첫 번째 첨부 그림 참조).


일본 규슈 남부에 있는 실험적 조성림의 항공사진


1973년 당시, 일본 연구진은 두 개의 동심원 구조로 나무를 식재했다. 당연히 동심원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갈수록, 나무 사이의 간격이 벌어져서, 중심에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나무인가에 따라, 나무의 생장 속도를 나무 간 간격의 함수로 나타낼 수 있다. reproducibility 확보를 위해 동심원을 두 개로 설정한 것도 흥미롭지만, 두 개의 동심원 모두, 마치 한 때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던 크롭서클 (crop circle, 예전에는 UFO 같은 미지의 지적 생명체가 만든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람의 정교한 장난으로 인한 결과로 정리되었다.)처럼 거의 완벽한 동심원 패턴을 가지며 생장한 결과는 더욱 재밌고 흥미롭다. 연구진의 가설은 간격이 넓을수록 서로 간섭을 덜해서 (혹은 영양분을 덜 나눠도 되어서), 더 빨리 나무가 잘 자랄 것이라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45년 후의 생장 결과를 살펴보니, 가설대로, 동심원 중앙 부분에 식재된 나무보다, 동심원 바깥쪽으로 식재된 나무가 훨씬 더 높이 자랐다. 두 나무의 키 차이는 평균 5.3 m 였다고 한다 (아래 두 번째 첨부 그림 참조). 이러한 키 차이는 높은 고도에서 봐도 잘 드러날 정도의 입체감까지 선사하는 바람에, 이러한 동심원 패턴이 더 잘 드러나게 만들어 주기도 했으니, 참으로 흥미로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일본 규슈 남부 실험 조성림의 내부 식수 배치 구조


비록 임산물 생산성을 향상해 보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연구라, 원래 목적인 나무의 성장 속도 측정에만 연구의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반 세기에 가까운 기다림과 연구 지원은 이렇게 흥미롭고도 아름다운 작은 숲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제 데이터를 얻었으니, 이 숲의 목적은 다 끝났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아직 이 숲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웹에 널리 공유되면서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늘고 있어, 일본의 작은 지방 도시 입장에서는 아마 훌륭한 또 하나의 관광 자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아마 남겨 두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생각한다.


항상 기초과학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고, 노벨상 시즌이면 과학자 커뮤니티는 반성하고 자조하고 우리나라 기초 과학의 짧은 역사를 자꾸 되돌아보기 바쁘지만, 사실 연구자들은 잘 알고 있다. 노벨상이나 기초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외침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기다려줄 줄 아는 문화, 그것에 보답할 준비가 된 연구자들의 집중력과 성실함, 그리고 그 결과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성숙도라는 것을 말이다. 이웃나라의 과학자 한 사람으로서 부러운 부분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진부하지만 한 가지 물음을 스스로 던질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는 당장 내일의 먹거리가 아닌, 50년 후, 나아가 100년 후에 우리 사회의 지속성과 성숙함을 믿고, 내가 아닌 후손들이 향유하고 보존할 수 있는 데이터라는 나무를 자라게 할 한 알의 씨앗을 심을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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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요약

http://www.rinya.maff.go.jp/.../jou.../attach/pdf/2911-9.pdf

구글어스 지도

https://earth.google.com/.../@31.7319102,131.39113262,491...

구글어스 좌표

31°43'50.3"N 131°23'04.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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