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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l 13. 2021

미디어가 과학기술 관련 소식을 다루는 방향

미디어는 최신 연구 성과에 대한 뉴스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미디어에서 과학기술 관련 뉴스를 신중하게 다뤄야 하는 것만큼이나, 과학기술 관련 연구자들, 특히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뉴스 미디어를 다루는 것에도 무거운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제1원칙을 들라면, 동료들의 리뷰 (peer-review)를 거치지 않은 새로운 연구 결과는 가급적 대중을 상대로 한 언론에 미리 흘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잘 나가는 과학자일수록, 주변에 친한 기자들이나 뉴스 관련 종사자들이 있을 것이다. 잘 나가는 과학자들이라면 아무래도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발견을 하거나 기존의 이론을 뒤집는 데이터를 얻을 확률이 높고, 그것은 가끔씩 뉴스에 좋은 특종 거리가 될 것이므로, 과학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명성을 대중에게 증폭시키고, 미디어 입장에서는 클릭 빈도의 급증을 유도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일석이조다. 따라서, 인간적인 욕심이라면, 누가 봐도 특종 거리가 될만한 뭔가가 있다면, 그것을 언론에 흘리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혹은 곁에서 부추기면 그럴 수도 있다. 잘 나가지 않는 과학자들이라도, 명예욕을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미디어를 잘못된 방향으로 오용할 수 있다. 


그런데 동료들, 특히 같은 업계의 학자들의 리뷰를 거치지 않고 대중 상대의 미디어에 본인의 설익은 연구 결과, 특히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나 본인만의 가설을 넌지시 혹은 대놓고 흘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떤 교수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수정해야 할 정도의 중요한 실험적 발견을 한 것 같다'라고 주장하고 싶다고 하자. 이 주장을 본인이 소속된 학교와 타이틀의 권위에 의존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는 미디어에 그대로 노출시키면, 대중은 십중팔구 오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오해는 대중에게 전파되는 과정에서, 다른 미디어들의 2차 인용, 3차 재해석 등을 거쳐 다음과 같이 증폭될 수 있다.


'B대학 물리학과 A교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일부 불일치되는 실험적 증거 발견'


->'A교수, 대발견! 아인슈타인의 백 년 묵은 상대성이론의 오류 발견!'


->'국내 물리학 권위자, 세기의 대발견! 아인슈타인의 이론 뒤집어!'


->'대특종, 한국 과학자, 세계를 놀라게 할 현상 최초 발견!'


->'한국, 드디어 노벨 과학상에 도전할 수 있게 돼!'


등으로 증폭될 소지를 제공한다. 한 동안 미디어 상에는 A교수의 이름이 오르내릴 것이고, 언론은 앞다퉈 A교수 특집 기사를 마련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언론도 사짜를 많이 다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므로, 적당히 기사 거리가 될 것들에 대해서만 그럴 시도를 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또 맹점이 있다. 기사 거리가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일반인들, 하다 못해 고등학교 수준의 과학 상식만 가진 사람들이라도 일단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든 상대성이론만 해도, 그 자세한 수학적 이론에 대해 모르더라도, 사람들은 늘 상대성이론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시간여행이나 쌍둥이의 역설 등 각종 미디어에서 이에 대한 노출이 많이 된 상태이므로, 쉽게 흥미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사안을 타깃으로 언론이 설익은 연구결과를 확대 해석한 뉴스거리를 앞다퉈 보도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과학자들의 리뷰를 거친 연구 결과인 양 해석할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그리고 쉽게 흥분할 수 있는 사안에는 쉽게 사기 칠 수 있는 세력이 항상 편승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양자역학 관련한 설익은 연구 결과를 보도하는 뉴스는 '파동에너지, 드디어 인간의 진화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져' 따위의 제멋대로 해석된 의견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세력들에게 좋은 먹잇감을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2011년 9월, 유럽의 CERN의 OPERA팀은 중성미자가 빛보다 아주 아주 아주 조금이지만, 그래도 더 빨리 이동하는 것 같다는 실험적 관측 결과를 발표했고 (732 km 거리를 이동하는 데, 중성미자가 빛보다 60 나노초 더 빨리 이동했다는 관측)*, 

*https://en.wikipedia.org/.../Faster-than-light_neutrino...


그 뉴스는 곧바로 전 세계 미디어에 타전되면서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OPERA팀이 이 뉴스를 보고한 의도는, 사실 '빛보다 빠른 입자가 있다더라'라는 특종을 선점하려는 시도보다는, '우리 팀에서 이런 실험 결과를 얻었는데, 다른 학자들과 같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라는 공표의 성격이 더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는 전자에만 집중했으며, 일반 대중들도 '초광속 입자'의 존재는 매우 '핫'한 주제였기 때문에, 이 관측 결과가 설익은 결과인지에 대한 의심의 싹이 나기도 전에, 많은 이들은 관련 뉴스 피드에 열광을 했다. 사실 이 실험 결과는 '빛보다 빠른 입자를 찾으면 시간여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아주 오래된 SF 팬심을 직통으로 저격하는 뉴스이기도 했고, 백 년 묵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수정할 시점이 되었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소지도 다분했다. 하지만, 그 보고는 미디어에 나오자마자, 역시나 그렇듯, 많은 물리학자들의 회의론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arxiv 및 물리학 저널들에는 이 결과의 허점을 논하는 페이퍼들이 줄기차게 등장하였다. 수개월의 재현 실험과 검증 결과, 일부 SF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2012년 6월, CERN 연구팀은 알고 보니 실험장비 결함으로 인해 신호에 오류가 생겨 그것을 잘못 해석하였던 실수였음을 공표하였다. 즉, 초광속 중성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한 것이다. 결국 초광속 중성미자 실험 결과는 겨우 9개월짜리 해프닝으로 일단락되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실망하였으며, 설익은 결과를 제대로 된 리뷰도 거치지 않은 채 급하게 미디어에 흘린 CERN 연구팀에 대한 성토도 뒤따랐다.**

**https://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


애초 CERN의 연구팀이 이 결과를 먼저 학계의 리뷰를 거치게 하였다면, 9개월이나 걸릴 필요도 없이, 아마 3-4개월의 검토만 거쳐서 (길어 봐야 반년..),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리뷰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부분이 발견되었더라면, 아마 미디어에는 노출될 가능성도 없었을 것이다. 실험 결과의 최초 공표 이후, 많은 물리학자들, 특히 노벨상 수상자들이나 대중에게 잘 알려진 학자들도 회의론적 견해를 표했지만, OPERA의 대변인은 이들의 비판이 자신들의 발견을 부정할 정도로 설득력이 없다고까지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대변인을 통해 이런 견해를 급하게 표한 것은, 사실 연구팀의 리더로서, 그리고 그 이전에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의 실수이기도 하고, 성급한 대응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런 dispute는 설전을 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을 통해 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고 해서 CERN 전체의 연구력이나 신뢰도에 큰 상처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CERN에서 놀라운 발견을 공표할 때는 아무래도 대중 입장에서는 조금 힘을 빼고 받아 들어야 한다는 학습 효과가 생겼을 것이다. 주장 철회 3개월 전인, 2012년 3월, OPERA의 대변인과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던 물리학자 두 사람은, 내부의 반발과 의견 불합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을 했다. 초광속 뉴트리노 사건은 이렇게 9개월 만에 해프닝으로 일단락되었지만, OPERA collaboration 팀 내부에서는, 꽤 인상적인 흔적과 흑역사를 남겼을 것이다.


OPERA팀 같은 다국적 대규모 실험물리학 그룹에서도 이런 실수가 생길 수 있다. 분명 팀 내부에서 반박 의견도 많았을 것이고, 회의론자들의 따끔한 지적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초광속 뉴트리노 실험을 급하게 대중에게 공표하여 스스로 흑역사를 만든 셈이다. 하물며, 개인 연구자들은 적확한 peer-review 가 없으면 스스로의 발견과 주장에 대해 필터를 거칠 기회가 많이 줄어든다. 가까운 친우의 의견을 들어도, 그것은 친우의 의견일 뿐, 적절한 리뷰라고는 할 수 없다. 특히, 그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고, 내가 적어도 이 분야에서는 수십 편의 논문을 써 온 권위자라는 의식을 가진 연구자들은 주변의 반박 의견이 귀에 잘 안 들어 올 수도 있다. 특히, 한국처럼 여전히 선후배 관계, 사제 관계 같은 수직적 학계 분위기가 잔존한 환경에서는, 제자가 선생의 이론에 반기를 들기 힘들고, 후배가 선배의 결과를 반박하기 쉽지 않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거름 장치로서 학회의 저널, 이왕이면 권위 있는 저널에 자신의 결과를 제출하여 자신과 관련 없는 익명의 심사자 여럿에게 더블 블라인드 심사를 받고, 수정과 대응을 통해 심사위원 전원의 의견 합치와 에디터의 결정에 따라, 최소한의 퀄리티 컨트롤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출판된 결과라고 해도, 몇 개월 혹은 몇 년 안에 정면으로 그것을 반박하는 다른 그룹이나 개인의 연구 결과가 보도될 수 있고, 그에 따라 먼저 보고된 결과는 수정을 하든 폐기를 당하든, 혹은 그것을 디펜스 하든, 어떤 식으로든 과학적 연구의 결과는 이론으로 확립되기 전에는 가설에 불과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사실 출판된 과학 연구 결과마저도 대중 상대의 미디어에 보고하는 것은, 굉장히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다. 대중의 알 권리만큼이나, 대중이 현혹당하지 않을 혹은 오해를 하지 않을 권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전 포스팅에도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결과일수록, 연구 책임자나 주저자의 의견과 더불어, 그 연구팀과 관련 없는 (conflict of interest가 없는) 학계의 비슷한 분야 전문가의 의견도 병치시킬 필요가 있다. 해당 연구 결과에서 진보된 부분과 한계점을 동시에 명확히 언급해야 하며, '최고', '최초', '유일' 같은 한정사의 사용을 가급적 삼가야 한다. 국내 미디어가 왕왕 가져오는 '노벨상급' 같은 수식어의 사용은 말할 필요도 없다. 출판된 과학 연구 결과도 이럴진대, 아직 동료 평가도 거치지 않고, 제3의 의견이 나올 수도 없는 설익은 연구 결과를 미디어에 노출시키는 것에 따르는 위험은 이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과학기술 관련된 연구 결과가 아무리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가급적 동료 평가를 거쳐 논문으로 출판된 것, 하다 못해 최소한 arxiv 같은 프리 프린트 서버에 공개되어 동료 연구자들에게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페이퍼를 기반으로 하여 뉴스가 생성되어야 한다. 당장 몇 달 안에 지구를 향해 오는 소행성의 충돌 가능성이나, 당장 대처해야 하는 환경의 변화 등에 대한 뉴스 정도라면 그 시급성 때문에 예외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예외가 될 만한 기초과학 연구 결과는 그렇게 자주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예외적인 연구 결과가 '제대로' 보도되어 대중에게 알려질 기회를 보장해야 하기도 해야 하므로, 특종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일 과학 연구 결과도 매우 조심스럽게 선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연구자도 미디어도 새로운 결과에 대해서는 늘 주관주의를 탈피하여 회의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최대한 드라이하게,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미디어와의 만남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연구자에게나 미디어에게나, 그리고 대중에게나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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