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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Jul 15. 2021

뉴호라이즌호의 탐험

자연에 대한 탐색은 인내심과 호기심을 필요로 한다.

나는 미국 박사과정 유학 시절,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라스베이거스에서부터 보스턴까지 자동차로 미국 대륙횡단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여행의 모든 순간과 방문했던 모든 장소가 새롭고 또 즐겁고 행복했지만, 그중에서도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로드트립 있다면, 유타주의 Cedar city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와이오밍주의 Yellow Stone National Park까지 620마일에 이르는 장거리 여행을 들 수 있겠다. 


15번 주간 고속도로 (I-15)를 따라 하염없이 북쪽으로 하루 종일 내 달려, 간신히 일몰 전에 공원에 들어서서, 다시 30분을 더 달려 석양을 배경으로 그 유명한 Old faithful 간헐천의 분출 쇼를 직접 봤던 그 순간에 느꼈던 감동은 지금도 3D 영화처럼 생생하다. 그 뜨거운 여름에 오로지 단 둘의 젊음만 믿고, 의기투합하여 겁 없는 젊은 부부가 600마일이 넘는, 주변에 볼 것이라고는 광활한 서부의 사막 지형 밖에는 없는 지겨운 자동차 운전을 감내하면서까지 (사실 그중 500마일 정도는 와이프가 담당했고, 나는 잠깐 와이프가 피곤해할 때만 두어 시간 정도 벌어 드리려 100마일 정도만 운전했다.) 로드트립을 했던 이유는 위대한 자연의 경관을 우리의 두 눈으로 직접 보자는 일념 외에는 없었다.


한 때 태양계의 9번째 행성이었던 명왕성의 최근접 거리 12,500 km 지점을 통과한 미국의 우주탐사선 뉴호라이즌호는 명왕성과 그 위성계, 그리고 태양계 외곽 지역의 외행성계를 탐사하겠다는 의도로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 56억 7천만 km나 되는 아득한 거리를 외롭게 여행하며 마침내 2015년, 명왕성에 도착하였다. 물론 도착 직후, 그 외곽에 있는 카이퍼 벨트의 추가 탐사를 위해 그냥 fly-by 해버렸기에, 지금은 계속 명왕성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정확한 이미지를 얻을 수 없었고 데이터 확보가 미천했던 태양계 최외곽의, 이제는 왜행성으로 신분이 격하된, 조그마한 천체를 탐사하겠다는 일념 하에, 그 먼 거리를 여행하게끔 정밀하게 계획하고 계산을 거듭하고 내내 조마조마 마음도 졸이고, 도착하지 못할까 걱정을 거듭했지만, 마침내 도착해서 가장 선명한 명왕성의 모습을 보게 된 NASA의 연구팀의 심정은 아마, 2009년 우리 부부가 끝없이 여행 계획을 시간순으로 거듭 확인하고, 중간에 기름이 떨어질까 조마조마해하고, 해지기 전에 도착하지 못할까 걱정했지만, 마침내 계획대로 Old faithful의 간헐천 분출 쇼를 멋진 석양과 함께 본 심정과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과학적인 가치와 첨단기술의 증명, 그리고 공동연구로 인한 성과의 확산 측면에서, NASA 연구팀의 노력은 훨씬 더 훌륭하고 값어치 있음에 분명하지만, 적어도 순수한 호기심과, 그것을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 측면에서는 2009년 여름의 우리 부부 기억을 되짚어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10년이라는 긴 세월 (사실 초기 아이디어 입안과 계획부터 우주탐사선 조립 및 발사 준비 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20년이 다 된다..)과 막대한 연구비, 10년 동안 기다려 준 NASA의 보드진과, 미국 연방정부, 세금을 기꺼이 우주 탐사에 쏟아부을 수 있게 찬성해 준 미국 국민들은, 이렇게 10년의 기다림이 큰 보람으로 되돌아왔을 때, 어마어마한 자부심, 나라에 대한 자신감, 가장 앞서 있다는 충만함, 그리고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심긴 과학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의 씨앗이라는 큰 자산을 동시에 얻은 셈이다. 우리 부부도 2009년의 대륙횡단 여행 동안 말로 다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즐겁고 보람된 여행을 하면서 부부의 신뢰와 결속력, 단합, 애정이 더욱 단단해진 것을 많이 공유하였다. 이후 나와 와이프는 각자의 학위 과정 동안의 어려움과 졸업 직전의 엄청난 체력전을 겪어야 했지만, 이러한 경험들은 그 속에서도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느 나라나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나라는 없다. 특히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기초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1차적으로는 국격을 대표하는 기초 지표인 데다가, 2차적으로는 산업기술의 자생력과 국부창출의 원동력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견 당장 미국 국민들의 지금의 삶에 그다지 피부와 와닿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은 이번 우주 탐사 역시, 장기적으로는 초장거리 초고속 광통신 기술, 데이터 백업 기술, 이미지 처리 기술, 자원 탐사 기초 자료, 태양 활동의 태양계 내부에서의 변동 정보, 지구를 위협할 수 있는 소행성 대의 실제 밀도 같은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정보를 한 아름 안겨줌으로써, 당장 지금 세대의 미국인들에게는 몰라도, 그들의 자녀, 손자, 증손자 세대에게는 분명히 큰 도움으로 돌아올 자산을 얻었을 것이다. 나름 선진국의 대열로 올라섰다는 우리나라가 언제쯤 뉴호라이즌호 탐사 미션 같은 기초과학의 거대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기술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민의식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더 위대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금보다는 훨씬 더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의 조금 더 조직적인 투자와 흔들리지 않는 인내심, 그리고 세금을 내는 국민들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 


Yellowstone를 들어 봤고, 사진과 영상으로 그 공원의 아름다움을 접한 사람은 많겠지만, 아름다운 석양과 새소리, 시원한 바람과 유황냄새가 섞인 자연의 위대한 조합을 직접 보는 경험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기초과학도 더 말해 무엇하리. 뉴호라이즌호의 명왕성 탐사 미션 성공,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 전해질 작은 탐사선의 멋진 소식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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