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의 추억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도 결국은 흘러가더라

by 원현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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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을 방금 다 읽었다. 6.25 전후의 비루한 삶이 작가의 첫사랑 중간중간에 묻어있어서 좋았고,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그 서술들이 너무나 맘 아프게 조금씩 다가왔는데 마지막 한 문장에서 터져버리고 말았다.


평생 불쌍한 외아들만 바라보고 살다가 돌아가신, 어쩌면 시어머니가 되었을 수도 있는 그 남자네 집 어머니의 영정을 찾아뵌 작가가 그 첫사랑이었던 외아들이 어머니가 끝까지 남루한 속옷을 입다 돌아가셨다는 걸 얘기하고 무너져 울 때 그제야 괜찮다며 포옹을 한다. 이건 직접 내가 써봐야겠다.



'... 우리 엄마 너무 말랐더라. 그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울고 있었다. 점점 더 심하게 흐느끼면서 볼을 타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도 애끓는 마음을 참을 수 없어 그 남자를 안았다. 그 남자도 무너지듯이 안겨왔다. 우리의 포옹은 내가 꿈꾸던 포옹하고도 욕망하던 포옹하고도 달랐다. 우리의 포옹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


우리의 결별은 그것으로 족했다.'



내가 혹시라도 그 시절 그녀들 중 한 분과 계속해서 알음알음 연락을 지내고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나의 삶의 가장 마지막 나날 어디 즈음에 담담하게 결별을 하게 되는 걸까 싶어서 거기서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눈 벌게져서 흐느끼다가 이제 정신을 좀 차렸다. 그러다가 계속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나는 도대체 요즘 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예전에 박완서작가의 다른 수필일까 소설일까를 읽다가, 시절의 궁상함에 아 내 삶도 너무 힘들어 죽겠는데 다른 사람의 궁핍을 왜 읽어야 하나라고 책을 내려놨던 기억이 있다.


예전에 정부 발주의 프로젝트를 할 때였다. 당시에 일을 인수인계 받았다는 이유 하나로 전임 팀장 잘못에 대한 담당 과장의 폭언을 30분 넘게 전화로 들었었다. 그제야 분이 풀린 과장이 앞으로 잘하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잘못도 아니었던 일들인데, 그냥 처음 프로젝트 온 애 군기 잡으려고 그런 거였던 것 같다. 하지만 국내 프로젝트가 처음이었던 나는 앞으로 3개월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어떻게 프로젝트를 하나 눈앞이 캄캄해졌었다. 그때만 해도 이 지옥이 초기 약속했던 3개월이 아니라 1년이나 지속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보이지 않는 아픈 곳만 골라 때리는 것처럼, 그 과장은 무엇을 질책하거나 부탁할 때나 늘 증거가 안 남는 전화통화만 사용했다. 나중에 다른 팀장 분들은 혹시 모를 법적 분쟁을 위해 휴대전화 녹취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는데 그분들도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 싶었다. 그런 방법도 몰랐던 나는 그저 그렇게 전화로 당하고 나면 한 10분 멍하니 있다가, 아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했나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저런 전화를 받지 않을까 그 생각만 하게 되었다.


나는 그 전까지는 주로 해외 프로젝트 개발업무를 담당했었다. 해외 프로젝트는 일이 힘들지 사람이 힘들지는 않았다. 영어와 문서로 매개된 요구사항의 개발과정은 합리적인 반박근거만 있으면 오히려 정확하게 고객에게 피드백이 왔다. 계약서 문장 하나 단어 하나의 힘으로 각종 전략을 펼칠 수 있었던, 힘들지만 즐거웠던 개발 프로젝트가 그리고 내가 사랑하던 나의 일이 그 프로젝트에서는 너무나 쉽고 속절없게 부정당했다. 한국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웠다. 그렇게 과장이 비꼬면서 말하곤 하는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이런 일도 못하겠어요'라는 문장은 또 얼마나 나를 옥죄었는지 몰랐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는 그 어떤 문장도 내 마음속을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 그 정부 프로젝트 1년 동안 나는 단 한 권의 책도 완독을 하지 못했다. 다른 팀장들 모두가 주말 출근을 자처했지만, 나는 그것까지는 도저히 못하겠다 싶었다. 본래 나는 충분히 쉬어야, 쉰 만큼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주말 출근을 하지 않는 대신에 주말의 여가를 잃었다. 뭔가를 한 거 같은데 백지처럼 주말의 기억은 없다. 그때가 코로나 막바지 시절이라 오히려 집에 틀어박혀서 길고 어렵지만 감동적인 책들 읽기 딱 좋은 때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쉬운 생각도 든다.


영원히 끝날 거 같지 않았던 코로나도 끝났고, 그 지옥같던 프로젝트도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힘든 시기를 지나 차차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지금은 똑같이 다른 분야의 공공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면서도 즐겁게 책을 읽는 여가에 더해 글을 쓰는 사치마저도 부리고 있다.


'나목'은 1931년생인 박완서 작가가 1970년에 동아일보 공모하여 당선된 소설이다. 나이 마흔에 처음 쓴 데뷔작으로 쓴 소설이 장편이라니... 처음에는 미군 PX근무 때 알게 된 박수근에 대한 전기를 써보려고 했단다. 그런데 쓰다 보니까 빗나가면서 상상을 보태고 그러다 보니 쓰던걸 다 파기하고 아예 소설로 전향했고, 그렇게 나온 소설을 통해 등단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어찌 위대한 박완서작가님과 비교를 하겠냐마는, 나도 글 쓰면서 이 기억이 맞나? 싶은 때가 있고, 적절히 내 기억이 맞겠지 뭐 하면서 쓰게 되는데, 아마 상대방은 전혀 다르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글 쓰면서 그때 추억을 회상하면서, 나도 모르게 글이 마구마구 나가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즐겁고, 또 이 글을 재밌게 읽어줄 사람들이 있기에 또 너무 행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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