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가 가능한 엔지니어의 힘이란
이제는 더이상 추억할 수 없는 그녀들이 없어서 글을 못 쓰겠구나 라고 아쉬워하는 하루였다. 그러다가 추억을 글로 옮기는 일이 꼭 그녀들과 엮여야 한다는 법은 아니쟎아?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사실 무언가 울분을 토하듯이 첫 글이 써진 상황이라, 꼭 그런 상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몇 글은 그냥 내가 좋아서 담담하게 에피소드를 적었던거 아닌가.
그러면 회사생활에서 겪었던 일을 써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쿠사츠 출장 얘기를 첫 글로 써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굉장한 우연이었는데, 쿠사츠에서도 이런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때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음악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못 믿겠지만, 그 시절에는 일본어가 나오는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등이 모두 불법이었다. 반일감정이 아직 상당하던 시기인 이유도 있었지만, 일본 문화 자체가 너무 파괴적이라 우리나라의 문화를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었단다.
사실 이 부분은 한일학생 포럼이라는 한국, 일본 대학교 교류 활동 당시에 내가 맡았던 사회문화 분과의 주제였고, 그럴리 없다. 문화 개방이 양국의 문화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라는 결론을 그 당시 대학생 대표들은 같이 냈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그 예상대로 양국은 각자의 문화를 발전시켜 세계에 널리 보급하고 있으니 그 시절 열띤 토론이 정말 가치가 있었구나 흐뭇하기만 하다.
어쨌거나 그렇게 일찌감치 일본 문화를 접하면서 간단한 히라가나 정도는 읽고 쓸 수 있었고, 이런 자신감으로 한일학생 포럼 한국초대 행사를 98년에 진행한 뒤에, 다음해인 99년에 다음 기수의 일본초대 행사 기간에 맞춰서 나혼자만의 첫 외국 베낭여행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처음 하네다공항에 내려서 깨달은 사실은, 나는 일본말은 하긴 하는데 듣는거는 거의 안된다는 좌절에 가까운 자각이었다.
뭔가 길을 찾거나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거나, 나는 말은 하는데 내가 말을 하니까 상대방은 아 일본어를 하는구나 하고 일본어로 답변을 하고, 나는 그게 들리지가 않는 상황이었다. 이게 반복되니까 너무 당황스러워서 나중에는 말도 안나오고 거의 벙어리 모드가 되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사실 이때 첫 해외여행의 다른 좌절도 많았는데, 이야기의 주제가 그게 아니라서 생략하고, 어쨌거나 그 여행은 내가 일본어의 의사소통은 안되는구나 라는 좌절감만 안고 돌아왔던 슬프고도 안타까운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 뒤로 어디가서 일본어 할줄 안다는 얘기 절대 꺼내지 않고 조신하게 살았었다. 그 뒤에 지금 회사에 입사하고, 해외 프로젝트를 전문으로 하는 부서에 배치되어, 그당시에는 입사 초기부터 중국 우한, 천진, 광조우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프로젝트를 수행했었다.
한참 중국 프로젝트를 하던 중에, 일본의 옴론과 협업하여 대만 제2도시 카오슝에 장비를 납품하는 프로젝트에서 급한 호출이 왔다. 일본에 출장가서 옴론과 기술 이슈를 해결해야하는데, 이부분을 담당하던 선배가 다른 일이 생겨서 출장을 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장비 내부 스펙 문서를 살펴보니 구조가 중국 납품 장비와 그다지 다르지 않아서 내가 가서 대응해도 될 것 같았다. 대만 프로젝트 피엠님은 기뻐하며 나의 출장 스케쥴을 잡았고, 나도 일본이야 나쁘지 않지 하면서 담담하게 출장 준비를 했었다.
피엠님과 둘이 간사이 국제공항에 내려서 처음 와보는 공항이 신기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입국 줄을 안내하는 역할의 나이 지긋한 도우미 분에게 밖에 날씨가 어떠냐고 스윽 일본어로 물어봤다. 그런데 그분이 하는 얘기가 들리는거다. 신기한 감정이었다. 대학때의 쓰라린 경험 이후로 따로 일본어를 더 공부하거나 한건 아닌데, 이게 왜 들리지?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첫 베낭여행에서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이런 얘기 안하고, 부지런히 하루카 고속열차를 끊어 오사카를 지나 교토까지 온 뒤에, 다시 사철을 타고 목적지인 쿠사츠까지 이동을 했다. 쿠사츠는 옴론 본사가 있는 작고 소박한 도시이다.
도시의 인상은 그렇게 소박했는데, 옴론 본사는 정말 놀랍고 인상깊었다. 장비 만드는 회사가 온통 새하얀 외관을 갖고있었던 것도 놀라왔는데, 건물 안 역시 엄청나게 밝은 조명에 먼지하나 없는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립 장비 하나하나 이동해야하는 위치와 대기 위치가 표시되어있고, 정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사람들이 장비를 쓴 뒤에 그 위치에 이동을 시키는 광경은 저 노동자 분들 퍼포먼스 예술하나? 라는 의심을 사게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몇번은 사내 식당에서 점심을 얻어먹었는데, 식당 역시 깔끔함의 정수를 느낄 수 있었다. 접시 밑에 RF센서가 있어서 부페형식으로 진열되어있는 조리대에서 원하는 음식만 골라담고 지나가면 알아서 가격이 계산된 뒤에 근무자 월급에서 사후정산 되는 구조라고 했다. 역시 센서 제작의 세계 최고 회사 다웠다.
그 당시 회사의 근본 모토를 영어로 정의하고 회사 로고에 서술하는 방식이 유행이었는데, 옴론의 모토도 너무 강렬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Omron - sensing tomorrow 였다. 우리회사 센서 진짜 잘만드는데, 너무 잘만들어서 내일을 혹은 미래를 예측해볼게 뭐 이런 의미? 여담으로 오토바이 만드는 카와사키라는 회사의 모토도 내가 무척 좋아하는데, Let the good times roll 이다. 이런 거창하지는 않지만 명확한 슬로건이 의외로 나같은 사람한테는 더 와닿는 거 같다.
회사 좋은건 좋은거고, 우리는 우리의 출장목적을 관철시켜야했다. 당시에 옴론이 요구하는 요구사항에 대해 기술적으로 오버스펙이어서 필요없으니 우리는 요구사항을 없애거나 축소하자는 의견이었다. 사업관리 하시는 분 중에 삼성자동차 출신 분이 있어서 그분이 주로 일본어 통역을 전담하셨는데, 역시 그 출장에는 사정상 못 오시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급하게 옴론쪽에서 영어 통역사를 준비한 상황이었다.
이게 굉장히 희극같은 상황인게, 옴론의 엔지니어가 일본어로 얘기하면, 젊은 통역사 분은 기술적인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이걸 그대로 영어로 얘기를 해준다. 그러면 나와 피엠님이 그걸 각자 해석해서 이런 얘기 아냐? 라고 결론내리고, 다시 영어로 얘기하면, 그 통역사분이 일본어로 전달하는 그런 형식이었다. 당연히 시간은 질질 끌리고, 내용전달도 제대로 되질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었다. 빨리 회의 끝내고 처음 온 교토나 오사카 구경이라도 하면 좋겠는데, 이렇게 하다간 예정했던 2박3일 출장 일정도 다 소화못하고 돌아가야할 판이었다.
그런데, 회의실에 앉아서 답답해하는 동안에 엔지니어가 하는 일본어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원래 영어도 그렇지만, 엔지니어링 계열의 단어들은 전문용어 자체가 어려워서 그렇지 단어 자체의 상징성이 워낙 큰지라, 한 단어가 중심을 잡아주면 나머지 문법들은 알아서 따라오게 된다. 그리고, 그 일본 엔지니어가 말도안되는 얘기를 하길래 순간 또 욱 하는 느낌과 함께 일본어로 '그건 트랜잭션 관점에서는 중복이라서 필요 없는 방법이쟎아요!!' 라고 외치고 말았다.
순간 회의실에 2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나는 열받아서 기술적으로 필요없는 방법인 이유를 계속 일본어로 얘기했다. 계속해서 말을 주고받으며 그 엔지니어와 논쟁을 벌였고, 그 일본 엔지니어가 더이상 받아칠 논리를 찾지 못하자 누군가가 잠깐 쉬었다가 다시 회의하자고 얘기를 했다. 그제서야 나는 아차. 하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당연히 그 이후 회의는 우리에게 유리하게 흘러갔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마지막 날의 오전 회의는 짧게 마무리하고 끝내는 걸로 결론을 낼 수 있었다. 피엠님은 그제서야 왜 그동안 일본어 할 수 있다는 걸 얘기 안했냐고 핀잔을 주셨는데, 내가 아무리 저 일본어 할 수 있는 거 저도 몰랐어요. 라고 얘기를 해도 도무지 믿어주시지를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 말도 맞는 게, 나도 그런 폭주의 순간이 없었으면 그렇게 순식간에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을건데 라고 느꼈으니까. 나중에 나영석이 유튜브 예능에서, 외국 어디서 촬영준비를 하다가 그 도시 시장에게 허가서까지 받았건만 현지 경찰한테 계속 딴지를 받으니까 열받아서 말도안되는 유려한 영어로 그 경찰을 꼼짝못하게 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을 때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사람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순간에는 120%의 실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그 이후에도 가끔 옴론과의 회의에서 본의아니게 전담 통역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당황스러울 때가 몇 번 있었다. 피엠님이 열받아서. 박과장, 내말 토씨하나 안빼고 똑바로 전달해! 라고 운 띄운 뒤에 진짜 쉬지않고 5분을 말씀하시면, 나는 전문통역사도 아닌데 이걸 통역해야 하는게 말도안되는 고역이었다.
한 1분? 정도 일본어로 떠듬떠듬 겨우 핵심만 간추려서 말을 전하면, 피엠님이 의심의 눈초리로 정말 정확하게 전달한거 맞아? 라고 쳐다보시는데 그때 흐르던 식은땀이란... 나 있는 거 의식못하고 회의실에서 옴론 직원들끼리 내부회의를 하다가 우연히 나를 보고, 헛. 쟤가 겉은 엔지니어인데 일본말 알아듣는 친구였지 하면서 황급히 회의실 밖으로 우루루 나가던 모습도 재밌는 추억으로 남아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통역을 하면서 양쪽 정보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우월감 역시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인데, 이건 정말 말로는 설명을 못하겠다. 모든 정보가 나에게로 모이고, 내가 이 정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지만 나는 효율의 공대생 출신 답게 출장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우리쪽에 유리하게 사용하고 싶은 피엠님의 바람과 달리 양쪽의 최선의 결론을 내는데 모든 정보를 사용하곤 했다.
그렇게 마지막 날 회의를 오전에 빨리 끝내고, 오후 비행기 타기 전에 피엠님과 교토역 가기 전에 들러 방문했던 청수사는 어찌나 예쁘고 아기자기하며 보기에 좋았는지 모른다. 진짜 한 시간 정도의 뛰듯이 감상한 짧은 청수사 한바퀴 관광이었지만, 일 잘해서 받은 보상같은 느낌이라 정상에서 바라봤던 고즈넉한 교토 시내의 풍경이 굉장히 오랜동안 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 후 이 피엠님과는 계속해서 인연이 되어 후속 프로젝트를 계속 수행하게 되면서 각종 에피소드를 만드는데, 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