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X캠퍼스 4층 이야기
쿠사츠 출장 이야기를 적으면서, 아 나 진짜 출장 많이 다녔는데 그 얘기 쓰려면 진짜 많이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강 목차를 적어보니 20편 이상 나온다. 가족과 함께 인도 장기출장으로 2년여 지냈던 시절도 쓰다 보면 5편 이상은 쓸 수 있을 텐데, 이건 전적으로 가족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언제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한참 재밌게 목차 정리를 하다가 슬쩍 0번 챕터를 써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무미건조한 출장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얘기는 반드시 필요할 것 같았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건물을 2개 쓰고 있다. 따라서 이 건물들을 구분할 구분자가 필요했고, 인사팀에서는 또 어디서 이상한 것만 배웠는지 이 두 개의 건물에 각각 '캠퍼스'라는 표현을 붙였다. 미국의 IT회사에서 본인들 건물이 대학 캠퍼스처럼 탐구와 열정이 가득한 곳이 되길 바라는 생각에서 자신들의 회사 부지를 캠퍼스라고 부른 거 같은데, 무슨 황량한 우리 회사 콘크리트 건물이 캠퍼스여 라는 쓴웃음이 난다. 일단 이름을 특정하면 안 될 거 같아 쉽게 X캠퍼스, Y캠퍼스라고 부르기로 한다.
Y캠퍼스에는 개발팀들이 주로 근무를 했고, X캠퍼스에는 사무직팀이 주로 근무를 했다. 그런데 우리 부서는 지하철 역사에 들어가는 장비를 개발하다 보니 공간이 많이 필요했고, 개발팀 공간으로는 부족해서 X캠퍼스의 4층 한쪽 구석을 장비 테스트 공간, 소위 말하는 랩실로 쓸 수밖에 없었다. X캠퍼스 4층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곳이었다.
우선 입구에서부터 커다란 사람크기의 동물 인형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사장님이 한때 회사를 홍보하는 최선의 수단은 앙증맞고 친근한 동물 캐릭터다!!라는 이상한 미신에 꽂혀서, 비싼 돈 주고 디자인 외주를 맡겨서 만든 다람쥐 인형들이었다.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 이제 왔니?라는 듯이 기괴하게 밝은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는 다람쥐 친구들을 보면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따로 필요 없었다. 대강 예상은 되겠지만 그 장소는 회사에서 안 쓰는 비품들이 무덤처럼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때 우리는 출장에 대비해 새 소프트웨어의 최종점검을 해야 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깔고 테스트 작업서대로 각 장비에 대한 유닛테스트를 진행하고, 테스트가 끝나면 버전 프리징을 하고 현장에 적용할 프로그램 목록을 정신없이 패키징 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X캠퍼스 4층 랩실 옆에 빈 책상과 의자가 일렬로 늘어서있는 걸 인지하지도 못했었다.
2주간의 긴 출장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다음날 가져갔던 테스트 모듈들을 갖다 놓으러 X캠퍼스 4층으로 향하는데, 어디선가 삐~~~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싶어서 가보니 발매기 장비 중에 하나가 문이 살짝 열려있었고 그 안에서 역무원을 호출하기 위한 부저가 울리고 있었다. 지하철 발매기는 현금이 들어있는 장비이기 때문에 뒷문을 열고 1분 안에 패널에 암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현금 절취 시도라고 가정하고 큰 소음을 내서 역무원을 호출하게 되어있는데, 그 기능이 동작한 것이었다.
출장준비한다고 테스트를 마친 뒤에 급하게 장비 문을 닫다가, 발매기의 문이 채 완전히 닫히지 않았던 거다. 그리고 장비의 진동 같은 어떤 이유 때문에 문이 열리게 되고, 타이머가 정확하게 작동해서 부저가 울리게 된 것이다. 뭐 그건 그럴 수 있지 하고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왜 이제야 나타났냐고 나를 바라보는 원망의 눈빛들을 마주하고 말았다. 그제야 책상에 앉아있던 나이 지긋해 뵈는 부장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제 저 소음에서 해방되는구나 하는 안도의 표정과 함께, 저렇게 소리를 내게 해놓고 이제야 나타나면 어떡하냐는 부장님들의 하소연을 계속 들으면서 나는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과를 하면서도 뭔가 느껴지는 부조화스러운 면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Y캠퍼스 개발팀의 내 자리로 돌아오면서 그제야 나는 부조화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고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X캠퍼스 4층의 그 부장님들 자리에는 노트북이 없었다.
우리 회사는 IT회사라서 업무를 하는 데는 노트북이 필수였다. 입사 때부터 전자메일과 전자결재 시스템으로 모든 업무를 수행했고, 회사 공지도 사내 전자 게시판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노트북은 회사에서 지급했고 3년에 한 번씩 최신 노트북으로 교체를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X캠퍼스 4층 책상자리에는 노트북이 없었던 것이다. 재수 없었으면 출장 간 다음날 부저가 울리기 시작했을 수도 있으니, 그분들은 최대 2주 동안을 영겁의 시간으로 느끼면서 그 소음을 견뎠던 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라면 소음이 나는 진원지를 찾아 원리를 이해하려고 애썼을 거고, 이내 장비의 문을 닫아봤을 거다. 그 간단한 시도를 못해서 내가 나타나기까지의 2주간을 참고 또 참았던 거다. 그리고 또 놀랬다. 설마 장비에 붙여놓은 문구 때문에 그런 건가? 장기 테스트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그 장비에는 어찌 보면 굉장히 흔한 '관계자 외에 만지지 마세요'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저 문구 때문에 하루 이틀은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저렇게 소음이 계속된다면 나는 일단 소음을 멈추게 하는 시도를 한 뒤에, 나중에 누군가가 나타나면 실험 실패하게 된 것은 미안하지만 랩실 근처에 사람이 상주할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했던 거다. 실패한 테스트는 다시 수행하셔라라고 맞서 싸웠을 거다. 그런데 저분들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며칠 동안 이 의문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저분들은 회사에 순종하다가 회사에서 버림을 받은 존재라서 그랬던 거 아닐까. 회사란 월급을 주는 참 소중하고 고마운 곳이지만, 나 자신이 그 월급이라는 마약에 익숙해지면 거기에 의존하게 되고 회사가 하는 말에 순종적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생각 없는 순종의 끝은 X캠퍼스 4층의 노트북 없는 책상이다.
정말 머리를 한 대 맞는듯한 충격이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아무 철학이 없었다. 그냥 새로운 사이트 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시스템을 납품하고, 또 때론 고객들과 열심히 싸우고, 부서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고... 전형적인 SI (System Integration) 개발자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회사생활의 끝이 저 부장님들과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그 뒤로 어떤 일이 있어도 굉장히 주체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사장이라면 어떤 결론을 내릴까 라는 역할의 변경이었다. 회사의 교육도 건성으로 듣지 않고 어떻게든 내 지식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이렇게 배운 걸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우연찮게 사내 강의 제의도 받게 되어 사내 강사도 많이 진행했었다.
강의라는 것도 하면 할수록 늘어서, 비록 별 1개 혹은 별 5개밖에 없는 괴짜 강사라는 타이틀을 받게 되었지만 사람들 앞에 나와서 얘기하는 것도 꽤 자신이 붙게 되었다. 사실 지금 쓰는 얘기도 사내 강의 하다가 듣는 사람들이 기술 내용을 지겨워할 즈음에 고백하듯이 얘기하는 주제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완전히 몰입해서 듣는 아저씨들도 있고,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진도 나가시죠 하는 젊은 친구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정말 정말 죄송하지만, 그 X 캠퍼스 4층의 부장님들 덕분일 지도 모른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나는 회사의 생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말았으며, 회사란 게 나에게 무엇인지, 일이란 게 나에게 무엇인지 깊은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인생에 대한 고민도 계속해서 하게 되었다. 건성으로 읽던 책도 더 몰입해서 읽었고, 어떤 일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하는 태도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회사가 더 이상 지하철 사업을 안 하게 되어서 귀염둥이 다람쥐들도 어딘가로 사라지고 노력이 묻어있던 장비들도 결국 고철로 폐기되었지만, 그때의 우리 부장님들은 어딘가에서 잘 정착하셔서 힘들지 않고 여유로운 노년의 라이프를 즐기고 계시기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