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능력자들과 처음 일해 본 경험

하이데라바드의 어벤저스

by 원현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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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정리하다 보니 아무래도 가장 마지막 출장 기간에 가장 강렬한 경험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인도 하이데라바드 출장 얘기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인도의 도시 중 익숙한 곳은 수도인 델리나 경제도시 뭄바이, 북쪽의 콜카타 혹은 IT로 유명한 벵갈루루일 것이다. 현대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현대차 공장이 있는 첸나이를 들 지도 모르겠다.


하이데라바드라는 도시는 생소할 텐데, 이곳은 인도의 여섯번째 인구 수를 갖고 있는 남인도 도시로 벵갈루루와 함께 인도 IT를 이끌고 있는 혁신도시이다. 제약회사 다니는 분들은 알 수도 있다. 각종 위험한 약들의 임상 도시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 우스개로 비아그라 짝퉁인 수아그라의 최대 생산 도시라서 출장 때 어르신들 수아그라도 참 많이 사드렸었다. 출장 중에 감기로 고생할 때, 여기 약국에서 정체불명의 감기약을 한 움큼 사 먹고 하루 종일 정신 못 차린 후에 다음날 멀쩡하게 나은 적도 있다. 북인도와 남인도의 차이도 재밌는데, 나중에 소개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고 (무슨 아련하게 다음 질문으로 궁금증을 이끄는 챗지피티 같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봐야겠다.


회사에서 지하철 사업을 정리하기로 결정한 이후에,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현재 진행 중인 해외 프로젝트였다. 계약서라는 게 참 대단해서, 어떤 이유로 프로젝트가 중지될 경우에 대한 조항도 존재한다. 국제 표준 계약서라는 게 있어서 보통 12~13 챕터 쪽에 Termination 조항이 존재하는데, 무시무시한 내용이 잔뜩 들어있다. 제안서 쓸 때 나는 보통 2~3장의 Scopes and Services 쪽의 기술 부문만 집중했지, 저 쪽은 건성건성 읽으면서 와 천재지변 났을 때에 대한 조항도 있네? 이러면서 신기했을 따름이었다.


생각해 보면 계약서라는 게 항상 갑에게만 유리한 것도 아니다. 아무리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계약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시스템 납품자인 을이 갑자기 자기들 사정으로 우리 사업 더 이상 못해 안녕~ 이러는 상황이면, 수백억짜리 시스템을 설치해 놓고 서버가 멈추거나 납품 부품이 고장 나는 경우에 대응이 안 되는 거다. 우리는 그 정도 양아치는 아니어서, 회사 국내 영업부장님이 이미 지하철 사업을 맡아 따로 회사를 운영하기로 하고 대부분의 시스템 이관을 마친 상황이라 이 회사에 앞으로의 하이데라바드 시스템 기술지원을 넘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국제 계약은 당연히 이렇게 간단한 부분이 아니었다. 어떤 고객이 신생회사를 말만 믿고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때는 인도에서도 자체적으로 이 사업을 해보고 싶은 벤처기업들이 몇 군데 의욕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을 때였다. 여러 가지로 사정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초기 계약했던 영업부터, 시스템을 납품했던 개발부, 그리고 회사 법무팀까지 수많은 변수에 대해 고민하고 대응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하이데라바드의 어벤저스 팀이 탄생하였다.


영업은 입사 때부터 해외사업만 전담했던 김부장님, 법무팀은 어렵게 모신 해외변호사 출신 민상무님, 사업관리는 중동에서부터 플랜트사업으로 해외고객들 멱살 꽤 잡아봤던 연피엠님, 그리고 마지막은 황송하게도 나였다. 안타깝게도 나보다 출중했던 엔지니어 선배들이 많이 그 신생회사로 이동을 한 상태라서 그나마 아직 남아있던 내가 하이데라바드 프로젝트 실행기간이 가장 길고 히스토리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엔지니어였다.


김부장님은 국제 표준 계약서를 거의 다 외우고 있어서 그 자리에서 영문계약서를 뚝딱 고쳐 쓸 수 있는 분이셨고, 연피엠님은 플랜트는 소송이 다반사였어. 뭐 하면 싱가포르 코트가 가장 아시아계 기업한테 유리하게 판결 잘해주니 그쪽으로 가자고~ 이렇게 너스레를 떠셨다. 특히 민상무님이 압권이었는데, 이미 다른 회사에서 소송전문 변호사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키가 190은 되어 보이는 건장한 체격에 고객들과의 싸움을 즐긴다는 소문도 있었다.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이 어벤저스들과 함께 출장길에 올랐다.


이미 몇 번이나 겪어봐서 알지만 인도 고객들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인도는 영국에서 대부분의 시스템을 이어받은 나라라서 그런지 영문 계약서에 굉장히 강했다. 기술적으로는 내가 훨씬 많이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회의를 진행하다보면 인도 고객들의 논리에 말려서 결국 해주지 않아도 되는 기술들을 개발해 주는 걸로 결론나는 상황을 꽤 많이 경험했었다.


사업 철수 공문을 전송한 이후에 떨리는 첫 공식 협의 회의날이었다. 몇 번의 형식적인 안부 멘트가 지나간 이후에 본격적으로 서로가 유리한 계약조항의 서슬 퍼런 첫 창을 겨누고 합을 던졌다. 그런데 민상무님이 아 이 설레는 전장에 또 섰구나 라는 신나는 표정으로 'Ok. Let's get start'라고 외치면서 나도 겨우겨우 따라갈 스피드로 논리를 전개해 나가셨다.


진짜 무슨 영화의 한 장면 보는 거 같았다. 일단 민상무님이 큰 뼈대로 공격을 하고, 중간중간 인도 고객이 만만치 않은 반론을 펼치면 연피엠님이 특유의 여유로운 말투로 '응 그건 니 논리고, 내가 경험 많이 해봤는데 계약서 조항은 그런 내용이 아니야'라고 맞받아치셨다. 그러면 능글능글한 김부장님이 자 그럼 이렇게 정리를 할까요? 이렇게 이게 최선이라는 식으로 수정계약서 조항을 완성했다. 나도 가끔 기술적으로는 요게 맞아요라고 말을 꺼내봤지만 위대한 장수 옆에서 수줍게 칼 몇 번 휘둘러보는 햇병아리 병사 정도의 느낌이었다.


고수들은 고수들을 알아보는 법이라, 몇 번 합을 맞춰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어찌 그리 정교한 논리로 회의를 이끌어가던지 나는 보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불리한 상황은 맞았기 때문에 며칠 간의 첨예한 회의 끝에, 금액의 변경 없이 한국 기업이 아닌 유명한 싱가포르 IT기업과 조인트 계약을 맺은 인도 벤처회사에 기술이관을 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고 수정계약서 조항을 완성할 수 있었다. 회사 경영진은 큰 소송으로 가지 않고 그 정도로 사업을 접을 수 있는 것에 만족했다. 그렇게 최종 회의를 마친 후에, 연피엠님 호텔방에 모여 조촐한 자축 행사를 가졌다.


뭐랄까 회의석상에서는 그렇게 위대했던 분들이, 러닝셔츠에 추리닝 차림으로 직전 출장에서 가져온 수정방 중국백주를 꺼내고 어울리지 않는 인도 과자와 함께 야 우리 좀 멋있었지? 하면서 흥겹게 술잔치를 벌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정겹게 느껴졌다. 민상무님이, '연피엠 거기서 똥볼 찰 줄 내가 알았지. 내가 안 막았으면 어쩔번봤어?' 이러면 연피엠님이 '다음 공격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그래~ 술 받아~' 이러는데 옆에서 보는 나도 너무 웃음이 나는 거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술이 약한 데다가 공교롭게도 다음날 차장승진 심사가 있었다. 출장 중이라 어쩔 수 없이 국제전화로 심사를 볼 수밖에 없는 데다가 준비도 거의 못한 상황이었다. 아 박 과장한테 해줄 얘기 많은데~ 이런 아쉬움의 소리를 뒤로 하고 정중하게 사과말씀 드리고 술이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로 쪽잠을 잔 뒤에 다음날 새벽에 깨서 인사팀 지시대로 전화 인터뷰를 봤었다.


그때 심사위원분들과 했던 얘기가 아직도 많이 기억난다. 현재 상황을 열심히 설명한 뒤에 그냥 그런 회의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지금 너무 많이 배우고 있다. 해외 프로젝트가 참 힘들긴 하지만, 그만큼 단단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고, 언젠간 나도 그분들처럼 자기 일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일한 기간을 억지로 숫자로 세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로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던 것 같다.


그건 내 진심이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내에만 있어서, 본인들이 일을 얼마나 잘 하고 좋아하는 지 잘 모른다. 이건 수많은 해외 프로젝트를 경험했던 내가 확신하며 얘기할 수 있다. 특히 날씨가 더운 지역이 더 심한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시켜야만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거기에 회사에서 최고로 일 잘하는 사람들과의 회의란 걸 처음 해봤으니, 내 벅차는 심정이 인터뷰에 그대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차장 승진은 잘했지만, 하이데라바드는 스무스하게 정리되었던 그 수정계약서와는 별도로 굉장히 힘들게 종료를 했었다. 다른 회사에 우리가 했던 일들을 넘긴다는 건 생각보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다. 수정계약서에서 놓친 부분도 많았고, 내가 굉장히 좋게 생각했던 인도 개발자 친구에게서 찐한 배신도 겪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힘든 일은 차차 기억에서 희미해지게 된다.


어쨌거나 결국 프로젝트는 종료가 되었고 지금 이렇게 추억이 되어, 좋은 회상의 시간이 되어 또 하나의 글로 저장이 되었다. 앞으로 또 나에게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힘든 일도 좋은 일도 이렇게 그때 참 이런 일이 있었구나. 어떻게보면 참 좋은 시간이었구나 라고 새벽 고요한 호수의 잔잔한 물결처럼 회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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