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도 되나요

꼬꼬마 시절 실수도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 되고

by 원현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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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조우를 생각하면 맨 처음 드는 생각은 '그리움'이다. 예전에 인도프로젝트에서 피터라는 영국 감리사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다. 감리라는 분야가 생소하신 분들도 있을 테니 잠시 건축의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하려 한다. 고객은 자본을 준비한 뒤에 공터에 지어질 멋들어진 집을 원하고, 우리와 경쟁사는 그런 집을 지어준다고 저요 저요 손을 든다.


최종적으로 가격과 제안서가 가장 맘에 든 한 업체에게 착수금을 주고 집 짓기를 맡길 텐데, 당연히 한정된 금액에서의 요청과 제안이니 건축이 영 이상하게 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대형 사업은 감리를 반드시 두게 되어있다. 감리는 심판과 같은 존재인데, 좋은 감리는 정확하게 객관자 입장에서 이상하게 갈 수 있는 사업의 방향을 잡아주고 양쪽의 절충을 유도한다.


우리 부서 사업은 IT사업 중에서도 장비사업이라서 이런 건축 프로젝트와 굉장히 유사하게 진행되었고, 그래서 감리의 역할이 무척 중요했다. 소프트웨어 사업은 방향을 크게 돌려도 어찌어찌 가긴 하는데 (사실 이것도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인데 우리나라 IT 쪽에서는 너무 빈번하게 일어난다) 하드웨어나 펌웨어 장비는 한번 만들어지면 치수조정이나 기능변경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피터 할아버지는 인도에서 첨예한 이슈로 우리와 고객이 팽팽하게 대치한 상황에서, 영국 감리회사에서 급파된 감리 전문가였다. 능력 부족이었던 인도 현지 감리원에게 지쳐있던 때라, 영국에서 왔다고는 하지만 같은 회사 시니어 감리라는 말에 우리는 별 기대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만난 피터 할아버지는 KFC 할아버지를 똑 닮은 푸근한 인상과는 달리 정확하고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와 고객에게 같은 양의 양보를 요청하고, 빠르게 이슈를 정리하셨다.


회의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쉬는 시간에 스몰토크를 하다가, 이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서울 많이 발전했죠? 이렇게 말을 붙이셨다. 그리고 그게 뭔 소리인지 궁금해하는 우리들에게 본인이 서울 지하철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고 미소 지으면서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나 응애응애 태어난 즈음에 젊은 피터 아저씨는 그때의 나처럼 이제 막 지어지는 서울의 지하철 역사들을 누비며 지하철 장비를 놓고 시스템을 점검하고 그랬던 거였다.


그때 서울을 회상하던 피터 할아버지의 표정이 지금 광조우를 생각하는 내 표정과 비슷했을까. 광조우는 내가 입사해서부터 거의 10여 년 간 회사일을 배우고, 사람 관계를 배웠던 사이트였다. 그 도시를 생각하면 치열하게 일을 배우고, 또 행복과 아픔을 겪었던 시절들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가장 큰 느낌은 한 도시의 발전, 시민들의 밝은 모습을 지켜보고, 내가 그 발전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한참 지난 후에 비로소 느꼈던 감정이고, 사실 광조우에서 한창 일할 때는 워낙 실수도 많이 하고 그래서 그런 느낌을 챙길 겨를도 없었다. 최초의 광조우 프로젝트는 1,2호선이 이미 놓인 상황에서 3호선을 수주한 우리 회사의 장비로 1,2호선의 장비를 순차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는 꽤 고난도의 사업이었다. 특히 이미 운영이 되고 있는 역사를 분석하고 해당 장비들을 교체하려면, 기존 역무원들과 마찰이 불가피했다.


특히 공원전 역은 광조우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역사로 광조우 도시를 통틀어 가장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서울로 치면 신도림 역이나 강남역 비슷한 역사였다. 사회주의 국가답게 각 역의 역장은 별로 역장의 등급을 매기는데 보통 역은 별 2개, 주요 역은 별 3개였는데, 공원전은 역장의 지위가 별 4개였다. 그만큼 사건 사고도 많고, 정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그런 역사였다.


당시에 햇병아리 개발자였던 나는 그런 거 살필 짬도 안되어서 그저 해외에서 다른 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는 거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하지만 회사 장비도 익숙하지 않아서 매번 실수하고 혼나고 하는 게 일상이었다. 한 번은 사람이 많지 않은 역사에 장비를 동시에 멈추게 한 적이 있어서 피엠님에게 대판 혼이 났었다. 눈물 쏙 뺐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그 악명 높은 공원전역에서 파일럿으로 설치한 업그레이드 장비를 조심스럽게 점검하고 있었을 때였다. 아마 저번 에피소드에서 설명해던 역무원 긴급 호출 타이머가 걸렸었나 보다. 장비에서 크게 삐~~ 소리가 나는데 나는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들고, 나는 점점 사색이 되어 패닉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뭐라 뭐라 중국어가 들렸다. 남색 옷의 광조우 역무원 제복을 입은 젊은 여자 역무원 분이었다. 나는 다른 출장자분에게서 역무원과의 각종 마찰 얘기를 들었던 지라 나중에 이 소문이 나서 엄청 혼나겠구나 라는 생각에 더 아찔해진 상황이었는데, 이분이 능숙하게 패널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소음을 없애주었다. 그러더니 뭔가 따듯한 미소로 물어보셨다.


영어를 쓰셨는지 중국어를 쓰셨는지 잘 기억 안 나는데, 대충 느낌은 한국에서 오신 개발팀이죠? 파일럿 장비 설치해서 공원전 역사에서 테스트하는 중인 거 잘 알고 있고 당황하지 않아도 돼요. 마침 제가 다루던 장비와 비슷한 거 같아서 해봤는데 알람이 꺼졌네요. 계속 점검 잘 부탁합니다. 이런 소리 같았다. 단지 지금까지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그분의 따듯한 미소였다.


그날 일을 마친 출장자들이 모여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내가 이날 에피소드를 얘기하고 나중에 인사라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좋은 역무원 만나서 다행이네. 혹시 어깨 완장의 다이아몬드 몇개인지 봤어?라고 선배 개발자분이 말씀하셨다. 책임자는 별이고 실무자는 다이아몬드였나. 중국은 사회주의 군대문화가 남아있어서 공무원들의 직급을 그렇게 확인할 수 있어서 누군지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단지 뒤돌아 걸어가는 그분의 어깨에서 빛나던 4개의 별만 기억날 뿐이어서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저녁 식사자리가 난리가 났다. 그분은 공원전역의 역장님이셨던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는 어린 나이에도 워낙 능력이 좋고 일을 잘해서 초고속으로 승진해서 신참 역장으로 배정된 상태라고 했다. 그날도 직접 역사를 살펴보다가 나를 발견하셨던 거다. 피엠님은 안 되겠다 나중에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테니 단단히 사과하라고 말씀하셨다.


너무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마침 다시 기회를 피엠님이 마련해 주셨으니, 감사의 마음을 제대로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너무 감사하니 '제가 다음번 출장 때 시간 내서 역장님과 공원전 역무원들에게 밥을 사겠다' 이 얘기를 중국어로 하면 감동받으시겠지? 생각하면서 머릿속으로 그동안 알음알음 물어보며 배웠던 생존 중국어를 머릿속을 열심히 조립했다.


그리고 출장 복귀 전날 공원전 역사 점검 날이었나. 특별히 동행한 피엠님의 주선으로 별 4개 젊은 여자 역장님을 다시 만났다. 예의 따듯한 미소를 띠고 있는 역장님에게 나는 떠듬떠듬 중국어로 얘기를 했다.


'쎄쎄. 워 마이 니'


갑자기 역장님의 웃음이 멈추더니 얼굴이 벌게지셨다. 그리고 너무나 당황한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그때만 해도 내가 무슨 엄청난 실수를 한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피엠님이 어떻게 급하게 미팅을 정리하셨던 거 같고, 나는 출장 복귀해서 다음 출장 갈때 까지도 내가 무슨 실수를 한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시 내 머릿속의 중국어는 이렇게 조립되었었다. '워아이니(我愛你)'가 '워'는 I, '아이'는 love, '니'는 you 네. 어순이 영어로 되어있구나. 그러면 내가 너에게 밥사겠다. 이거는 사랑한다는 '아이(愛)'라는 동사를 산다는 '마이(買)'로 바꾸면 되겠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밥을 사면 되는 거구나. 외국어는 참 재밌지? 이렇게 쉽게 원하는 문장을 만들 수 있네. 나는 언어천재인가 나름 이런 뿌듯함마저 느끼며 그렇게 얘기를 드렸던 거다.


나중에 광조우 현지에서 중국어 통역을 도왔던 조선족 직원분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중국어로 얘기할 거였으면 왜 그거 저한테 안 물어보셨어요. 저 수습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요. 그다음 출장기간 내내 얼마나 하소연을 들었는지 모른다. 거의 울기 직전인 그분의 얘기는 이러했다.


중국어로 밥을 산다는 건 '워칭커(我請客)'라는 표현이 따로 있다. 말씀하셨던 '워마이니(我買你)'는 어떤 느낌이냐면, '(오늘 밤) 내가 너를 사겠다.' 이런 표현이란다. 저 발언을 공원전역 역장님에게 한 순간, 졸지에 나는 순진하고 귀여운 외국 개발자에서 가진 게 돈 밖에 없는 여자 밝히는 미친놈이 된 거였다. 심지어 역장님은 미혼이라고 하셨다. 한밤에 홍등가 언냐들에게나 할 표현을 수줍은 표정으로 내가 역장님에게 한 거다.


지금은 나도 어느 정도 중국어 공부를 한 상태라서 그때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한 건지 잘 이해하고 있다. 사이트에서 잔뜩 얼어있던 외국인 개발자에게도 한없이 너그러운 미소를 보여주던 그녀였건만, 그녀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발언은 큰 실수였다. 나중에 정신이 들고 역장님도 외국 친구가 말을 잘못 배워서 그런 거였지 다른 나쁜 뜻은 없었다는 통역분의 거듭되는 설득에 이해를 하고 용서를 하셨단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공원전역 담당은 어떻게든 피해달라고 피엠님에게 사정사정했고, 그렇게 정식으로 사과도 못하고 어영부영 사태가 지나가고 말았다.


사실 당시에는 출장 가면 시스템 체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따로 중국어 공부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고, 정말 맘먹고 한국에서 제대로 중국어를 공부했던 시기에는 그 이후에 인도사업이 터지고 중국이 기술을 현지화 하면서 광조우를 갈 일이 거의 없어져버렸다. 진짜 제대로 사과를 할 정도로의 중국어를 공부했음에도 이상하게 그 역장님과 만날 일은 없었던 것이다.


공원전 역장님은 이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을까. 가을동화 원빈 마냥, 본인에게 '내가 당신을 사겠어. 얼마면 돼'를 외쳤던 젊은 시절의 나 역시 마음만은 송혜교를 쏙 빼닮았던 그분에게 아련한 기분 좋은 그리움으로 잘 포장되어 남아있기를 두 손 모아 바라고 있다.


나에게 광조우는 그런 재밌는 에피소드를 한가득 가지고 있는 추억의 도시이다. 한시적으로 비자도 풀려있는 지금, 그 시절 광조우를 호령했던 선배들을 모시고 광조우 추억여행을 가보고 싶은 마음인데 시간을 잘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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