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델로의 추억

AI는 아직 해결해주지 못하는 연애에 감사하며

by 원현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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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델로라는 게임이 있다. 바둑하고 비슷하게 검은 돌과 흰돌을 번갈아서 두는 게임인데 오델로의 목표는 바둑처럼 내가 놓는 돌이 더 많은 땅을 차지하는 것이다. 돌을 놓을 때마다 감싼 돌의 주위를 다 내 돌로 바꿀 수 있다는 게 바둑과의 기본적인 차이인데, 보드게임 치고는 단순한 룰이지만 머리를 좀 써야 하는 컴공과 학부생이 자료구조나 알고리즘 수업시간에 게임으로 코딩하기 딱 적당한 게임이다.


지금은 구글 AI 스튜디오 같은 데서 '오델로 게임 만들어줘' 명령하면 몇 분 안에 게임이 웹브라우저에 구현이 된다. 방금도 적당한 지시어로 오델로 게임 만들어서 즐겁게 내리 몇 판 하다가 아 글 써야지 하고 정신 차리는 중이다. 역시나 이 게임에는 나만의 슬픈 흑역사가 있다. 엄청난 세월의 차이가 있지만 게임은 AI가 만들어줘도 연애는 AI가 해결하지 못하는 거 보면 억울하지 않아서 다행인 건가 웃음이 난다.


대학 합격 이후에 신입생 1년 간 참 많은 소개팅 미팅 자리가 있었다. 이번 글의 주인공인 서울의 한 여대 컴공과녀도 그런 수많은 소개 자리에서 만난 것 같긴 한데, 아무리 기억하려 애써도 이름도, 어떻게 만났는 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추억이라기보다는 참 그때는 왜 그렇게 바보 같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만남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도 나를 이용해 먹어야겠다는 그런 나쁜 맘으로 나를 만난 건 아니었지 않을까 싶다. 그녀도 스무 살 남짓에 이제 막 대학에 합격하여 서울에 상경한, 두려움 가득한 어린 학생이었을 뿐이니까.


같은 컴퓨터공학과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친해지고,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는 게 아쉬워서 좀 더 만남을 갖고 그런 비슷한 느낌으로 만남이 진행된 건 맞는 거 같은데, 본인은 컴퓨터 쪽에 전혀 관심이 없던 상황이라 숙제가 너무 버겁다는 얘기를 나한테 자주 해줬던 기억이다. 다른 건 다른 친구들이 도와주거나 해서 하겠는데, 마지막 학기 과제로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게 너무 두렵고 무섭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나에게 하는데, 내가 그 당시에는 내가 할 줄 아는 코딩으로 그녀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니 이런 영광이... 이런 생각으로 가득했었다. 호기롭게 기말숙제는 내가 전담해서 도와주겠다고 선언하고, 그녀가 작성했다고 해도 문제없을 만한 적당한 게임이 뭐가 있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선택한 게임이 바로 처음 설명한 오델로 게임이었다.


지금에야 웹브라우저로 그래픽이나 게임 구현하는 게 너무 편한 세상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윈도 화면에 그래픽으로 원 하나 그리는 것조차도 MFC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거대한 개발용 라이브러리 구조를 이해해야 겨우 코딩 가능한 상황이었다. 까짓 거 별거 아니겠지 하고 본격적으로 라이브러리 공부를 시작했었다. 그런데 이게 너무너무 어려운 거다. 걱정 말라고 말은 해놨지만, 이걸 구현하려면 저걸 이해해야 하고, 또 책을 하나 사야 하고, 그렇다고 이게 재미있냐면 게임 코딩 대부분이 그렇지만 딱히 재미있지도 않은 노가다 성 코딩이었다.


목적이 불순했으니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그녀는 중간보고를 받는 상사 마냥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에 대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픽은 화려하고 이쁘면서도, 너무 전문가가 짠 거 같지 않아야 하고, 개발 과정 설명이 쉬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뭐지. 그럼 발표자료도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건가. 그렇게 보고(?)를 마치고 그녀가 사는 자취방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가 표정이 복잡해지면 뭘 또 그런 표정을 짓냐면서 팔짱을 끼고 걷는데, 그녀에게서 나는 샴푸냄새가 또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었다.


뭐에 홀린 듯 기말 발표 일주일 전 까지는 완성버전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하고 후회하면서 발걸음을 돌렸지만, 마지막 발표준비는 그녀의 자취방에서 하자는 그 약속이 무한한 힘을 주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가 사는 방에 들어간다니... 저 예쁜 스커트 하나 먼저 입고 나가겠다고 악다구니를 벌이고 있는 내 누나들은 여자가 아니니까, 여자 방은 처음이 맞지? 정말 앙증맞은 인형들과 레이스 커튼이 나를 반겨줄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전의를 불태웠던 기억이다.


어느덧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내 학부 숙제도 버거웠지만 겨우 겨우 기간 내에 개발을 마칠 수 있었다. 학점을 따기 위해 강조해야 할 포인트도 발표 자료 내에 잘 준비해 왔고, 최대한 이쁘게 화면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그 노력이었으면 그 학기 과목 성적 A를 몇 개 더 맞을 수 있었을 텐데. 약속 시간이 되어 그녀에게 지금은 언니들 아무도 없다고 올라오라고 연락을 받았을 때도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현관문 앞에서만 헤어졌던 자취방 건물에 올라가는 순간 깨달았다. 여기는 자취방이 아니라 고시텔 같이 합판 하나로 겨우 방으로 분리된 열악한 곳이라는 사실을.


정신이 멍 한 상태로 발 디딜 틈 없이 침대 하나 컴퓨터책상 하나로 사방이 꽉 들어찬 곳에서 복사해 온 게임 소프트웨어 코드와 자료를 열어 발표내용을 설명해 주었고 그녀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연인관계가 전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 당시에 PC방이 있었다면 그녀가 살던 이 누추한 공간을 방문할 일도 없었을 거다. 그리고 이런 공간에 나를 불렀다는 사실만 봐도, 나는 숙제를 도와주는 착한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 혼자 연인이라 상상하고 즐거워했던 순간이 너무나 부끄러워 빨리 이 공간을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다.


그 뒤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늘 연락을 기다리던 입장에서, 연락이 와도 응답을 안 하는 입장이 처음 되어봤는데 응답기 음성 메시지에서 발표 너무 잘해서 고마운데 왜 연락을 안 받는지 궁금하다는 목소리에 치가 떨리고 분노가 차올랐던 기억만은 확실하다.


다시는 호구로 살지 않으리라 다짐에 다짐을 했지만 그 뒤로도 다짐과는 달리 다시 호구가 되어 용산을 헤매면서 그녀들의 컴퓨터를 조립해 줬던 기억이 나서 역시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늘 돌아오는 고맙다는 대답과, 넌 참 착한 거 같아 라는 그때의 칭찬 아닌 칭찬은 지금은 다 용서가 된다. 다만 트라우마는 남아서, 라디오 같은 데서 김동률의 노래를 우연찮게 들으면 움찔움찔하곤 한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그 시절 컴공과 공대생들에게 이 에피소드를 바친다.


싫어졌냐고 좋아하긴 한 거냐고 몰아세울 때

그냥 나의 손을 잡고 한참 울면서

끝내 아무 말이 없다가

잘 모르겠다고, 왜 이러는지.

그건 아마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 김동률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PS: 내가 사랑이라는 게 내가 뭔가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노력해야, 그 크기만큼 돌아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좀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은 든다. 정작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아 사랑이라는 게, 연인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던 지금의 와이프에게는, 또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당시에 어처구니가 없이 너무나 많은 상처와 아픔을 주었는데 그 얘기는 아마 이런 글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로 쓰지 않을까 싶다. 그런 나와 지금까지 살아주고 있는 와이프에게 무한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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