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성당의 그녀

순수하지 못한 신앙심의 결말

by 원현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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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2월 3일이 되면, 아 오늘이 S의 생일이구나.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나름 그렇게 절절했던 Y는 생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 왜 S의 생일은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매년 2월 3일 날 생각이 나는 걸까. 역시나 내 인생에서 어떤 큰 사건이 그녀와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을 사는 동안, 삶이 너무 힘들어서 종교를 가진다면 천주교 성당의 문을 두드리라는 느낌은 어렴풋이 가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친어머니가 천주교를 오랫동안 다니셨고, 힘든 일이 있다거나 할 때는 성모마리아상에 기도를 하시곤 했고, 결정적으로 나의 수능 시험 시간에 그 추운 절두산 성당에서 하루 종일 기도를 드리셨다는 얘기를 듣곤 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제대로 성경이라는 걸 인생 살면서 한 번은 읽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있길래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말씀에 열광하는 걸까. 그리고 그렇게 순수하게 종교에 매달리고 싶은 순간은 굉장히 느닷없이 미처 방어할 새도 없이 나에게 들이닥치고 말았다.


대학교 2학년 초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 선배가 된 나는, 간간이 과학반 선후배 모임에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때는 많이 알지 못했던 아담한 작은 키의 S가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다른 대학교 수업은 어떨까 가 굉장히 궁금했었다. 공대 특성이 다른 과 수업 들을 기회가 거의 없고, 늘 같은 강의실에서 고등학교처럼 같은 과친구들과 전공 수업을 들었었던 데다가, 맘먹고 가입한 인문대 영어회화 동아리의 동아리방은 진짜 칙칙함이라고 밖에 표현 못할 인문대 건물 구석을 막아 만든 곳이었다.


모임의 술자리에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대학의 낭만은 어디에 있는 걸까 성토하다가 S가 굉장히 쿨하게 그럼 우리 학교 구경 올래요?라고 제안을 해주었다. 그렇게 S가 듣던, 지금은 미대로 유명한 강북에 위치한 K대의 민법개론 교양수업을 시간 맞춰서 같이 듣기로 했다. 그 당시만 해도 S와 그다지 큰 친분은 없었는데 덜컥 그 제안을 수락한 것만 봐도 내가 S에게 꽤 호감이 있었구나 하고 이제야 생각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K대를 방문하여 S를 만나 민법수업 대형 강의장에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 그제야 찬찬히 강의실 풍경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학기말이고 교양수업이긴 하지만 수업에 관심 없는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아마 소위말하는 학점폭격기 수업이 아니었나 싶다. 나도 수업 자체는 제목만 생각해 봐도 그다지 재미없는 수업이지 않았을까 싶어서 큰 기대는 안 했는데, 호리호리한 체격의 에너지 넘치는 젊은 교수님이 오셔서 시작하는 강의는 말 그대로 빨려 들어갈 듯이 흥미와 재미가 넘쳐났다.


지금은 오래되어서 정확하게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기당하지 않는 법에 대한 실제의 예를 들어 설명해 주는 엄청나게 현장감 있고 위트 있는 강의였다고 기억한다. 말 그대로 충격적이었다. 대학 교양 강의가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있다니. 더 충격적이었던 건 이렇게 재미있는 강의를 학생 대부분이 안 듣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강의를 집중해서 듣는 그 몇 명 안 되는 학생 중에 S가 있었다. 그 큰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면서 집중해서 강의를 듣는 모습에 이 아이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말았던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어찌어찌 밥을 먹는 자리였던가, S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솔직하기 자기 상황을 얘기해 주었었다. 사실 수업받는 학생들의 태도도 그렇고, 너무 적응이 안 되고 힘들어서 지금은 다른 학교를 준비하려 한다는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흔한 '반수'를 결심한 상황이었는데, 혹시 몰라서 신청한 수업도 열심히 듣고 있다고. 왜 그런 얘기를 얼마 보지 않았던 나에게 해주었던 걸까. 그에 대한 해답이 오히려 쉽게 나왔는데, S가 엷게 웃으며 나를 보면서 얘기해 줬기 때문이다. 몇 번 보지는 않았지만 나를 보고 있으면 뭔가 공허하고 인생의 해답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목동 성당에서 마침 성인을 위한 여름 성경학교가 시작하는데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그녀가 제안했다. 그제야 내가 과학반 모임에서 그런 비슷한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들어왔지만, 대학에 적응 못하고 겉돌고 있었던 때에 마음 편한 과학반 모임에서 그런 비슷한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종교를 가지면 좀 나아질까. 이런 얘기를 했던 것이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S는 그때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나에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 제안을 받았던 그때에는 솔직한 심정으로는, 성경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이 더 컸었다. 그런데 정말 몰랐다. 제안을 받아들여 용기를 내어 목동성당의 여름 성경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 학문적 호기심은 점점 옅어지고 S를 더 자주 보고 싶다는 열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줄은. S의 소개를 받아 담당 신부님과 인사를 나누고, 나와 같은 비슷한 동기로 성경수업을 듣게 된 20여 명의 예비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그제야 구약과 신약이 전혀 다른 줄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천주교 성경은 예수가라사데~ 하는 뭔가 읽기 거북한 문체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좋았던 것은 S가 가끔 성당에 들러 열심히 수업을 받는 나를 응원해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좋아하는 선생님을 생각하며 수업을 더 열심히 준비하는 남학생 마냥, 나는 더욱더 공부하고 생각하고 신부님과 설전을 벌였는데,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하느님의 마음은 잘 모르겠는데, S를 생각하는 내 마음만은 점점 또렸해졌다. S는 오랜 고민 끝에 E여대의 편입을 도전해 보기로 하고 편입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기에 점점 지치고 힘든 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성경수업을 마치고 내가 살던 아파트와 가까운 동에 사는 그녀와 천천히 집까지 걸어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너무너무 좋았다.


목동이라는 이름만큼 초여름에 우거지는 키 큰 가로수 나무의 짙은 녹음과, 선선한 여름의 밤바람이 천천히 걸어가는 우리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도 나에 대한 호감보다는 뭔가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것 같았지만, 그때는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그때의 혼란한 내 마음을 물어볼 절대자를 알게 된 상황이라, 진짜 어설프게 온 힘을 다해 기도를 열심히 드렸였다. 이게 단순한 연민인지, 순수한 사랑의 감정인지, 그저 여자친구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알량한 욕심인지 전혀 모르겠으니 제발 가르쳐달라고. 아무리 기도를 드려도 모르겠기에, 그럼에도 종교가 주는 심적 편안함에 백기투항이 되었기에, 세례를 받은 이후에 바로 견진수업을 신청을 했고 정말 그해는 천주교와 혼연일체 된 여름방학 기간을 보냈었다.


청년부 선후배들과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들의 고민도 들을 수 있었다. 성인 되어 종교 공부를 시작한 나와는 달리 모태신앙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천주교가 삶의 일부분이 된 선배는, 주일 행사를 지긋지긋해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모든 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었다.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는, 그 선배에게 존재하는 절대자의 사랑과, 이제야 만들어보려는 내 혼탁한 절대자의 사랑.


아직도 나는 답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는 모든 힘든 과정을 마치고 견진세례를 받았고, 축하 행사까지 마친 내 옆에는 당연하게도 S가 함께 해주었다. 우리 가족과 S의 가족이 함께 인사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가 나의 운명의 반쪽인가 하는 쓸데없는 상상까지도 해버린 나였기에 얼마 안 있어 자연스레 고백을 해버렸고 며칠 동안 고심하던 그녀는 결국 나의 고백을 받아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나 결말이 정해져 있는, 모든 게 부자연스러웠던 고백이었고 우리는 사귀었다는 표현도 무색하게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녀의 거부로 만남이 정리되었다. 재밌는 것은 나 자신조차도 슬픔도 화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거부의 의사를 표현했던 때가 기억난다. 본인이 생각했던 만남은 이런 게 아니었다고.


자기도 너무 힘든 시기에 순수하게 종교를 바라보는 나를 보면서 힘을 낼 수 있었고, 아직 편입에 대한 충분한 준비도 결과도 나오지 않은, 남자를 만나기 힘든 상황에서 자기가 욕심을 낸 거 같아 나에게 미안하다는 그런 얘기었다. Y의 상황 때와 달리 나는 쉽게 납득하고 그럼 기다리겠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내가 2월 3일 그녀의 생일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는 건, 그때 즈음에 편입발표가 나고, 그러면 다시 그녀와 만남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순식간에 달아오른 종교 혹은 그녀에 대한 열정에 대한 반대급부로, 점점 감정이 식으면서 나는 점점 의무적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그렇고 그런 나부랭이 천주교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왠지 그녀에게는 끝내 연락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성당 미사를 계속 나갔고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와이프를 명동성당에 데리고 다닐 정도는 되었으나, 지금은 성당에도 다니지 않는 무적 신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후에 들은 얘기인데 S는 무난히 편입시험에 합격하여 E여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에 선생님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지금 어느 학교에 있는지 검색이 가능하겠지만, 역시 S와의 추억도 하느님만이 해답을 아시리라 생각하며, 내 기억의 한편에 고이 모셔놓다가 이렇게 그녀의 생일을 맞아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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