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신발 신어보고 뛰어보자 풀쩍

아야 아파라. 발이 아니라 마음이.

by 원현민준
image.png



원래는 '당신을 사도 되나요' 에피소드처럼 출장에서의 재밌는 기억을 소소하게 글로 풀려했었다. 이미 그녀들 시리즈를 통해, 옛 추억을 글로 써 내려가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편의 글을 쓸지 대강 헤아려졌고, 그 글들이 끝나면 역시나 출장시리즈로 브런치북이 한 권 나오겠구나, 정말 브런치로 행복하게 글 쓰는 건 거기서 끝이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냥 새벽에 매번 눈이 떠지는 내 일상에서 슬며시 명상처럼 글 쓰는 습관이 자리 잡으면서 그날 혹은 전날 있었던 일들을 일기 쓰듯이 몇 편 썼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쓴 글이 지금 내가 쓴 글들 중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와 좋아요 수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출장 얘기는 역시나 슬쩍 접어두고, 어제 파트장님과 메신저로 수다 떨다가 나온 주제를 써볼까 한다. 이 역시 아재좀비 이론의 한 챕터이다.


인도 2년 장기파견 시절에, 나는 펌웨어 팀장 롤로 인도 개발자들을 십여 명 뽑고 그들을 가르쳐서 인도 현지 개발팀이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하도록 해야 했다. 그때가 30대 중반이었으니 비록 인도 개발자 팀이긴 했지만 굉장히 이른 나이에 팀장을 수행했던 거다. 파티션 한쪽에 개인 책상 공간이 나왔고 내 모니터 누가 못 보는 꿀 포지션에 앉을 수 있었다.


많은 지원서를 보고, 개발 커리어를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면접을 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개발역량을 어필한 열 명 정도를 선발해서 그중에 리더를 해도 좋겠다 싶은 친구를 결정해서 팀 리더를 맡겼다. 그때는 조직관리 이런 거 하나도 모르던 시절이라 가장 개발경험과 근무연수가 많은 친구를 리더로 앉혔었다. 그리고 그게 팀 최대의 패착이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전혀 몰랐었다.


인도 친구들이 얼마나 말을 현란하게 잘하는 가도 몰랐던 시절이니 사실 조직관리 경험이 좀 되는 한국사람들도 충분히 당할(?) 수 있는 인도 환경이기도 했다. 회사는 인도 시장에 대한 기대가 커서 전폭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내 체육(이라고 쓰고 크리켓 대회라고 읽는다) 대회도 하고 틈틈이 팀 회식도 많이 했다.


인도에서 회식하는 풍경도 재밌다. 비건과 넌비건이 따로 테이블에 앉아서 회식을 하는데, 인도 커리 음식점은 당연히 고기를 넣은 커리와 안 넣은 커리가 있어서 알아서 주문하고 즐겁게 음식을 먹었다. 내 눈과 입에는 똑같은 색과 똑같은 맛의 커리인데 역시 고급 레스토랑 커리는 맛이 다르다며 감동하며 먹는 것도 재밌었고, 게 중에는 자기가 믿는 종교가 마침 금식 기간이라 신에게 더 다가가서 감사하다며 기꺼이 물만 홀짝 홀짝 하는 친구도 있었다.


처음에는 직원들 사기도 좋고, 열심히 기술을 배우는 (척하는!) 모습에 나도 인도 파견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보람도 느끼고 그랬다. 그런데 균열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 팀 리더를 뽑고 얼마 안 있어서 커리어가 너무 괜찮아서 그 뒤에 마지막으로 뽑은 친구가 있었는데, 진중한 태도와 일을 대하는 모습이 누가 봐도 첫 번째 친구보다 더 리더에 어울리는 친구였다. 초반에 이 친구로 리더를 교체해야 했다.


첫 번째 팀 리더는 일과 기술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았다. 뭐든지 나에게서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태도는 좋았는데, 이걸 밑에 직원에게 나누질 않았다. 나도 팀장으로는 실격이었던 게, 내부적으로 이런 갈등이 있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급기야는 맨 나중에 뽑은 직원이 어렵게 나에게 와서 이 사실을 얘기했을 때도 왜 서로를 오해하지?라고 쉽게 생각했었다.


팀 리더는 결국 자기가 배운 지식을 가지고, 어이없게 타회사로 이직을 해버렸다. 인도 개발자들의 이직이 잦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리더가 그렇게 팀을 쉽게 배반하고 타회사로 나갈 줄은 몰랐고 팀 분위기는 최악으로 빠져버렸다. 천만다행이었던 건 두 번째로 팀 리더로 앉힌 진중한 친구가 빠르게 팀 분위기를 수습하고 개발팀을 다시 본 궤도로 올렸다는 사실이다.


그런 뼈아픈 사건을 겪은 뒤, 팀장은 단순히 개발지식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팀원을 일일이 관찰하고 성장시켜야 한다는 보직의 근본적인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확실히 위에서 다른 눈으로 팀을 바라보게 되니, 개개인의 능력과 태도와 결과물의 품질이 한눈에 다 보였다. 그렇게 조금씩 초보 팀장으로 경험을 쌓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고과에 불만인 팀원들이었다.


여자 직원들은 최상위 고과가 아니라고 눈물부터 흘렸고, 남자 직원들 중에는 첫 고과의 불만으로 바로 퇴사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인도 IT 쪽이 아무리 입사 퇴사가 비교적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이 참담함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칭찬 가득한 문구를 본인이 다 적어와서 추천서 싸인을 요구한다. 순진했던 나는 첫 번째 리더의 퇴직용 추천서에는 싸인을 했지만, 그 뒤로는 절대 맘에 안 드는 직원에게는 추천서 싸인을 해주지 않았다.


저번에도 썼지만 이렇게 힘들게 뽑고 가르쳤던 개발팀 직원을 회사의 사정으로 내 손으로 짤라야 했다. 이건 쓰다 보면 너무 길어질 거 같다. 사실 신세한탄 글을 쓰려던 건 아니고, 오늘 글의 핵심은 이거다. 나는 그때는 몰랐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나중에 한국에 복귀해서 그룹장님들과 대화를 나눌 때 그들의 고민이 너무나도 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고과도 별 불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고과를 좇지 않고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았고, 지금까지 즐겁게 회사일을 하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혹은 영어로 Put youself in other's shoes. 역지사지는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은유가 섞이는 다른 사자성어와 다르게 한자도 직관적이다. 위치를 바꿔서 그것을 생각해라. 내가 끊임없이 불만이라고 생각되는 그것은 사실 대부분의 팀장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위치에 있어야만 보이는 무언가가 더 있는걸 팀원들은 알아차리는 게 쉽지 않다.


물론 두 번째 리더 친구의 그 시절 나처럼 돼먹지 못한 팀장이 내 위에 앉아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지사지가 익숙해지면 그 역시 초보팀장 롤에 앉아있는 젊고 불안한 한국친구의 사정으로 잠시 들어와 볼 수 있었을 거다. 뭐랄까 이 액션은 정말 강력해서 고객의 입장도 되어볼 수 있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일본출장 시절 피엠님도 같은 얘기를 하셨다. 좋은 피엠은 자신의 입장, 고객의 입장, 회사의 입장, 이렇게 3가지 관점으로 늘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아재좀비가 되어 좋은 점 중 하나는, 경험치가 쌓이면서 역지사지의 시뮬레이션을 들이기가 훨씬 쉬워진다는 사실이다. 물론 고과에 울고불고 애꿎은 파트장, 피엠만 욕을 하는 젊은 친구들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되지만 말이다. 파트장님, 제가 역지사지 신공으로 얘기를 들어본 바, 다른 팀으로 전배 가고 귀신같이 근태 좋아지고 출근 일찍 하는 그 젊은 친구는 파트장님 싫어서 그런 거 절대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매거진의 이전글아재에게 있어 '~척하기'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