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에게 있어 '~척하기'란

술자리 회식 덕분에 목이 쉬어버린 슬픈 사연

by 원현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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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회식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한다. 어쩌다가 '비주류' 테이블에 앉은 나는, 맥주를 마신다는 권력자의 포지션이 되어 마음껏 자리에 앉은 다른 세명의 귀에 피가 나도록 떠들 수 있었다. '좀비이론'에 대해 나중에 글 쓸 기회가 있을 거 같은데, 나도 안돼 안돼하면서 몸부림치지만 눈 희게 뒤집히는 아재 좀비일 뿐이라 상대방 붙잡고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제발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해 주길 T-T) 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렇게 붙잡고 '좀비이론' 얘기를 좀 더 했다. 나이를 먹으면, 나는 아니다 라고 부정하려 해도 그렇게 정치가 재밌을 수가 없더라. 회사 생활에 내 처지가 저기 본인 소속당에서 버림받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정치인이랑 그렇게 똑같을 수가 없어. 정치에서의 암투가 회사에서 보이는 순간이 정치에 푹 빠지는 순간인데 아마 너네들은 한참 회사생활을 해봐야 알 거야. 아참 내가 신입이들 데리고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좀 더 얘기를 하려 했지만, 술도 안 마셨는데 이미 눈이 풀려버린 신입사원의 표정을 보고 더 이상 얘기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 얘기에 덧붙여서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는데 말이다. 여기에서라도 풀어야지 어쩌겠냐. 정치와 더불어 아재 좀비가 되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는 분야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각국의 지리, 역사이다.


유튜브에 '두선생의 역사공장'을 운영하는 두선생이라는 유튜버가 있다. 맨 처음 본 영상은 중국의 지리 아는 척 하기이다. 와. 내가 그렇게 중국 출장을 다녔는데, 왜 내가 그렇게 출장 다니고 그렇게 먹어대고도 또 못 먹어서 아쉬워하던 우한의 요리를 후난(湖南) 요리라고 하는지, 뜬금없는 산동성, 산서성 등이 왜 그렇게 불렸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그의 영상에 완전 매료되어버리고 말았다.


대강 이런 식이다. 중국 지명에서 산(山)이라고 하면, 이건 태산을 말하고, 강(江)이라고 하면, 이건 양쯔강을 말한다. 그러니까 산동성은 태산의 동쪽지방, 산서성은 태산의 서쪽지방, 강북이라고 하면 양쯔강 이북, 강남이라고 하면 양쯔강 이남을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후난요리의 호남은 양쯔강 지류의 동정호라는 큰 호수를 말하고, 이 호수의 북쪽을 호북성, 남쪽을 호남성이라고 부른다는 식이다.


여기서 두선생 영상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척하기'이다. 이 영상을 보고 아는 척을 하세요 라는 뜻인데, 나도 두강생의 본분에 맞게 여기서 열심히 아는 척을 하고 있다. 나야 이미 중국 여러 지역에 대해 출장을 통해 직접 보고 느낀 바가 많고, 어쩜. 맞네 하면서 더 잘 이해했기 때문에 그냥 모르쇠 아는 척하는 거 보다는 몇 스텝 더 깊게 아는 척 좀 더 해보자.


우리가 중국 민속화에서 보는 똥글똥글하고 볼이 빨간 귀여운 어린 동자들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우한에 가면 그 민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얼굴이 다 똥글똥글하게 생겼는데 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신기하다. 광조우에 가면 왜소하고 작은데 딴딴한 체구의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광동말을 한다. 반면, 체구가 크고 기골이 장대한 사람들은 십중팔구 산동성이나 동북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에서 온 사람들이다.


옛날 사람들이 보기에 큰 산이나 큰 강은,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미지의 세상이었을 거다. 지역적으로 인종과 요리가 특색을 가지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거고. 보통 모르는 사람들은 중국 삼국지를 생각하면, 조조, 유비가 양쯔강 이남으로 막 치고 들어가서 홍콩 바로 윗부분까지 차지했을 거라고 착각하는데 그 시절 삼국지에서 치고박고 싸우던 시절의 양쯔강 밑은 신경도 안 쓰던 지역이다.


그리고 삼국이 차지하려고 가장 치열하게 싸우던 지역이 우한 근방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강'이라 하고 양쯔강을 말하는 거고, 우한에서부터 정주, 난징이 모두 양쯔강이 품고 있는 주요 도시가 된 것이다. 상하이나 충칭, 청두는 고대 중국 역사 관점에서는 한참 후에 중국의 중심도시가 된 거라고 볼 수 있다. 그 유명한 삼국지 적벽대전의 '적벽'이 우한 근처이다.


물론 역사를 전공한 분들 입장에서는 아 얘 참 아는 척 대충하네 라고 코웃음 치겠지만, 두선생 역사공장의 지식을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중국 출장이 내내 두 배로 즐거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래도 지금에라도 지식을 쌓아 신입사원들 귀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즐거워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긴 하다.


'~척하기'는 그래서 아재 좀비들에게는 소중하다. 재밌는 이야깃거리는 우리 아재들에게는 끊임없이 움츠러드는 우리에게 던지는, 인생의 에너지 불을 활활 태울 수 있는 석탄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하는 거)에 고픈 아재더라도 맥주의 힘이 한계치에 다다른 순간 목도 너무 아프고, 이제는 말할 거리가 다 떨어져서 힘겨운 상황이라 조용히 리타이어를 선언하고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는 액션을 취하고 말았다.


브런치라는 무한히 이야기를 떠들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너무 좋다. 그리고 브런치라는 뒤늦게 발견한 이 거대한 이야기 저장고는 역시나 나에게 있어 '~척하기'에 최적화된 보물창고 같은 느낌이다. 오늘도 브런치에서 어떤 보석 같은 글을 발견할지 무척 설레는 하루가 될 것 같다.




아쉬워서 조금만 덧붙이면, 중국에서는 '만리장성' 이라고 안하고 그냥 장성(長城)이라고 말하면 그게 만리장성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긴 강(長江)이면 양쯔강이고, 큰 산이면 태산(泰山)인거다. 비슷하게 골프 메이저 대회로 유명한 전영오픈은 'The Open' 이다. '그 대회' 이라는 뜻인데, 뭔가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야 하는 이런 대륙마인드가 (영국은 대륙은 아니지만) 부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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