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란 게 뭘까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그 무언가

by 원현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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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도 더 지난 대학시절의 그녀들 이야기가 기억이나 날까 싶었는데, 열몇 편의 글을 뭐에 홀린 것 처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썼다. 먼저 대학시절 동아리 단톡방에 글을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재밌다고 칭찬해주었다. 용기를 내어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고, 너무나 고맙게도 작가 선정이 되었다.


나이가 들 수록 세월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어렸을 때 느꼈던 새로운 자극이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환경 때문이란다. 참 간단하고도 자명한 진리가 맞는 게, 그 수많은 에피소드가 대부분 대학교 4년 안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 어딘가에 잠자고 있었던 태어나서 처음 느껴봤던 그 때의 자극들이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디고 긴긴 글로 남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 하루하루가 굉장히 아쉽고 안타깝다. 대학 시절처럼 세상이 까끌까끌하지 않은 나날이라서 그렇다. 뭔가 분노하는 마음도, 목이 터져라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것도 아무것도 안 남아있는 것 같아 말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문과생들에게 돌 맞겠지만 요즈음 내 인생은 로그스케일로 기울기가 음인 직선같다. 증가하는 시간의 엑스축을 통해 하염없이 기억의 대상 세포 할당량이 줄어든다.


분명히 즐거운 시간도 많고, 브런치에 글 쓰는 것처럼 새로운 경험과 자극도 존재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 사실 그녀들 글을 다 쓴 지금은 예전 출장의 기억을 꺼내 잘 다듬어서 한 줄 한 줄 실로 옷 엮듯이 글 쓰는데, 이 역시도 너무나도 황홀하고 즐거운 경험이다. 심지어 되게 개인적이서 나만 즐거울 줄 알았던 기억인데, 생전 처음 뵙는 분들에게 좋아요를 받으면 그 힘들었던 경험이 인정받는 것 같아 행복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기억이 너무 빨리 소진되는 것 같은 아쉬운 맘이 드는 거다. 나는 더 이상 출장을 가지 않는 부서에 있고, 해왔던 일들도 이제는 대부분 어느 경험의 범주 안에 들어와 있어서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기억이 되지 않는다. 그 대가로 회사는 나에게 부장이라는 직책을 붙여주고, 팀장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그냥 나는 사람들과 즐거운 기억을 계속 만들고 싶을 뿐인데.


그래서 그렇게 공허한 걸까. 나는 요즘 과거에 살고 있는 기분이다. 브런치에 힘들게 직장을 다니며 글을 쓰는 작가분들 글을 읽으면, 특히 퇴사를 꿈꾸는 분들의 글을 읽으면 한편으로는 그분들의 분투에 안쓰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팔딱팔딱하는 그분들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때려죽이고 싶은 상사의 분노에서부터, 믿었던 동료에게 배반당하는 아픔까지도 날 선 에너지가 되어 내 정신을 때리는 글로 응축된다.


현재로 볼 때 나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그냥 나는 지금 회사 좋은데? 이 정도로 정리된다. 모르겠다. 이러다가 몇 년 후에 명퇴 대상자에 올라 인사팀에게서 기계적인 전화를 받으면 그제야 서서히 분노게이지가 차오르게 되려나. 나역시 믿었던 사람에게 배반당할 수도 있겠지만 뭐 내가 임원을 노리는 것도 아니고 더 이상 부장에서 올라갈 곳도 없는데, 나를 배반할 사람이나 있나 싶다. 그렇게까지 나를 생각해 준 거냐면서 손 꼭 붙잡고 고마워하면 상대방이 되게 당황하겠다.


가늘어지는 인연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 그리고, 지금 같이 일하시는 분들, 또 일 이외에 나와 사석에서 만나 진심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분들과의 인연도 소중히 갈무리해 놓고 소중하게 잘 말아서 추억의 비단옷을 만들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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