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향의 그녀

그때 말을 걸었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by 원현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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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의 양천구청역은 2호선의 지선이다. 이 지선은 2호선의 신도림역에서 까치산역까지 네 정거장을 천천히 왕복하는 지하철이라서 10분이라는 긴 배차시간이 특징인데, 대학교 수업에 늦은 때에 눈앞에서 역 지하철 문이 닫히는 경험을 하면 진짜 아찔해지고 만다.


이 배차간격은 집에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여서 대학 때 신도림역에서 양천구청역으로 가는 마지막 지하철 열차가 끊기면, 미친 듯이 뛰어 올라가 지하철 막차보다 조금 늦게 끊기는 마을버스를 타야 했다. 마지막 마을버스를 놓치고, 술에 취한 채로 고막이 터져라 마음속의 설움을 그 시절 유행하던 노래로 뱉어내던 도림천 둑방길의 기억은 내 젊은 날의 소중한 추억이다.

그런 비슷한 막차가 끊기던 시간에 이번에는 요행이 막차를 잘 탔던 어느 날, 나는 양천구청역의 계단을 오르면서 긴 생머리의 뒷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수없이 오르던 양천구청역의 계단인데 그때는 정말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무언가 내가 항상 머릿속에 이상형으로 그리던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머리길이와, 단정한 어깨라인과 그에 너무 딱 맞는 플레어 치마까지. 나는 얼어붙은 듯이 시선을 고정한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 계단 한 계단 걸음을 옮기며 말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 당시에 내가 얼마나 절실했었냐면, 왜 바보같이 이런 순간을 맞닥뜨리기 전에 이상형에게 걸어야 할 한마디 말을 준비 못했냐는 자책을 수없이 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뒷모습이 제 이상형인데 차 한잔 하실래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낯이 익는데 어디 고등학교 나오셨어요? 정도도 이상했을 거 같고. 걸음을 옮길수록 양천구청의 계단은 점점 없어져가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말을 걸까 말까. 걸면 변태처럼 보이진 않을까. 수많은 번민이 뇌 속을 헤집고 지나가는 동안, 나와 그녀는 지상으로 올랐고 어느새 그녀는 야속하게도 목동의 가로수 나무숲 사이로 점점 멀어져 갔다.

며칠 동안 같은 시간대에 양천구청역에 내려 그녀와 비슷한 뒷모습이 있나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그녀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뭐랄까,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고는 하지만 나 같은 평범한 남자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얘기다. 아니면 언변이 화려하던가. 평소에 그렇게 우연이든 아니든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만남을 통해 여자친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수없이 상상했었는데, 막상 그게 현실로 닥치니까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 심지어 얼굴을 확인하지도 못한 뒷모습뿐이었는데도 말이다.


한편으로는 정말 만에 하나 그때 용기를 냈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실제로 얼빠진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나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어 이게 아닌데 라는 혼잣말에 뺨이라도 맞았을까. 오히려 뺨이라도 맞았다면 그렇게 트레이닝된 뻔뻔함으로 인해 나는 어렵지 않게 다음번 이상향의 그녀에게 철판 깔고 말을 걸었을 거다. 화려한 카사노바의 내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실없는 상상을 하며 웃지만, 분명한 것은 내 삶에 있어서 그때 용기를 내지 못했던 나만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어렸을 때 나는 또래 어린아이들보다 10~20킬로는 더 나갔던 비만아였고, 중학교 때 농구를 시작하며 어느 정도 살이 빠졌건만 그때는 잘못된 피부관리로 얼굴이 여드름투성이가 되어버려 지금까지 좋지 않은 피부로 남아있다. 그런 이유로 외모에 자신감이 많이 결여되어 있던 나였다.

지금 와이프는 뭘 먹어도 전혀 살이 찌지 않는 체질에 피부도 무척 깔끔하다. 연애시절에 내 얼굴 피부가 안 좋은 거가 혹시 거슬리거나 나쁘게 보이지 않냐는 질문에, 그랬어?라고 반문해서 내가 더 놀랬었다. 사람은 내가 본래 갖고 있는 무언가는 그 소중함에 무심하게 마련이다. 덕분에 나는 무사히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언제나 돌고 돌아 와이프 칭찬으로 마무리하는 영양가 없는 뻘글이긴 한데, 목동얘기를 쓰다 보니 양천구청역의 추억도 잠시 떠올라 조금 더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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