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12편
파도바 식물원 / Botanic Garden (Orto Botanico), Padua (유네스코 문화유산 #824)
베네치아 서쪽 약 30km 떨어진 곳에는 '파도바'(Padova, 영어로는 Padua)라는 도시가 있다. 이 곳은 이탈리아 동북부의 중요한 물류 도시(시민 21만 명, 도시 광역권 44만 명)인데, 역사가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이다.
이탈리아 각 도시에는 도시를 대표하는 수호성인이 있다. '파도바의 수호 성인'은 1195년 포르투갈에서 태어나 파도바에서 생을 마감한 '성 안토니오'이다. 평생을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교사로 섬겼던 그의 유해는 성 안토니오 성당(Basilica di Sant'Antonio)에 있는데, 사후 30년 후에 그의 무덤을 열었을 때도 그 유해의 혀가 거의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는 살면서 많은 강의를 했던 그의 모습을 남기는 기적 중에 하나로 일컬어져서 일 년 내내 이탈리아 각지로부터 가톨릭 신자들이 순례를 하러 방문하는 곳이다. 성전 돔 꼭대기에 있는 천사상은 도시를 지켜준다고 한다.
이 도시의 유구한 역사 중 또 하나는 파도바 대학교이다. 1222년에 이탈리아에서 2번째로 생긴 이 대학은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등의 학자들이 교수로 있었던 만큼 대대로 의학과 자연과학 분야에서 명성이 높았던 대학이다. 오늘 소개할 곳은 이 파도바 대학 내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식물원, 바로 ‘파도바 보타닉 가든’이다.
파도바 식물원은 1545년에 파도바에 세워졌는데, 당시 이탈리아에서 힘이 가장 강했던 베네치아 공국의 학문 연구와 의학적 목적으로, 식물학자이자 파도바 대학 약초학 교수였던 프란체스코 보나페데(Francesco Bonafede)가 구상한 것을 건축가인 안드레아 모로니(Andrea Moroni)가 설계하고 만들었다.
식물원 가운데는 세계를 상징하는 원 모양의 작은 중앙 식물원이 있고, 그 주변을 호수가 에워싸고 있는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입구와 난간 장식 등 건축적 요소와 펌프, 온실 등은 훗날 추가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과학 연구센터라는 애초의 기능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당시의 건축 배치가 보존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운데 중앙 식물원의 구조는 4구역으로 나누어진 사각형의 정원을 원형 벽이 둘러싸고 있다. 은행나무 / 자귀나무 / 목련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유럽 각지에서 가져온 희귀 식물, 허브 및 약용 식물, 지중해의 관목 식물군, 고산 식물 등은 별도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독일 작가 괴테가 '식물의 변형'이라는 에세이에서 언급한 야자수는 온실 속에 보존되어 있었는데, 일명 '괴테의 야자수(La Palma di Goethe)'라고 불리기도 한다.
중앙 정원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별도의 온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여기에는 근래에 들어온 외래종 수목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시아, 북미, 남미에서 들어온 외래종들이 각각의 온실 속에 온도와 습도를 시스템으로 자동 제어하는 곳에 잘 보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도 많은 식물원들이 있는데, 이러한 온도/습도 자동 제어 시스템은 도입을 하면 좋을 듯하다.
이 파도바 식물원이 만들어진 16세기에는 이탈리아에 르네상스가 한참 꽃 피우는 시기였다. 아마도 이 식물원의 설립도 그런 학문적인 우월성에 기반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파도바 식물원의 수준은 기대보다 높지 못했다. 마치 과거 선진국이었던 이탈리아가 이제는 위상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선진국 문턱에 막 진입한 대한민국도 기초 과학에 투자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이탈리아처럼 세계에서의 위상이 떨어질지 모른다. 지금 막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선 만큼,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