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14편
시에나 역사지구 / Historic Centre of Siena (유네스코 문화유산 #717)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과 이탈리아 전역에 퍼졌다. 역사적으로도 이와 비슷한 흑사병이 유럽 전체에 유행한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하여 침체기를 걷다가, 이를 극복하여 다시 문화를 일으킨 사례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오늘 소개할 ‘시에나(Siena)’라는 도시이다.
시에나는 중세 시대에 유럽의 핵심 도시중 하나였다. 토스카나州 중간에 있는 이 도시는 11세기 말부터 피렌체 공국과 세력을 다툴 만큼 뛰어난 도시국가(시에나 공국)였다. 특히, 황제파였던 피렌체와 달리, 교황파였던 9인 위원회 공화정(1287~1355) 시절 정치적 안정기를 누리고, 유럽 북부에서 로마 교황청으로 향하는 순례자의 길(Via Francigena)이 시에나를 경유하면서 도시는 더욱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1348년 흑사병이 돌자 도시 인구는 2만 5천 명에서 만 6천 명으로 무려 40%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후 궁전과 교회와 수도원들을 재건하고 확충하려는 대규모 극복 사업이 시작되고, 그 결과 1457년 시에나는 에네아 실비오 피콜로미니(Enea Silvio Piccolomini)가 교황청 대주교로 임명되며, 이전의 화려한 명성을 되찾게 되었다.
시에나는 로마 교황청 귀족 가족들의 금융 활동, 특히 북유럽과 프랑스 마르세유, 영국 런던에 있는 거대한 국제 시장 덕분에 더욱 번성하게 되었다. 1472년 창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자, 시에나의 대표적인 은행인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Banca Monte dei Paschi di Siena, BMPS)는 아직도 이탈리아 제3위 대형 은행이다.
상공인들의 힘이 강해짐으로 시에나는 제2도로망과 수많은 건축물을 갖게 되었다. 이 당시 지어진 고딕(Gothic) 양식의 건물들은 외관과 내부 장식이 매우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다. 이중 캄포 광장과 푸블리코 궁전을 중심으로 한 시에나 역사지구는 중세 건축이 잘 보존되었다는 평가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었다.
세 길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있는 캄포 광장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가장 훌륭하게 만들어진 개방형 광장 중 하나이다. 이 광장은 중세 도시의 성장과 도시 공동체 권력의 대두와 때를 같이하여 형성되었다. 중세시대에 캄포 광장은 멋진 축제를 위한 이상적인 공간이 되었다. 광장에서는 시에나의 각 구역의 팀들이 겨루는 유명한 말 달리기 시합인 팔리오(palio) 축제가 개최되었다.
광장 중심에 우뚝 솟은 푸블리코 궁전(Palazzo Pubblico)은 고딕 양식의 대표적 건물 중 하나인데, 고딕 트리플 아치형 창문은 매우 유명하다. 궁전 한쪽에 우뚝 솟은 높이 102m 만자의 탑은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종탑으로 위쪽에 올라가면 시에나는 물론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펼쳐진다.
도시의 높은 곳에 위치한 '시에나 대성당'(Duomo di Siena)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마치 피렌체 두오모를 떠올리게 하는 하얀색 대리석으로 만든 외관이 인상적이다. 성당의 전면(파사드)부분은 조각가 조반니 피사노(Giovanni Pisano)가 14세기초 시작했는데, 제자인 조반니 디 체코(Giovanni di Cecco)가 14세기말 완성시켰다.
시에나의 미술은 ‘시에나 화파’를 이룰 만큼 발달하였는데, 시에나 대성당의 제단화인 ‘마에스타(Maesta)’를 그린 두치오 디 부오인세냐, 시모네 마르티니, 로렌제티 형제 등은 유명한 화가였다. 이중 시모네 마르티니는 14세기 프랑스 아비뇽으로 떠나며 비잔틴과 르네상스 회화 기술을 프랑스 남부 쪽으로 전파하고, 유럽 전역에까지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
어느 국가, 어느 시대에도 위기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 방법에 그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 약 700년 전 흑사병의 극복해낸 시에나의 사례를 보며, 작금의 코로나 위기는 미래 발전의 밑거름의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시에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