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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제이 Jul 10. 2020

유네스코 루트 - 한국 5편

백제 역사 유적지구

Baekje Historic Areas (유네스코 문화유산 #1477)


‘백제’는 기원전 18년경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의 후처 소서노의 아들이었던 온조가 권력다툼을 피해 남하하여 한강 이남인 하남위례(오늘날의 송파구)에 도읍을 정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왕비 소서노가 아들들을 데리고 남하했다는 얘기도 있고, 아들들만 남하하였다가 온조만 살아남아 건국했다는 얘기도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등의 기록)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는 등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으며, 4세기 초 근초고왕 시기에는 탐라국(오늘날의 ‘제주도’)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등 세력을 확대한 시절이 있었으나, 5세기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한강 이남의 위례성을 버리고, 웅진(오늘날의 ‘공주’)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이처럼 백제가 웅진에 수도를 두었던 475년부터 538년까지 백제왕은 웅진성에 살았는데, 이 성이 바로 오늘날의 공산성이다. 


공산성 입구 (금서루)

[공산성]

공산성은 남쪽으로 공주 시가지를 바라보고, 북쪽으로는 금강과 맞닿아 있다. 

동남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외곽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천혜의 요새와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공산성은 산봉우리를 연결하고 계곡을 가로질러 성벽을 축조하여 방어력을 강화한 전형적인 방어용 산성이다. 이 안에 왕궁을 비롯한 중요 시설들을 배치하였다. 공산성은 30년이 넘는 장기간의 체계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성벽 축조 양상, 왕궁지 및 왕궁 부속 시설지 등이 발견되면서 그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공산성의 성곽길

총길이 2.7km의 성곽은 공산성의 백미이다. 원래는 흙으로 만든 토성으로 쌓았으나, 후대에 여러 차례 보수 공사를 통해 돌로 만든 석성으로 변하게 되었다. 보수 공사는 대부분 조선시대 이후에 실시하였으나, 백제의 석축 기술을 알 수 있는 부분도 일부 존재한다. 


입구 격인 금서루를 지나서, 시계방향으로 돌게 되면 맨 먼저 공산정을 만나게 된다. 공산정 위에 오르면, 길게 이어지는 금강의 모습과 확 트인 공주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공산정 전면 / 공산정에서 바라본 공주 시내

왕궁은 이제는 ‘왕궁터’로만 남아 있다. 1985년 이후 발굴조사를 하여, 많은 백제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몇몇 건물들의 기둥과 모퉁이돌, 연못과 저수시설의 유적 등이다. 또, 기와, 청동 거울, 갑옷, 다양한 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왕궁터 발굴 작업

성벽길을 한 바퀴 돌다 보면, 공북루, 쌍수정, 진남루, 만하루/연지 등등 많은 건물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건물이 조선시대에 지어진 것들이라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한다. 동/서/남/북 각각 다른 깃발들이 걸려있는데, 깃발이 차이를 보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공북루/  만하루&연지 / 쌍수정 / 명국 삼장비 / 진남루 (좌측 상단부터)

[송산리 고분군 / 무녕왕릉] 

공산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송산리 고분군에는 백제 25대왕인 무녕왕릉이 있다. 1,500여년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형태로 발견된 한국 고대의 유일한 왕릉으로,국보 154호의 금제관장식을 비롯,  화려하고 세련된 미의식과 창의성, 높은 공예기술을 보이는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송산리 고분군 입구 / 무녕왕릉 입구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백제유물들

이처럼 공주에서는 백제 유적을 많이 찾을 수 있다. 같은 충청권 도시인 부여와 익산에도 찬란했던 백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기회가 된다면 향후에 백제 유적 관련 추가로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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