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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Dec 08. 2023

13. 여자들과 미팅하는 꿈을 꿨다.


여자들과 미팅하는 꿈을 꿨다. 그들은 20대 후반으로 보였고 나 역시 비슷한 또래였다. 한 명은 세미정장차림의 조용한 스타일이었고 또 한 명은 쾌활한 성격이었는데, 둘 다 예뻤다. 높은 지역에 위치한 카페에서 얘기를 나누던 우리는 바다구경을 하러 해변으로 나갔다.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는 눈이 부셨다. 점점이 보이는 사람들은 역광을 맞아 오렌지빛 실루엣을 이루고 있었고, 저 멀리 코발트색 바다는 느린 파도를 일으키며 밀려오고 있었다. 요트 위에는 빨간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은 사람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누워 있었다. 원경 중경 근경이 나란히 펼쳐진 이 모든 풍경은 심지어 생생한 컬러였다.

        

나는 어디에서 튀어나온 건지 모르는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리고, ‘이건 유형학적 사진 같아. 하지만 너무 아름답잖아!’라며 감탄했다. 우리는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여자들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중 단아하게 생긴 여자가 내게 수줍은 미소를 보내며 눈길을 맞췄다. 가슴 안에서 전기뱀장어가 발광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내가 파스타를 제안했고 여자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루라니. 이렇게 완벽한 하루라니! 꿈속이었지만 나는 꿈꾸고 있는 것을 알았기에 제발 깨지 않길 바랐다. 서서히 잠이 깰 무렵, 나는 베개를 얼굴 위로 올리고 양팔로 베개를 짓눌렀다. 깨지 마라, 깨지마. 하지만 그 사이 꿈은 깨어버렸다. 다시 잠이 들기 위해 나는 처절히 노력했다.

        

천만다행으로 나는 다시 꿈속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장소는 가락시장이었다, 젠장. 여자들과 바다와 햇살은 온데간데 없었다. 대신 길거리 양쪽으로 포장마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좌판에는 고추장으로 버무린 시뻘건 꼼장어와 돼지불백들이 즐비했고, 한쪽에서는 그들이 연탄불에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었다. 분명 파스타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예쁘게 웃으며 허락했었는데, 너희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그 순간, 내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조금씩 흐물거리더니 곧 몸 전체가 꼼장어로 변해 버렸다. 도저히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한 발자국 옮기고 쓰러지고, 다시 한 발자국 옮기고 쓰러졌다. 그러다가 이젠 두 다리가 서로 붙어 버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절망의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꼼장어를 굽고 있거나 아니면 좌판에 앉아 열심히 먹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그 와중에 나는 꼼장어집을 점찍어 놓았다는 것이다. 맨 앞에서 세 번째 집, 다음엔 꼭 저기 가서 먹어야지...라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나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그 집을 바라봤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목구멍으로는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리고 그런 루프는 마치 컴퓨터 버그가 일어난 것처럼 계속 반복되었다. 그렇게 나의 꿈은 막을 내렸다. #결론은개꿈


그림: Maxim Mamsikov (Ukraine). Byriuchyi,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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