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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Dec 20. 2023

은밀한 거래

엘에이 재래시장. 미로 같은 낡은 건물 안에서 출구를 찾고 있었다. 어두운 통로를 지나는데 저 아래, 한 남자와 여성 2명의 모습이 은밀하다. 잠시 지켜보니 짝퉁 가방 흥정을 하고 있다. 그 묘한 분위기에 끌려 재빨리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두어 컷 찍었을까, 등 뒤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뭘 찍는 거야?". 돌아보니 어둠 속에서 건장한 히스패닉 남자가 나타난다. 나는 "사진."이라고 짧게 말했다. 그러자 녀석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 이런 바보 같은 대답이 튀어나왔지... 마치 정지 화면처럼 둘은 마주 보며 서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길게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계단을 내려왔다. 위의 상황을 모르는 사진 속 세 사람을 여유 있는 척 지나 거리로 나왔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나는 경보 자세로 뛰다시피 걸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가게로 들어가 콜라 한 캔을 원샷했다. 젠장 내가 잠입취재기자도 아니고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장소를 옮겼다. 그제서야 아까 어둠 속에서 나와 마주쳤던 녀석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그는 왜 내게 사진을 삭제해 달라고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신들의 불법거래 장면을 찍은 나를 그냥 보내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언더커버(잠복근무 경찰)인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줄 몰랐던 거였고, 나는 나대로 당황해서 멍하니 서있던 거였고. 만약 둘 중 한쪽만 똑똑했다면 뭔 일이 났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살다 보면,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더 편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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