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트리니다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 뜨리니다드. 이번이 세 번째 쿠바여행인 나는 관광명소 대신 한참을 걸어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섰다. 길은 곳곳이 파여 있었고 낮은 벽들은 뜯기고 허물어져 있었다. 넉넉지 않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비좁은 골목에는 아이들 뛰노는 소리와 어른들의 수다소리가 울려 퍼져 활기가 넘쳤다. 골목에서 유일해 보이는 선술집으로 들어섰다. 고작 테이블 두세 개의 작은 바 안에는 벌써부터 동네 남자들이 취해 있었다.
오후 햇살이 간신히 걸려있는 바 테이블. 그곳에 이 바텐더는 마치 석고상처럼 서있었다. 동전을 나름의 방식으로 정렬시켜 놓은 그녀는 인상부터 범상치 않았다. 서비스 정신은커녕, 마치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표정 같았다.
럼주 한 잔을 주문했다. 그러자 휘발유 말통처럼 생긴 플라스틱 용기를 들어 넘치듯 술잔을 채운다. 허가받지 않고 만든 밀주 같았는데 사실 맛도 그냥 휘발유였다. 그녀를 사진에 담고 싶었다. 물어봐도 어차피 대답도 안 할 것 같아 두어 걸음 물러나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그녀는 미동도 안 한 채 오직 두 눈동자만 카멜레온처럼 나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는 내가 움직임을 멈추자 나를 빤히 쳐다본다. 순간 움찔했다. 뭐라고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그녀의 눈은 다시 원래 위치로 복귀한다. 속에서 낮은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쿠바에는 몸은 가만히 있고 눈동자만 움직여서 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버스 정류장 할머니도 그렇고. 어쩌면 내게 사진 포즈를 취해 준 것이었을까… 모르겠다. 암튼, 세상에서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바텐더였다.
Trinidad, Cuba, 2019. 35mm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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