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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Jan 05. 2024

15. 이제 술을 살 수 있는 나이


“아빠, 이따 나랑 술 한잔 할까?”. 연말에 아들 녀석이 그런다. 새해부터 술을 구매할 수 있는 나이라며. 어쩐지 며칠 전부터 새해 첫 계획이 뭐냐고 묻더라니. 자기가 직접 민증 보여주고 술을 사 오겠단다. 1월 1일, 보신각종 치자마자 편의점으로 갔다. 호기롭게 맥주 한 캔을 사는데, 주민증 검사를 안 한다. 어른이랑 같이 왔다고. 들떴던 녀석의 표정이 한풀 꺾인다.


다음날 저녁, 이번엔 밖에 나가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잔다. 와이프는 술을 못 마시니 구경만 하고 나랑 한 병을 나눠 마셨다. 앞으로는 ‘정통’ 코스로 마셔보겠단다. ‘정통’이 뭐냐고 물으니 삼겹살+소주, 전+막걸리, 뭐 그런 거란다. 집에 들어온 밤, 옷을 다시 주섬주섬 입더니 맥주를 사겠다며 혼자 나간다. 그리고 잠시 후 걸려온 전화, 이번에도 주민증 검사 안 했단다. 그러자 와이프 왈, 아무래도 너 노안인가 보다 깔깔깔.


덕분에 요즘 매일 녀석과 술을 마시고 있다. 엊그제는 집에서 맥주를 마시다 싱글몰트위스키를 한 잔 줘봤다. 향이 어떠냐고 했더니 새큼하고 달콤한 향이 난다고 한다. 사이트러스와 바닐라향이다. 옆에서 석유냄새가 난다는 둥 곰팡이냄새가 난다는 둥 하다가 쓰러진 와이프보다는 술감각이 있는 것 같다.


와인과 위스키는 향을 즐기며 조금씩 음미하며 마시는 술이라고 알려줬다. 그랬더니 아빠도 그렇게 마시냐고 묻는다. 당연하다고 말하니, 그럼 그때는 왜 후배한테 업혀 왔냐고 묻는다. 그때는 소주를 마신 거라고.. 했다. 그럼 소주는 그렇게 마셔도 되는 거냐고 또 묻는다. 뭔가 말린듯한 느낌. 그게 아니라 옛날 아빠 회사 다닐 때는 좋은 양주로 맥주와 섞어 폭탄주를 먹던 그런 야만의 시대였다고 그래서 술은 처음 어떻게 배우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횡설수설 말을 맺었다.


카스와 하이네켄과 테라의 맛 차이가 뭐냐, 주량이 뭐냐, 많이도 묻는다. 그래 아빠랑 하나씩 마셔보자. 일단 먹어봐야 뭔 맛인지 알 거 아니냐. 서로 맥주 딱 한 캔씩을 비우고 끝내려는데 또 묻는다. "아빠, 내일 해장은 뭘로 할까? " "응.. 으응? 맥주 한 캔 먹고 해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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