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영화 <스모크:Smoke>

영화 속 사진이야기

by SJ

흔히 사진 좀 찍는다고 하면 으레 커다란 고급 카메라를 떠올린다. 그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프로 사진가처럼 '뽀대'가 나기도 하고, 또 왠지 더 좋은 사진이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좋은 사진의 기준 하나는 사진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느낌을 표현해 내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거창한 주제가 아닌 가족이나 친구, 또는 주변의 평범한 일상일 수 있다. 사진가만의 독특한 색깔과 철학으로 담아낸다면 설령 핸드폰만으로도 훌륭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이는 꼭 사진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단지 유명하고, 크고,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좇는 경우가 많다. 그것들이 자신의 가치를 더 높여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의 기준을 타인들이 세워놓은 세속적인 틀에 맞추며 산다. 하지만, 당연하겠지만, 오히려 소소하고 흔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반짝이게 하는 경우가 많다. 삶은 '일상'이라는 작은 단위에서 시작한다. 그 매일의 일상들이 모여 하나의 '인생'이 되고, 또 그 각각의 인생들이 관계를 맺어가며 쌓인 것이 우리가 '역사'라고 말하는 인류 전체의 기억이 되는 것이다.

영화 <스모크>는 그런 일상의 퇴적물들을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 '오기'가 운영하는 브루클린의 담배가게에는 각자의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모여든다. 라티노, 흑인, 사업가, 작가, 지능이 모자란 사람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 세상사를 떠들어 댄다. 그리고 그곳을 매개로 얽히고설키며 사건들이 일어난다. 물론 대단한 건 아니다. 이웃, 가족, 친구 간에 벌어지는, 여느 동네에서나 있을 법한 그렇고 그런 일들이다. 영화는 그러한 평범한 사건들이 어떻게 각각의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서로의 갈등이 봉합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어찌 보면 담배가게라는 작은 공간은 대도시 뉴욕,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함축적 공간이자 일상이 만들어 내는 역사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오기'는 매일 아침 사진을 찍는다. 특별히 어떤 대상이나 주제를 염두에 두고 찍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가게 앞 일상을 담을 뿐이다. 그렇게 매일, 십 년도 넘게 찍은 사진이 4천 장에 가깝다. 그 사진들 속에는 걸어가는 사람, 서성이는 사람, 물건을 실어내리는 사람 등, 별 의미 없어 보이는 피사체들로 가득하다. 영화에서 '오기'가 그의 친구인 작가 '폴'에게 그 사진들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그때 '폴'은 건성으로 사진첩을 넘기며 말한다. "다 똑같잖아." 그러자 '오기'는 잘라 말한다. "Slow down. 왜 그렇게 빨리 봐? 천천히 보라고. 천천히 보지 않으면 넌 절대 이 사진을 제대로 볼 수 없어." 그 말에 유심히 사진들을 넘겨보던 '폴'은 그만 외마디 탄성을 지르고 만다. 사고로 죽은 자신의 아내를 발견한 것이다. 아내가 죽던 날 아침, 평상시처럼 그녀는 출근을 위해 가게 앞을 지나가다 '오기'의 사진에 찍힌 것이다. 잊혀 있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사진은 존재의 증명이자 부재의 기록이다. 유명 관광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이유는 내가 지금 이곳에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존재의 증명인 셈이다. 하지만 셔터가 눌러지는 순간, 사진 속의 나는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다. 현실의 나와 더 이상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로부터 멀어지면 질수록 그 부재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그런 면에서 사진은 노스탤지어의 예술이기도 하다. '폴'이 사진첩에서 발견한 아내의 모습은 그들에게 있어서 늘 있던 하루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지극히 평범했던 하루, 평범했던 현재가 '폴'에게는 아주 특별한 '부재'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재의 증명이 부재의 기록으로 바뀌는 순간, 그 의미 없던 일상은 유의미해진다. 잡을 수 없는 아련한 향수로 다가오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어떻게 담배 연기(smoke)의 무게를 재느냐 하는 담배가게 사람들의 잡담이었다. 잡히지도 않는, 흔히 허무함의 메타포로 인용되는 연기의 무게를 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리고 과연 잴 수나 있을까. 하지만 그런 면에서 담배연기는 사진과 많이 닮아있다. 현재와 과거, 존재와 부재, 생생함과 아련함, 일상성과 특별함 등과 같은 이중적인 속성이 그것이다. 둘은 생성되는 순간 그 실체가 사라진다. 과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잡을 수 없고 머무를 수도 없는 그것은 또한 우리의 인생과도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지금 내가 숨 쉬는 이 시공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일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항상 우리 곁에 있는 보석 말이다. '오기'가 '폴'에게 던지는 대사를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한다. 참고로 금연 중인 분들에게는 이 영화를 권하고 싶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나게 피워댄다.

"세상의 일부분이지만 여기서도 매일 일이 생기지. 내 구역에 대한 기록이야. 똑같아 보이지만 한 장 한 장 다 다르다고. 밝은 날 오전, 어두운 날 오전, 여름 햇빛, 가을 햇빛, 주말, 주중, 겨울 코트 입은 사람, 셔츠에 짧은 바지 입은 사람, 때론 똑같은 사람, 전혀 다른 사람... 다른 사람이 같아질 때도 있고, 똑같은 사람이 사라지기도 해.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고, 햇빛은 매일 다른 각도로 지구를 비추고 있지... 자네도 알듯이 내일 다음은 내일, 또 내일이야. 시간은 한 걸음씩 진행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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