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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Jan 05. 2018

책 <햄릿>, 셰익스피어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라이언킹이 햄릿 얘기인 거 알아?"  


        아들 녀석에게 물었다. 뮤지컬 <라이언킹>을 본 다음 날이었다. 녀석이 슬쩍 어깨를 들어 보인다. 모르겠단 소리다. "햄릿 몰라?" 재차 묻자 퉁명스럽게 말한다. "왜 몰라. 엊그제 그 재미 한 개도 없는 셰익스피어 생가까지 갔었는데." 녀석은 영국까지 와서 미술관이나 옛날 건물 등 지루한 곳만 돌아다닌다고 뾰로통해 있던 참이었다. 그러더니 한마디 더 던진다. "그리고 그게 뭐 비슷해. 라이언 킹은 재밌는 거고 햄릿은 시시한 건데..." 

        아이가 유독 <라이언킹>에 재미를 느낀 것이 그 스토리 때문인지 아니면 화려한 무대 비주얼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녀석은 '심바'의 처지에 안타까워했고, 그래서 그가 다시 정글의 왕이 됐을 때 함께 기뻐했다는 거다. 스토리에도 분명 끌렸다는 것. 삼촌에 의해 아버지가 독살되고 왕권을 찬탈당하는, 뿐만 아니라 엄마마저 빼앗기는 비극적 스토리와 그에 대한 복수극은 시대와 연령을 초월해 공감을 준다. 고전의 힘이자 '스토리 텔러' 셰익스피어의 힘이기도 하다. 

        물론 <햄릿>도 따지고 보면 그 이전의 시대에 이미 존재했던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점은 그것을 지금 우리 앞에 생생하게 던져놓는다는 것이다. 흔히 셰익스피어 비극을 '성격비극'이라고 한다. 인간의 성격에서 그 비극적 씨앗이 잉태된다는 것.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내재된 결함으로 인해 고뇌한다. 우유부단하고 회의적인 햄릿이 그렇고, 스스로의 열등감과 질투심에 빠진 오셀로가 그렇다. 고전적 권선징악의 플롯과 달리 '나쁜 사람'이 아닌데도 번민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아이러니,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완전히 착한 사람도, 완전히 나쁜 사람도 없다. 또 착한 사람이라고 다 복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나쁜 사람이라고 응징을 받는 것도 아니다. 아니, 착한 사람이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며 비참한 상황에 몰리는 경우도 많다. 결국 사느냐 죽느냐, 착하냐 나쁘냐, 꿈이냐 현실이냐, 이렇게 무 자르듯 단칼에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의 단면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인 것이다. 선악이 공존하는 양면성을 가진 존재로서 말이다. 

        그의 생가를 방문했던 것이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사실 언제부터인가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들 때, 정확히 말하면 인간'관계'에 대한 무력감이 들고 염증이 생길 때, 셰익스피어가 다시 읽고 싶어졌다. 앞뒤가 맞지 않는 표리부동한 나 자신을 발견할 때, 더 깊어지고 싶은데 나의 얕은 인성이 따라가지 못할 때, 그럴 때 셰익스피어가 떠올랐다. 위안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원래 그런 거다. 괜찮다..'라고 말이다. 

        오랜만에 손에 잡은 <햄릿>은 역시 달랐다. 영문학 전공이랍시고 대학 시절 폼 내며 암송했던 구절이, 불확실한 미래로 고민하던 30대 때 메모했던 그 구절이, 지금은 또 다르게 다가온다. 아울러 그때 보이지 않던 구절이 새삼 나를 사로잡기도 한다. 앞으로 몇 년 후, 다시 햄릿을 만나게 되면 또 어떤 부분이 나를 멈춰 세울지 모르겠다. 이번에 읽으면서 새롭게 다가왔던 대목을 하나 적어본다.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생각하게 했다. 역시나 펄떡이는 셰익스피어다. 


그게 자연의 조화든 운명의 장난이든, 
단 한 가지 결함의 딱지를 지님으로,
그들의 미덕이 은총처럼 순수하고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더라도,
바로 그 한 가지 결점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썩었다고 평가할 것이야.
한 방울의 악 성분이 종종 고귀한 본질
모두를 말살시키고, 치욕을 불러온단
말일세. 


ㅡ 제1막 4장. 햄릿, 호레이쇼와 대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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