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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Sep 10. 2018

책 <달과 6펜스>, 서머셋 모옴

아직도 가슴 뛰는 그대에게

        영국의 주식브로커로 일하던 찰스 스트릭랜드는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느닷없이 화가가 되기로 한다. 안정된 현실과 타협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가족과 일 모두를 버리고 예술가로서의 삶을 택한다. 물질적으로 비루했어도 누구보다 뜨거운 삶을 살았던 그는, 결국 타히티섬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완성하고 최후를 맞이한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소설은 후기인상파 화가 폴 고갱을 소재로 했다.

        한 예술가의 위대한 삶에 대한 찬미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을 주로 관통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그 욕망을 억압하는 현실 간의 극명한 대비다. 제목에서도 암시하듯, 꿈과 영혼의 이상을 추구하는 세계가 ‘달’의 세계라면, 물질적이며 세속적인 ‘6펜스’의 세계가 그 대척점에 존재한다는 것. 결국 그 ‘6펜스’의 세계는 탈피하고 싶은 위선적이고 천박한 세계를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트릭랜드가 보여주듯 기존의 가치체계를 훌훌 벗어던지고 영혼의 울림만을 좇는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쉽지 않다. 왜냐하면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도록, 그래서 더욱더 사회적으로 견고하게 구속되도록, 우리들 스스로가 방어논리를 심어놓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러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한다. '양심'의 문제가 그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이유로 소설 속 인물들은 방황하고 고뇌한다.


       “나는, 양심이란 인간공동체가 자기 보존을 위해 진화시켜 온 규칙을 개인 안에서 지키는 마음속의 파수꾼이라고 본다...(중략).. 양심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에 두라고 강요한다. 그것이야말로 개인을 전체 집단에 묶어두는 단단한 사슬이 된다.” – 본문 p.77


        이러한 인습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했던 인물들이 작품 속에서 겪어야 했던 대가는 혹독하다. 예술혼을 추구하는 화가 스트릭랜드는 온몸이 썩어가는 문둥병의 벌을 받아야 했으며, 사랑을 좇던 여인 블란치는 목이 타버리는 고통 속에 생을 마쳤다. 벅찬 자유의 느낌을 만끽했던 의사 아브라함은 부와 명예를 그 자유의 대가로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소설은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삶이 불행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임을 암시한다. 이들이 겪은 대가가 ‘혹독’하다고 한 것은, 인습에 얽매인 물질적인 눈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문둥병으로 인해 시력마저 잃은 스트릭랜드였지만 그는 영혼의 눈을 통해 영원한 시간과 공간을 얻었다. 사랑이라는 본능적 감정에 충실한 여인 블란치는 생이 끝나는 시점까지 자신의 선택에 당당할 수 있었으며,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정착한 의사 아브라함은 물질적 풍요 대신 평생 후회하지 않는 행복한 삶을 선물로 받았다.

        ‘달’과 ‘6펜스’. 이 둘의 세계는 고갱의 그림 속 색채만큼이나 대비가 뚜렷하다. 그리고 두 세계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한없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 거리는 좁혀질 수 있다. 바로 우리와 달 사이에 짙게 낀 ‘6펜스’라는 현실의 먼지를 걷어 치울 때다. 그러면 달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를 향해 미소 지을지 모른다. 희망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비록 작품 속 인물들처럼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해도, 지금 꿈을 꾸고 있다면 당신의 달은 훨씬 더 밝게 당신을 비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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