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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Jan 09. 2019

07. 녀석의 미소

        

내일 준비할게 많다는 와이프 시간도 줄 겸, 한적한 용인민속촌 옛길에서 아들 녀석과 봄볕을 쬐고 싶었던 일요일. 하지만 제법 흐린 하늘과 비가 내릴 것 같다는 친구의 귀띔으로 아쉬우나마 집 근처 야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것도 어쨌든 산책이니까.

        

하지만 내 마음이 조금 앞서갔나? 야트막한 동네 앞산은 기대했던 컬러풀한 봄 정취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봄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라는 듯 삐쩍 마른나무 가지들만 잔뜩 찌푸린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 있었다.

        

한창 공룡과 파워레인저에 빠져있는 아들 녀석에게 자연이 주는 어여쁜 세상을 보여주겠다던 아빠의 호들갑이 무색해졌다. 하지만 잠시, 녀석은 이내 재미있는 놀이거리를 찾아냈다. 결국, 봄풀 대신 널려있던 나뭇가지를 주워 우리는 그렇게 '폭력적인' 칼싸움게임에 빠져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악당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무렵, 눈앞에 작은 잔디구장을 연상케 하는 토끼풀 언덕이 들어왔다. 헐크로 변신해서 괴성을 질러대고 있는 녀석을 가까이 불렀다.

        

  " 우리 네 잎 클로버 찾아볼까?"

  " 네 잎 클로버가 뭔데 아빠?"

  ” 응, 여기 풀들 많잖아. 클로버들이 대부분 잎이 이렇게 세 갠데, 가끔 보면 네 잎을 가진 클로버가 있어"

  "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면 뭐가 좋은데?"

  “ 네 잎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하거든.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이야"

   " 어? 그래? 그럼 우리 찾아보자"


잔뜩 흥이 나 있는 녀석과 나는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네 잎클로버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의 10여분이 채 되지 않아 녀석은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 아빠, 네 잎 클로버가 하나도 없잖아~!!"

   " 야, 그렇게 찾기 쉬우면 그게 행운을 상징하겠냐?

   “ 그래도 난 찾고 싶단 말이야! 나도 좋은 일이 생기면 좋겠다고!"


괜히 찾자고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사십 년 넘게 살면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아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 이제 칠 년 밖에 살지 않은 녀석에게 너무 과도한 기대감을 심어준 게 아닌가 살짝 후회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후회도 잠시, 볼에 바람을 넣은 듯 뾰로통해있는 녀석에게 말했다.


   “ 규선아, 여기 있는 풀들은 전부 잎이 몇 개짜리지?

  " 세 개.."


녀석은 곧 울어버릴 거라는 경고를 주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 규선이 아까 아빠가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한다고 했지?"

  " 응.."

  " 그럼, 세 잎 클로버는 뭘 상징하는지 알아?"

  "..."

  “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해. 행운은 잠깐 즐거운 건데, 행복은 그냥 항상 즐거운 거, 그런 거 말야."

   " 정말?"

   " 그럼"

   " 아~~ 아빠!"

   " 왜?"

   " 그 얘기 들으니깐, 갑자기 행복해진다~~"


아직 행복이 무슨 의미인 줄 이 녀석이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행운보다는 좋은 거라는 걸 알아차린듯하다. 그리곤 이 녀석이 까르르 웃는다. 아빠 나 행복해졌어라며.

        

나는 녀석의 고사리손을 잡고 나머지 봄 산책을 위해 걸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녀석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바랬다.

        

‘녀석, 앞으로 살면서 반드시 봄 같은 날만 걷진 않겠지. 하지만 행운을 찾느라 주위에 널린 행복에 찌푸리지 않는, 그런 길을 걸었으면 이 아빠는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사랑하는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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