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
눈이 왔다. 어제 아침부터 내리던 눈이 심상치 않더니 늦은 오후부터 멈추지 않을 기세로 눈이 내린다. 역시나 오늘 아침은 온 세상이 하얗다. 영하 12도. 이 정도라면 아침 해가 뜨고 한동안이 지나도 눈이 쉽게 녹지 않을 상황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드디어 아이들과 눈썰매를 탈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절로 마음이 바쁜 그런 날이다.
얼마나 된 걸까? 산골 마을에는 해마다 눈이 오지만 눈썰매를 타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는 않다. 아무리 많이 와도 바람이 많으면 눈썰매 타기 좋은 내리막 눈들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보이지 않는다. 밤새 눈이 왔어도 다음날 날씨가 포근해 버리면 영락없이 녹아내려 눈썰매는 탈 수 없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낸 우리가 오늘은 드디어 눈썰매를 타게 되었다. 장갑을 잠깐이라도 벗어던지면 손이 시려서 도무지 손가락이 굽어지지 않고 모자가 불편해 벗을라 치면 볼과 머리에 닿는 냉기로 오히려 더 푹 쓰게 만드는 그런 날씨, 그런 날씨가 되었다. 바로 이런 날이 눈썰매 타기 딱 좋은 날, 환상의 날이다.
"눈만 있으면 눈썰매 타는 거 아닌가요?" "아니죠, 눈이 있어도 눈이 녹지 않을 영하 5도 이하의 날씨가 필요해요. 알싸한 추위,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바람 한 점 없는 오늘 같은 이런 날이 최고지요." 아이들과 함께 눈 덮인 마당으로 나섰다. 스키바지, 방한장화, 스키 장갑, 모자, 목도리까지 눈에 뒹굴어도 끄떡없는 최고의 놀이 옷을 입고 겨울 세상으로 향했다. 앗, 털장갑을 끼고 온 녀석이 눈을 몇 번 만지고 나더니 손이 시려서 덜덜덜 떤다. "너무 추워서 들어가고 싶어요." 에고나 겨울 놀이 패잔병이 한 명이 생겼다. "그래, 들어가면 되지. 안에서 놀자." 따뜻한 물주머니에 손을 녹이며 눈놀이를 포기했던 마음을 달래 본다. 그러고 나서 또 한 명이 들어온다. 역시나 콧물이 주르륵 보아하니 신발이 문제였다. 겨울 눈을 버틸 겨울 장화 대신 얇은 운동화를 신었으니 제 아무리 놀이 선수라도 버틸 제간은 없어 보인다. 그래 너도 안에서 놀자꾸나. 아이들이 실내로 들어오는 걸 보니 제대로 추운 날이구나 싶었다. 서둘러 따라나선 솔바람(원장)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알싸하고 차가운 추위에 내심 환호를 질렀다. '됐어. 바로 오늘이구나. 오늘이라면 썰매를 타러 가야지. 암, 그렇고말고.'
아이들 손에는 작은 1인용 썰매가 들렸고 천연 눈썰매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엔 누구도 밟지 않은 눈길이 펼쳐졌고 아이들은 연실 눈 천사를 만들거나 눈더미에 벌러덩 드러누워 뒹굴거리며 놀았다. 그러다 앞장서는 아이들을 따라 달리고 넘어지며 눈 속에서 뒹굴면서 바로 그 목적지 둑길에 있는 '천연 눈썰매장'에 도착했다. 쌓였던 눈이 바람에 사라지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기도하며 걸었던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와우, 얼음과 눈이 절묘하게 쌓여 그야말로 제대로 된 눈썰매장이 펼쳐져 있었다. 엉덩이만 앉을 수 있는 작은 1인용 썰매에 앉아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약 10여 미터 길이, 경사로 30도 정도 되는 내리막을 내려온다. 환상이다. 위험할까 조심스러웠지만 아래쪽에 쌓여있는 눈 덕에 내리막을 내려오는 일은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몸과 딱 붙는 안성맞춤 눈썰매가 아이들을 쉼 없이 오르고 내리게 만드는 걸 보니 이걸 만든 누군가도 눈에서 무척이나 행복했던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겨울은 눈이다. 겨울은 얼음이다. 겨울은 썰매다. 겨울은 코끝 시리도록 땀 흘리며 몰입해 노는 모든 순간이다. 오늘이 그랬다. 밤새 내린 눈 속에 설레었고, 흥분했고, 눈 속으로 그대로 들어갔으며 볼과 코끝이 차가워도 온몸에서 땀이 샘솟는 그런 날이었다. 아이들의 볼은 발그레하다. 눈은 반짝이고 표정은 밝고 투명하다. 한바탕 잘 놀고 들어온 아이들에게서 놀이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마치 순간을 잘 살아낸 이들이 보여주는 자신감 같은 것이 꽉 채워져서 충만해 보이는 그런 느낌 말이다. 올 겨울에도 자주 눈이 왔으면 좋겠다. 세상이 눈 속에 갇히더라도 그 속에서 아름다운 추억과 멋진 기억을 가득 만들고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온종일 눈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허락하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