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모래 케이크 한접시
아침에 숲에 다녀온 아이들의 전리품이 가득하다. 붉은색, 노란색, 온갖가지 열매들과 씨앗들이 아이들 손에 쥐어있다. 도토리는 아이들이 사랑하는 열매 중 단연 최고이다. 엄마선물, 아빠선물, 아이들의 손에 쥔 모든 것들은 누군가를 생각하며 줍고 또 주워온 것이지만 숲에서 어린이집까지 오는 사이 그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 이내 여기저기서 뒹굴기 십상이다. 그러면 어떤가? 줍는 순간 누군가를 생각했다는게 중요하니 말이다.
오후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았다. 쌀쌀해진 날씨 탓일까? 햇살 드는 곳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나를 보자마자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려가는 6살 여자아이가 멈춰선 곳. 아래를 보니 아침에 주워온 낙엽들로 장식된 근사한 케이크 앞이었다. 분명 집으로 가져가려고 양손에서 놓치지 않았던 그것들이 거기있다. 나를 보며 지그시 미소를 짓는 아이는 "내가 만들었어. 어때?"하고 묻는다. 감동이 물밀듯 밀려오는 순간이다. 색색깔 나뭇잎과 마당의 꽃잎이 모여 엄청 근사한 케이크가 되었다. 바로 옆에선 남자 아이들 서넛이 세상에서 가장 큰 문어 케이크를 만든다며 꾸미기에 한창이다. 나뭇잎과 며칠전 캔 고구마 부산물들을 이용해 만족스러울 때까지 이리저리 형태를 이어가는 모습이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 멋지다는 표현만으로 부족한 아이들의 작업은 틀이 없어 자유롭고 자유롭기에 여한 없는 그들의 세상을 반영하는 듯 하다.
예술이란 뭘까? 우리가 한 때 어린이였듯, 어쩜 우린 한 때 예술가였을지도 모르겠다. 평가에 구애받지 않고 맘껏 상상하고 표현하고 누리는 이 과정을 흠뻑 살아내는 아이들이야 말로 위대한 예술가이지 않을까?
내일 모래 생일인 친구가 있다. 생일이면 항상 그 아이가 먹고싶은 생일 음식을 아이들이 만들어 준다. 이번 생일엔 얼마전에 수확한 고구마를 이용한 고구마케이크가 낙점되었다. 모래 케이크가 너무 예뻐 "문성이 생일날엔 먹는 케이크 대신 친구들이 만드는 모래케이크는 어때?"하고 말해 버렸다, 헌데 문성이가 울쌍이다. "난, 난 먹는 케이크 먹고 싶은데...." 앗, 울기 직전이다. 담임선생님이 "그럼 그럼, 우리 문성이 생일 때는 고구마케이크 해야지. 모두 함께 맛있게 먹는 그걸로 말이야." 그 말을 듣고서야 모래 케이크가 자신의 생일 케이크가 될까 철렁했던 마음이 다스려졌는지 내게 와서는 "난 고구마 케이크 먹을꺼예요."하는 거다. 이렇듯 어른의 낭만은 아이들에겐 청렁이는 순간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시선을 제멋대로 해석한 고약한 놀림이 될 수 있다는 걸 또 배운다. 물론 난 이런 장난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아이들의 공공의 적이 되곤 하지만 의심없이 나의 말을 믿고 속아 주는 아이들의 신뢰덕에 꽤 좋은 어른이 되고 싶기도 하다. 신뢰의 공간, 믿음의 공간 그리고 무엇이나 다 말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있다는 걸 아이들이 느끼길 바라기도 한다.
모래 케이크 덕에 놀이터 곳곳에 케이크 더미들이 늘어간다. 조만간 케이크로 가득한 놀이터를 생각하니 조각공원이 따로 있나? 여기가 그곳이지라며 이쪽 세상의 갤러리를 그려본다. 상상하기 좋은 날, 바로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