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사진

나의 욕망과 그대들의 자유

by 이수진

단체사진에 대한 나의 욕망, 그대들의 자유​


어릴적 수학여행을 가거나 소풍을 갈 때면 어김없이 우리반 모두가 다 들어간 사진을 찍는다. 가는 곳마다 상징적 장소 앞에서 꼭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요즘으로 치면 인증샷 처럼 말이다. 오늘처럼 아이들과 함께 온종일 나들이를 가면 한번쯤 시그니처 조형물을 배경으로 '나 왔다갔음'을 박제하고 싶어진다. 부모들에게 보일 상징이기도 하고 나중에 슬라이드 영상을 만들 때 활용도가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단 한번도 어릴적 단체사진 마냥 모든 얼굴이 들어간 어린이집 단체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다. 모두를 동시에 세워두고 일시정지 시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한 녀석을 세워두면 다른 녀석이 사라지고 간신히 모두를 세워둔 줄 알았지만 그새 뛰고 달리며 노는 아이들은 생기는 건 일상 다반사이다. 물론 아주 가끔 달달한 간식으로 꼬신다면 훨씬 수월할 줄 알지만 사진 한장 건지려고 달달구리를 동원하는게 비겁(?)해서 연출없는 사진 몇장으로 단체 사진을 마무리 한다. 그래서 내겐 우리 아이들의 박제된 단체사진이랄게 거의 없다. ​


괴산 유기농 엑스포 나들이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선생님이 엑스포 시그니쳐 캐릭터 조형물 앞에 아이들을 멈처 세웠다. 잘 앉고, 서고 하는 듯 하더니 여전히 저멀리서 무리쪽으로 더디게 걷고 있는 아이들도 보이고, 그 아이들을 기다리다 잠깐동안 무리에서 사라지는 아이들은 또다시 생겨난다. 그래도 단체사진임네 하고는 찰칵찰칵 셔터가 눌리고 환히 웃는 선생님을 빼면 아이들의 시선도 행동도 모두 제각각 이다. 이게 어린이들이지 싶게 말이다. ​


아이들의 행동에는 목적과 가치가 어른의 것과 다르다. 응당 그래야 한다는 건 애초부터 없기 때문에 단체 사진에 협조를 구한다는건 애시당초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장난을 치고 돌발적인 행동을 하거나 누군가의 뒤에 숨어버리고 튀어 나오는 등 도무지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단 1초도 허용하지 않는 이 세계는 누군가의 관점에 결박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단체사진이란 어린이의 세계에 무지 몽매한 어른들의 시선이지 그 무엇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 사진이라는 이름의 이 순간이 재미있다. 찰나의 순간 자신이 생긴대로 취하고 행동하는 자유로움이 동시에 포착되기 때문이다. 곁에 서는 관찰자로 제발 한 컷만 제대로 찍어보고 싶은 욕망은 내것이고 그 욕망이 자유로운 영혼들의 욕망을 절대로 일시 중지 시킬 수 없다는 중대한 사실을 매번 상기시키기 녀석들이다. 순간을 찍어보고자하는 내 욕망과 자유로운 영혼들 사이에 포기되지 않는 일종의 화합의 순간이자 절충의 순간이 사진으로 포박되어 그 순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0세부터 7세들의 세계. 오늘도 나의 세계와 그들의 세계에 줄다리기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뭐하러?'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내쪽으로 끌어당기는 줄다리기 말고 그들 쪽으로 끌려가는 줄다리기 세계에 빠져보는 건 왜 결정적 순간에 잊게 되는 걸까? 그 세계를 이해하는 시간, 들여다보는 순간, 단체사진의 경직을 넘어서는 아이들의 세계에 손을 번쩍 들어주는 그런거 말이다. 잊었던 아이들의 시간. 오로지 순간을 영원처럼 누군가의 의지를 넘어 자신만의 의지의 영역에서 신나게 욕구를 분출하는 아이들의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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