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와 국화전
10월 초 어느날, 아직 깊은 가을에 들어서지 않아서인지 얇은 긴 옷이면 충분한 그런 날이다. 여전히 숲은 짙은 초록빛이고 아주 옅게 여기저기 단풍이 든 이른 잎들이 보일 뿐이었다. 바로 요맘때, 단풍이 시작되기 직전, 일교차가 앞다투어 변덕을 부릴 때쯤 얼핏보면 쑥잎이지만 자세히 보면 두텁고 귀여운 모양의 잎을 가진 구절초의 시즌이 찾아온다. 하얀 구절초. 봄에 피는 마가렛처럼 흰 꽃을 피우지만 향기만큼은 우리가 다 아는 바로 그 국화다. 이슬이 맺혀있을 때보다 물기가 다 마를 때면 더 짙은 향을 담고 있는 산골 가을 숲의 대표적인 꽃이다. 우린 이 꽃을 보러 더 정확히 말하면 이 꽃을 따러 숲엘 갔다. 9월 말이 더 제격이었을까? 흰꽃 한가운데 핀 노란 수술까지 꽃가루를 피우며 '이제 곧 마감합니다.'라고 속삭이듯 꽃의 사명을 다한 모습의 꽃들이었다. 그래도 향기 만큼은 깊은 가을을 담은 국화꽃의 그윽하고 담백한 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구절초와 그 이웃에 자라고 있는 여리여리한 연보라 쑥부쟁이를 제손에 쥘 만큼 따서 저마다의 꽃놀이를 하고 있다. 그날의 꽃놀이는 음력 9월 9일 옛조상들이 했다고 전해지는 국화전 주 재료를 채취하기 위한 나들이었다. 아이들에게 꽃놀이는 꽃을 느끼고 즐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저 들꽃이 가득한 곳에서 놀다오는 게 전부다. 꽃보다 더 좋은 것은 꽃 사이에서 놀고 있는 사마귀를 발견한다거나 손톱만한 청개구리를 찾아내는 일, 혹은 호랑거미, 나비, 벌들의 날개짓을 살피는데 더 시선이 간다는데 있다. 어떤 친구는 도토리와 같은 작은 열매들을 찾는데 푹 빠졌고 어떤 아이는 걸어다니면서도 역할놀이를 하느라 언니, 이모, 아빠, 엄마, 할머니가 되어 놀기도 한다. 열심히 싱싱한 구절초 꽃을 모으는 선생님 곁에서 자신들의 놀이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꽤나 예쁜 꽃을 보면 여린 손이 무쇠 손이 되어 댕강댕강 잘도 자르기도 하는 그런 시간이다.
한아름 안고 온 연보라 쑥부쟁이는 화병에 꽂고 여린 쑥부쟁이 꽃잎, 하얀 구절초 꽃과 초록 잎, 그리고 마당에 싶어둔 금잔화 꽃잎과 맨드라미 꽃으로 그날의 하일라이트 화전을 부쳤다. 3살부터 7살 여린 손은 야무진 손으로 어느새 달라지고 재각각 다 다른 모양으로 쌀반죽을 떼어 동전보다 조금 큰 작은 전을 만든다. 그 위에 붉은색, 연보라색, 하얀색, 초록색 그리고 주황색 꽃잎들이 놓이고 지글지글 열이 오른 후라이팬에 올려두면 이내 곧 가을향 가득한 국화전이 완성이다. "안 먹을래요. 난 꽃 못먹어요."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부치는 냄새가 스멀스멀 퍼지고 달짝지근한 조청에 푹 담가 한입만 베어 물면 늘 그렇듯 화전이 익는 속도는 먹는 속도를 이길 수 없게 된다.
아이들은 화전을 만든 날부터 2~3일 동안 국화차를 마시는 시간도 가졌다. 투명한 유리다관에서 꽃차의 향과 맛이 우러나오는 시간을 기다릴 때 교실 안은 가득 채운 꽃 향기로 이미 가을 속에 있다. 작고 투명한 유리 찻잔에 향기 담긴 꽃차를 마시며 맛있다는 아이도 있고 냄새만 맡고도 안먹겠다는 아이도 있지만 그래도 이 시간을 원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충분히 보낸다.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 꽃놀이는 맛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진달래 꽃도 맛이고 벚꽃도 맛이다. 살짝 새콤한 진달래꽃잎 맛과 더불어 벚꽃 카나페나 진달래 카나페, 진달레 화전처럼 맛의 시간을 충분히 경험했기에 계절꽃과의 관계망이 모양을 넘어 맛과 또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게 아닐까 한다. 아이의 일상, 아이의 삶속에 잠시 잠깐이라도 스쳐지났던 이 가을 이 꽃들과의 만남 또한 비슷할 듯 하다. 곁에서 놀며 향기를 맡고 꽃에 감동하는 한두명의 어른 사람이 함께 했던 과정을 거쳐 맛의 세계와 연결해보는 자연스럽고도 신비로운 경험이 아이들과 가을꽃을 연결했음에 틀림없는 그런 시간 말이다.
관계하는 과정에서 배움이 피어난다. 이 배움이 어떤 창조적인 삶의 과정과 연결될지 단언할 순 없지만 자연을 만나고 느끼는 그 느낌만 품더라도 이 시기 아이들에게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자연을 만나고 관계하는 수많은 관계망을 잇고 연결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