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 물놀이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구덩이가 파이면 연결하는 그런 삶

by 이수진

​지난 여름 며칠째 비가 내렸다. 아이들은 거센 비에 우비를 입었다가도 몇걸음 못 걷고 돌아와야만 했다. 날은 덥고 장마철 습기가 온 공간을 가득 메웠다. 엉덩이를 들썩 대는 아이들은 밖을 향해 아우성이다. 더이상 실내 놀이가 불가하다고 판단이 될 무렵, 그래 오늘은 '우중 물놀이다!'하고 선생님들이 일치단결 한 목소리를 냈다. 아이들은 수영복을 입은 채로 비오는 마당으로 뛰어 나간다. 처음에는 주춤거리다가 얼굴에 떨어지는 빗물을 맞으며 시원하다 소리친다. 선생님들도 비옷을 입은 채 맨발로 첨벙이기 시작했다. 비가 꽤 내린터라 곳곳에 웅덩이들이 생겼고 웅덩이를 오가는 아이들을 시작으로 물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미끄럼틀은 이미 젖어 촉촉하다 못해 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천연 물 미끄럼된 곳에 아이들 서넛이 모였고 한 녀석씩 저마다의 기술을 끌어다가 내려오는 묘기를 부린다. 내려오다 엉덩방아를 찧어 모래가 가득 묻었지만 비가 오는데 어떠하리 잠깐의 아픔따위는 이내 잊고 끝없는 미끄럼틀 행렬이 이어진다.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여름날의 거센비도 따뜻한 바람을 이겨낼 재간은 없는지 날은 더 없이 따뜻했다. 곳곳에 만들어진 웅덩이를 이어 아이들은 물길을 만들었고 더 큰 구덩이도 만들었다. 빗물을 모으고 첨벙이며 모래인지, 흙인지 분간이 안되는 더미에서 마사지를 시작한다. 흙과 물, 엄밀히 말하면 모래와 비로 뒤죽박죽이 된 곳에서 자신들도 뒤엉켜 누가 비고 누가 흙인지, 누가 어린이인지조차 까먹은 채 놀고 또 놀았다. 마침 비는 한동안 세차게 내려주었고 잠시의 주저함 없이 열심히 내렸다.​


장마철 농부들은 가슴이 미어진다. 고추밭 고추가 수확도 하기 전에 다 물러서 빠지고, 과한 비로 토마토는 터지기 일쑤다. 밭 장물이 다 다르겠지만 뭐라도 적당해야 하는데 하늘이 하는 일을 어찌 사람이 알까? 내리는 비에도 가슴에 멍들고 오지 않는 비 때문에도 가슴이 멍드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비가 와도 좋고, 비가 없어도 좋아한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놀고, 비가 안오면 비가 안와 또 노니 말이다. 세상물정 모르고 노는 때가 인간의 전생애를 통틀어 얼마나 될까? 책임과 역할, 관계와 예의를 따지느라 아무생각없이 그저 몰입하는 기쁨 따위를 누릴 시간이 별로 없는게 인간의 삶 아닐까? 그래서 나는 아이들의 시간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별 생각없이 그저 놀생각만 하고 놀면 되는 그 시간 말이다. 비가 오니 비를 맞고, 물이 있으니 물길을 만들고 길과 길을 연결하는 구덩이를 파고 물을 끼얹는 온갖 무계획의 행위들, 그 행위가 주는 창의적인 발상과 행동들이 얼마나 위대한 순간을 만들어 내는지를 아이들의 삶에서 만난다. 삽과 호미를 들고 땅을 파고 연결하는 행위는 놀이 본능의 자연스러운 표현일 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과감한 놀이의 과정인 것이다. 호미라는 도구의 또다른 쓰임이 있어 참 좋다.​


세차게 비가 오는 날 커다란 다라이에 따뜻한 물을 받아 온천처럼 만들었다. 빗물놀이를 마친 아이들은 옷을 벗고 수도물로 샤워를 한 후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다라이욕조에서 잠시 몸을 담근 후 실내로 들어갔다. 제일 어린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끝끝내 모래밭에서 떠나지 않으려는 마지막 아이까지 잘 씻기고 따뜻한 물에 몸을 뎁히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 순간까지 물놀이의 과정은 이어졌다. 점심을 먹기전 한시간 반 가량의 놀이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모두가 얼굴 가득 만족스런 표정으로 다음에도 또 놀자는 다짐에 다짐을 교사들에게 들으려 했다. 충만한 만족을 안은 아이들, 어느 순간이든 충만함으로 가슴을 웅장하게 키우고 다시 또다른 놀이로 전이될 때까지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편안함이 묻어난다. 다 놀고 밥도 먹고 한켠에선 블록을 만들고 다른 한켠에선 그림을 그린다. 저쪽에선 소꿉놀이와 엄마아빠놀이가 이어지고 세상을 창조하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꾸리며 그 시간을 채우는 아이들이 있다.​


삶의 과정으로서의 어린이시절, 걸판지게 놀아본 아이들이 기억할 비오는 날에 이날이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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