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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 강사 작가 Aug 01. 2020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내가 쓰는 말이 곧 나다

   

“맷돌 손잡이 알아요? 맷돌 손잡이를 어이라고 해요. 어이. 맷돌에 뭘 갈려고 집어넣고 맷돌을 돌리려고 하는데 손잡이가 빠졌네? 이런 상황을 어이가 없다 그래요. 황당하잖아. 아무것도 아닌 손잡이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못 하니까.”    


영화 베테랑에 나오는 조태호 역 유아인의 대사다. 영화를 봤을 때 ‘어이가 그런 뜻이구나, 듣고 보니 말이 되네. 한국말은 정말 재밌어.’ 하고 감탄을 했지만 이내 의문이 생겼다. 정말 맞나 하고.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어이는 명사로서 어처구니와 같은 말이라고 쓰여 있었다. 다시 어처구니를 찾았다. ‘상상 밖으로 큰 물건이나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현으로 사용하며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이다 라는 의미가 있다‘ 고되어 있었다. 어이와 어처구니가 맷돌 손잡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번에는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곳곳에서 어처구니가 맷돌 손잡이라는 말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글이 보였다. 맷돌 손잡이는 맷손으로 부를 뿐 어처구니라고 한다는 것은 어떤 기록에도 없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새로운 주장도 눈에 띄었다. 어처구니는 궁궐 처마 위에 올리는 수호신 역할의 흙인형을 뜻하는 잡상과 같은 말이라는 것이었다. 궁궐을 지으면 당연히 어처구니를 올리는데 그게 없으니 황당하다는 뜻에서 어처구니가 없다가 파생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주장은 맞을까? 검색은 계속되었다.    


어떤 이가 논문까지 써가며 반박해놓은 글이 있었다. 그 어떤 국어사전, 고어사전, 방언사전, 건축용어사전, 고문헌을 찾아봐도 어처구니가 잡상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며 대부분의 전문가는 물론, 국립국어원이나 문화재청에서도 그렇게 답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결국 그도 어처구니가 잡상이 아니라는 실증적인 자료는 제시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그렇다는 말이 없으니 아닌 거로 한다는 주장으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처구니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맷돌 손잡이라고 할 만한 근거도 없고 잡상이라고 할만한 근거도 없으며 또한 아니라고 할 근거도 없다. 현재로서는 상상 이상의 큰 물건이나 사람을 뜻하는 말로  ~없다와 함께 쓰여 몹시 황당하고 뜻밖이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 정도가 맞다’ 가 정확한 답일 것이다.     


영화 속 유아인이 분한 조태호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설명한 어이는 어이없게 틀린 말이었던 셈이다. 사람은 자기가 사용하는 문장 속 단어를 세 가지 상태에서 표출한다. 첫 번째는 단어의 뜻도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다. 어이가 없다고 말하면서 어이가 '생각보다 큰 물건으로 ~없다와 연결되어 쓰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단어의 뜻을 오해하고 그 사실을 확신한 채 말하는 경우다. 조태호가 그렇다. 셋 번째는 뜻을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경우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사용하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써야 한다. 그래야 말하는 상황을 올바르게 반영할 수 있다. 화자의 생각과 언어와 상황이 일치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김훈 작가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언어라는 것이 그 사물 자체가 아닌 다음에야 그걸 표현할 길이 없는 거에요. 그럼 나는 이게 아닌데 하는 걸 알아요. 내 문장은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인쇄를 할 수밖에 없는 거에요. 매일 매일 불완전성 속에 살아야 하는 예술가라는 것은 비통한 거지요. 그래도 그것이 많은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나의 내적 표현성이에요. 완전성에 도달 못 하지만 전쟁에 나간 장수처럼 끝까지, 하는 데까지는 해보는 겁니다.”    


인터뷰를 보고 책장에서 그의 책을 한 권 빼 들었다. 그리고 아무 데나 펼쳤다. 기행산문집 풍경과 상처 67쪽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산사의 어린 수도자들은 골짜기의 시간과 공간을 맹렬한 속도로 회전시키는 매미 소리의 자지러지는 무의미에 주리 틀리어져 읍내 다방으로 쫓겨나와 있었다'    

여름, 산사가 있는 숲에서 우는 매미 소리를 가장 알맞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무엇일까? 이것이 김훈 작가의 고민이었을 것이다. 여름이라는 시간, 산속이라는 공간에서 물수제비 떠진 자리에 퍼지는 물결처럼 울려 퍼지는 매미소리를 그는 '시간과 공간을 맹렬한 속도로 회전시킨다'고 표현했다.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이게 본질과 가장 가까울 거야 하고 믿고 인쇄했다. 인간이란 사물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는 한계를 지녔지만 그것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다.    


나는 강의하는 강사이자 글 쓰는 작가다. 그렇다면 나를 가장 나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입 밖으로 내는 모든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대상과 상황에 맞게 사용하는 것, 내가 보는 대상을 본질과 가장 가까운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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