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선 열 살 효인이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일상으로 복귀할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데다 휴가 내내 즐거웠던 기억이 벌써 그리움으로 바뀐 탓이다. 반면 열 두 살 태인이는 눈물은커녕 다시 즐겁다. 커서 그런 걸까? 긍정적인 성격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다. 휴가 전에 주문해 두었던 레고가 현관문 앞에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휴가의 추억을 그리워 할 틈도 없이, 일상으로 복귀할 일을 짜증낼 시간도 없이 새로운 즐길 거리가 생겼다.
휴가는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고 기다려 왔다. 코로나 때문에 멀리 여행가지 않고 외갓집과 이모네 투어로 일정이 짜졌지만 그곳에는 함께 놀 사촌들과 집 마당에 설치하는 튜브 수영장, 제법 큰 개울, 고양이가 있다.
지난 삼일은 시작부터 끝까지 즐거웠다.
첫날 아침 ‘열공, 회인파크!’
열 살 효인이가 A4지를 접어 만든 머리띠를 두르고 문제집을 푼다. 머리띠에 쓴 구호는 해야 할 공부만 끝내면 회인파크 수영장으로 출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회인파크는 외갓집의 지명인 회인과 물놀이장인 파크의 합성어로 외갓집 마당에 설치한 튜브 수영장을 말한다. 넓게는 여름휴가를 의미했다. 기다려지는 일 앞에 공부부터 끝내라면 하기 싫을 만도 한데 효인이 한테는 이것만 끝내면 회인파크가 있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삼일 간 아이들은 경이로운 시간을 보냈다.
첫날, 회인파크, 사촌들과 함께 휴대폰 게임하기, 동네 한바퀴 돌기, 텃밭에서 오이, 참외 따기, 텃밭 옆에서 흙집 짓고 놀기, 물총 싸움, 과자 사러 슈퍼 다녀오기, 야식으로 라면 한 냄비 끓여 먹기
둘째날, 휴대폰 게임하기, 회인 파크, 물총 싸움, 개울에 가서 파리 낚시로 피라미 잡기, 다슬기 줍기, 잡아온 피라미로 생선조림해서 저녁 식사하기, 이모네로 출발, 이모 집에 도착해서 치킨 배달해 먹기, 고양이하고 놀기
셋째날, 일어나자마자 게임하기, 고양이하고 놀기, 집 앞 놀이터에서 그네타기, 이종사촌 친구집 가서 강아지하고 놀기, 점심으로 짜장면 배달해 먹기, 집으로 출발
눈물이 멈추고 다소 진정된 것 같던 효인이는 ‘나 다시 돌아 갈래’를 외치고 있다. 태인이는 레고 조립에 정신이 팔려 과거의 즐거움에 젖을 기미는 없다. 그러나 레고 조립이 끝나고 거실에서 잠시 뒹굴던 태인이도 그제서야 울기 시작한다. 레고에 묻혔던 일상이라는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따라 삼일간의 기억도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한때 일요일 밤에 편성되었던 개그콘서트 엔딩음악이 주말이 끝났음을 의미하고 그 음악소리와 함께 우울해진다는 말이 있었을 만큼 주말 후유증, 휴가 후유증은 어른들도 무시 못할 일이다.
하물며 삼 일간 저토록 흥미로운 시간을 보낸 아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즐거움 후유증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삼일동안 원 없이 놀았으면 됐지, 왜 오자마자 질질짜니, 뚝하고 책이라도 좀 봐’ 고 말하는 부모는 되고 싶지 않았다.
‘원래 휴가 끝나면 어른들도 좀 우울해져. 기분도 풀 겸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아이스크림 사먹고 올까?’ 이때 아이스크림은 그냥 마트에 파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가장 좋아하는 베스킨라빈스 아몬드 봉봉과 엄마는 외계인이어야 한다. 격렬한 운동 후에 마무리 운동으로 몸을 풀어 주듯, 휴가 끝나고 바로 일상으로 복귀하라고 아이들을 내 몰 것이 아니라, 산책과 아이스크림으로 휴가를 마무리하게 하는 것까지가 부모의 역할이다.
레고는 우울함을 근본적으로 풀어주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언제까지나 부모가 아이스크림으로 휴가를 마무리해 줄 수도 없다. 이 아이들도 스스로 마무리하는 방법을 배워 나가야 한다. 그것을 적절히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개그콘서트 엔딩 음악과 함께 깊은 우울에 빠질 것이다. 평일은 주말을 기다리는 날로 전락하고 주말은 영원히 보내주기 싫은 날이 되어 버린다.
카르페 디엠, 오늘을 살라는 말은 왜 실천하기 힘든 걸까? 왜 인간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를 두려워 하는 걸까? 휴가가 끝난 뒤 다가올 내일은 오지 말았으면 하는 싫은 날이지만 모레가 되면 다시 그리워하는 어제가 된다. 그걸 알면서도 어리석음의 반복을 평생하다가 죽음을 맞는 게 인간이다.
문제는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경구를 암송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해결했을 때 해결된다는 말이 있다.
‘휴가 끝나면 원래 우울한 거야. 며칠 지나면 괜찮아 질거야.’ 는 말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근본적 해법은 무엇일까?
첫째는 삶의 본질을 인생은 원래 그렇다는 추상적 해법으로 접근하기보다 구체적으로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유무상생, 유와 무는 서로 살려 준다. 유와 무는 함께 존재한다.’ ‘락이 곧 고다. 고가 곧 락이다’ 는 말처럼 하나의 사물, 하나의 감정에는 두 가지 반대되는 의미가 함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휴가의 즐거움이 큰 만큼 우울함도 더 크게 찾아온다. 휴가를 출발함과 동시에 우울함도 함께 출발했던 것이다. 즐거움과 우울함은 한 몸으로 있다가 휴가 때는 즐거움이 모습을 드러내고 돌아와서는 우울함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휴가 끝에는 울적한 기분이 들겠지? 하지만 휴가동안에는 모든 걸 잊고 즐거움만 느끼겠어. 그리고 휴가가 끝나면 모습을 드러낼 우울함에게 ‘이제 왔냐’ 하면서 인사해줄 거야’
하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둘째 내가 사는 모든 날, 모든 일에 행복한 의미를 부여해 놓는 것이다. 휴가만 즐겁고 학교가고 일하는 것은 하기 싫은 일이라면 인생의 대부분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휴가는 물놀이 할 수 있어서 좋고, 낚시할 수 있어서 좋고, 일상에서는 공부할 수 있어서 좋고, 일할 수 있어서 좋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공부가 재밌고 일이 즐거울 수 있냐’ 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들이 왜 즐거운지 찾아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 방법은 첫째 내가 하는 일과 공부가 나에게 어떤 이익을 줄지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왜 하는지도 모르는 공부, 어떤 이익을 줄지도 모르고 무작정하는 일이 재미있을 리 없다.
둘째 잘 하면 재미있다. 성과나지 않는 일은 재미가 없다. 성과를 위해서는 일정수준의 실력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공부와 일이 그냥 재미있고 그냥 잘 될 리 없다. 어느 정도 수준의 실력을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동에너지를 발산하여 지속된 노력을 투입할 각오가 없다면 우리는 언제나 시간의 노예, 삶의 노예가 될 뿐이다. 실력이 갖춰지고 성과가 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잘 하니까 재미있고 성과 나니까 즐겁고. 그 성과는 나를 새로운 노력으로 이끌게 된다.
결국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인가 내가 내 감정의 주인인가에 대한 답이다.
즐거운 회인파크 뒤에 오는 우울은 필연이다. 우울을 보고도 ‘안녕, 너 왔니’ 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