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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 강사 작가 Jan 01. 2023

슈퍼마켓 오픈 세일

손정 작가 에세이

"오늘까지만 영업하고 OO슈퍼 강서지점은 영업을 종료합니다."


집 앞에 있는 대기업 체인 슈퍼마켓이 더이상 사업을 이어가지 않음을 알리고 있었다. 손님이 뜸하긴 했어도 수년째 영업을 해오고 있었고 근처에 대형 단지 아파트와 1인 가구용 소형 아파트가 많아 폐점은 갑작스러웠다. 이곳에서 봉지 바지락을 사다 칼국수와 파스타를 해 먹었고 제철마다 귤과 딸기는 내가 자주 구입하는 품목이었다. 자리가 꽤 넓어 '여기는 또 뭐가 들어오려나' 궁금해 하기도 잠시, 플랜카드가 붙었다.


"OO 식자재 마트, 12월 중 오픈"


마트 사라진 자리에 마트가 들어 온다. 차별화된 영업 전략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버티기 힘들텐데 싶다가도

뭔가 있으니 같은 자리에 오겠지하고 내심 기대가 되었다.


오픈 하루 전날 온 동네에 전단지가 돌았다.


"오픈 행사 - 화끈하게 아낌없이 쏜다. 최저가로 매일매일 행복한 장보기! 12월 28일부터 1월 8일까지"


얼마나 화끈하게 쏘냐하면 

11,000원하는 딸기 한 팩이 5,980원

100g에 15,000원하는 한우 1+ 꽃등심이 7,900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계란 가격이 한 판에 3,980원

15개나 붙어 있는 바나나 한 송이가 990원

애호박은 1개 가격에 2개를 주고 일 인당 4개까지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치솟은 물가를 생각하면 거저 주는거나 다름없는 가격이었다.


내가 목표로 삼은 품목은 한우다. 마트에 들어서자 이미 전쟁터다. 카트마다 쌀, 두루마리 화장지, 계란, 귤, 소고기, 돼지고기를 싣고 계산대 앞에 몇 미터나 기다리고 섰다. 이 횡재를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하고픈지

저마다 전화기를 들고 오픈 행사 소식을 알리느라 바쁘다.


"이거 엄청 산거야. 나 마트 두 바퀴 돌았는데, 집에 갖다 놓고 한 번 더 올려고. 일 인당 제한을 두는 물건들이 있어서"


"오픈 행사 한다고 이정도인데, 전쟁 나면 굉장하겠네. 사람들이 우둔하기는. 딱 필요한 것만 사야지. 싸다고 미리 사놓는 걸 돈 아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네. 결국 못 먹고 버리면 그게 다 돈인데"


한우 600g과 딸기 한 팩을 우아하게 쇼핑한 나는 내 뒤에 중년 여성이 하는 말에 적극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본 고기와 딸기를 집에 갖다 놓고 보니 부모님 생각이 났다. 근처 20분 거리에 사시는지라

소고기 한 근 사다가 국 끓여 드시라고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24시간 영업이라 언제 가도 되었지만 주무시기 전에 전해 드리고 올 생각으로 다시 마트로 갔다.


사람은 여전히 많았다. 틈을 뚫고 몇 개 남지 않은 한우를 한 팩 집어 들었다.

계산하려고 섰는데 앞에 선 사람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기억을 살려보니 2시간 전에 내가 소고기와

딸기를 샀을 때도 내 앞에 서 있던 아주머니였다.


'집에 갔다가 또 왔어? 아주 눈이 뒤집혔구만' 생각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아차 싶었다.


아주머니도 속으로 '남자가 할 일도 없나. 세일한다고 하루 두 번이나 슈퍼에 오게. 아주 눈이 뒤집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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