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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 강사 작가 Jan 05. 2020

부산 어묵

“내 지금 롯데마트 갈 일이 있는데 가는 길에 너희 집 근처에서 전화할테니까, 잠깐 나와라. 부산어묵 주고 가께”



일요일 오전, 아버지의 전화였다. 사실은 어제 어머니가 먼저 전화하셔서 형이 부산 출장 간 길에 부산어묵을 몇 봉 택배로 보냈으니 하나 주겠다고 하셨다. 나의 집과 부모님댁은 걸어서 20분. 어머니는 중간지점인 발산공원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유통기한이 3일밖에 안 남았다며 다소 급한 마음도 조금 담긴 말씀이었다. 나는 요즘 이것 저것 글 쓸 일도 많고 하여 지금은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 내일이나 모레 쯤 한 번 들르겠다고 말씀드렸다. 어제 그렇게 말씀드린 것도 있고 해서 오늘은 아침부터 오늘이나 내일 쯤은 한번 가야 할텐테 마음을 쓰고 있던 터였다.



해운회사에 다니는 형님은 국내든 해외든 출장이 많은 편이다. 지난 추석에는 부산 출장 가서 산 거라며 모듬어묵을 여러 봉 부모님댁으로 가져 왔다. 나도 한 봉 얻어 왔고 덕분에 아이들이 어묵탕으로 맛있게 먹었다. 새알같이 동그란 모양, 어묵하면 생각나는 길쭉한 모양, 넓적한 네모 모양 등 생김도 다양한데다 재료에 따라 색깔도 가지가지, 종류별로 게맛살, 당면, 빈대떡재료가 따로 들어가 맛도 여러 가지다. 집 앞 붕어빵 노점에서 파는 어묵꼬치도 두 개씩 먹고 국물까지 떠서 집에 들고 오는 아이들한테 맛이 없을 리가 없다. 지난 추석에 어묵을 맛있게 먹었다고 부모님께 이미 말씀 드린 터라 형이 이번 부산 출장에서 다시 보낸 어묵을 보고는 당연히 아이들이 생각났으리라.



잠시 뒤 아버지는 근처에 오셨다며 다시 전화하셨다. 아파트 측면 출입구 밖에 아버지가 서 계셨다. 배달 오토바이가 무분별하게 드나들어 사고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벌써 여러해 전부터 비밀번호로만 열 수 있는 문이었다. 아버지는 번호를 알고 계셨지만 문을 열지 않고 앞에 서 계셨다. 


“눌러도 잘 안 열리네. 종이에 써 놓은 거 다시 봐야겠다.”


“롯데마트는 들렀다 오신 거에요?”


“아니, 어묵 먼저 주고 이제 갈라꼬”


정말 롯데마트에 가실 일이 있으신 건지 어묵 때문에 일부러 오신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지난번 보니까 애들, 부산 어묵 잘 묵대. 애들 줘라. 간다”


영하의 날씨에 20분을 걸어서 오신 당신이지만 바쁘다는 아들을 불러낸 것이 미안하셨는지 아이들이 어묵을 좋아하더라는 말씀만 연신 하셨다.


‘아버지,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그냥 아무 때나 전화하셔도 되고, 들르셔도 됩니다’


나는 걸어 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본 후에야 집으로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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