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주를 믿고 싶어 졌어요-
“엄마는 목기운이 없어. 그래서 책을 좋아하고 바다 보다 산을 좋아하는 거야”
언제부터인지 딸은 명리학은 학문이라며 사주를 보는 방법을 독학으로 배우고 있다. 그리고 유명하다는 분께 자신의 사주를 보는 듯하다. 출생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낳은 아이라 이름만 봐도 기독교인데....
뜬금없이 내 사주에 맞는 색이 초록이나 노랑이라고 지갑도 초록색을 사주고 옷도 초록쟈켓을 권한다.처음에는 어이가 없어서 귓등으로 잘 듣지도 않았는데
“엄마! 나는 부모가 부자여서 돈을 많이 물려주었으면 명이 짧거나 안 좋데. 받은 재산이 없어야 나에게는 좋은 거야. 그리고 난 내 운이 좋아서 평생 먹을게 안 떨어지니 걱정 마슈 “라고 한다.
평소 사주가 어떻고 하는 말을 주의 깊게 잘 안 들었는데 오늘 한말은 어쩐지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 우리 부부는 크게 재물을 모으지 못했다.
생전에 엄마는 결혼 후에도 우리를 한 묶음으로 관리하셨다.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 언니네집이 있었고 엄마는 우리 아이들을 돌보시느라 함께 지냈다. 매일 수시로 언니네는 우리 집에서 밥도 해결하고 놀러도 함께 다녔다. 결국 내가 엄마에게 드리는 생활비로 언니네가 함께 쓰는 셈이니 다른 집보다 생활비가 훨씬 많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건축설계 사무실을 운영하던 형부의 공사 수주를 위해 내가 보증인이 되어주었으면 했다. 공무원인 나는 신원이 확실하여 보증인으로 선호하였다. 망설이는 나에게 엄마는 형제간에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주라고 옆에서 부추겼다.
나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엄마와 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형부가 이끄는 지점 은행으로 가서 보증인 서약을 해주었다. 2년이 지나 나에게 어마어마한 빚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무지했던 나는 3 보증인이라 서류를 보고 무슨 일이 생겨도 1순위 형부집, 2순위 형부상가 3순위 나 이렇게 순서대로 책임을 지는 건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은행에서는 집이나 상가를 파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내 월급을 차압하는 것은 쉽게 수익이 생기는 일이라 바로 월급에 차압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친정일이고 별일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남편에게 의논도 안 했는데 이런 일이 터져서 당황스러웠다. 일단 차압을 막기 위해 내가 대출을 받았다. 언니는 그 와중에도 집을 팔아서 갚아 줄 테니 염려 말라고 해서 크게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집도 70%는 다 넘어갔고 상가도 마찬가지로 형부가 다 대출을 당겨 이미 써버린 후였다. 결국 엄마는 언니에게 이혼을 하라고 유언을 남기실 정도로 배신감이 컸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억울함이라고 한다.
나는 그 당시 엄마도 원망스러웠고 언니도 미웠다.
그 일로 인해 온가족이 마음고생이 심했고 결국 엄마도, 언니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매일 돈에 시달리는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공황장애로 쓰러졌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모든 것이 다 정리되었고 남편도 건강을 유지하려고 신경쓰는 일을 하지 않는다.
다행히 잘 자란 두 아이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될 만큼의 연금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딸이 가끔씩 사주가 어떻고 할 때는 귀를 닫고 잘 듣지 않았는데 오늘 한 말은 그동안 우리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언니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정리 할수있어 너무 위로가 되었다.
물려줄 돈이 없어야 우리 딸에게 좋다니.... 그래서 운명적으로 망할 길로 들어선 거구나 ….라고 믿고 싶다. 기독교인인데 사주를 믿고 싶은 웃픈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