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공부 Jan 08. 2024

퇴직 후 만난 아이들

-평생 했던일이 역시 내가 할일이라고 느꼈을때-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교회학교 장기자랑을 준비하려고 컵타 영상을 찾아본적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내가 나온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 학교만 다녀봤다.

여러 가지 사정이 나를 명예퇴직으로 이끌었다.

다시 학교로 가게 될 줄은 퇴직할 당시에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오히려 다시는 학교일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대 평생교육원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있었다.

그런데 퇴직한 학교의 교장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학교폭력상담사로 1년간 근무했다.

그 후에 다른 학교에서 급하게 기간제 교사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무섭다고 소문난 중2였다.

다시 수업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더구나 처음 교직에 들어왔던 몇년빼고 대부분 고등학교에만 근무했던 터라 달라진 중학교의 실태를 잘 몰랐다.

마음 여린 기간제 선생님들이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또 그만두길 두 번째 내가 세 번째 담임이라고 했다.

고민을 하다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아이들이 어떻길래 선생님들이 그렇게 힘들어할까....

고등학교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무시무시한 아이들이 앞에 있었다.

 나는 그동안 참 편하게 교직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은 나에게 굉장히 적대적이었다.

처음 인사하는 자리에서 어떤 아이가 큰소리로 “앗 서세원이다”라고 해서 살짝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집에 와서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보다 그만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내 얼굴 안에 내가 봐도 서세원의 모습이 있었다. 짧은 순간 잘 관찰해준 순수한 아이들이었다. 잘 이끌어주면 달라질거라는 확신을 가지려고 애썼다. 이 아이들에게는 진정으로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명감까지 느꼈다.

3월 한 달이 1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3월에 학급규칙도 없고 제멋대로인 아이들로 지내다 보니 아이들은 그야말로 지들 마음대로였다. 반장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꼭 토를 달고 나를 가르치려는 태도를 취했다. 그렇게 조금씩 기싸움을 하다 결국은 아이들은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그나마 많이 나아졌다는 칭찬을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많이 듣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평생 맡았던 아이들처럼 쉽지 않았다.

교감선생님은 그반 아이들때문에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었는데 아이들을 잘 지도해주었다고  고마워 하셨다.

그리고 다시 임용되어 계약기간이 1년 더 연장되었다.

새로 맡은 아이들은 3월부터 함께 해서 내가 세운 규칙과 원칙대로 잘 따라주었다.

1년 내내 예쁜 아이들로 선생님들의 칭찬을 많이 받는 모범반이었다.

지각이나 수업시간을 방해하거나 휴대폰을 안내고 교실에서 사용하는 등 규칙을 어기는 아이들은 남겨서 시 한편씩을  다 외워야만 집에 보내주곤 했다.

대부분 항상 걸리는 아이들이 정해져 있다. 중학교 교과서를 넘어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시까지 다 외운아이도 있다. 나는 우리반 꾸러기들이  비록 벌칙으로  억지로 시를 외웠지만 국어 시간에 자기가 아는 시가 나왔을때 귀가 번쩍 뜨이고 국어 시간을 좋아하게 될것을 기대해 본다.


12월이 되어 기말고사도 끝나고 학교에는 큰 행사가 남아 있었다.

바로 학급대항 댄스 경연대회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송 중1, 자유곡 1을 정해 전체 학생이 함께 창작 안무를 짜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어떤 반은 남아서 연습이 잘 안돼서 싸우기도 했다.

우리 반은 기말고사 전에 아이들하고 한 약속이 있었다.

기말고사와 댄스경연대회까지 1등을 한다면 내가 빕스에서 밥을 사주겠다고....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아이들이 못해낼 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한창 안무를 짜면서 서로 마음이 안맞아 갈등이 있을때 나는 기말고사 성적에서 1등을 했다는 비밀을 살짝 귀뜸해주었다. 그러자 다른 반보다 더 열심히 남아서 안무도 짜고 서로 돕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나는 비장의 무기를 아이들에게 쥐어주었다. 뮤지컬 배우들의 분장을 하는 이종사촌동생을 불러 아이들에게 분장까지 시켜주었다.

그리고 내가 막춤을 추며 깜짝 출연하였다.

우리 반 아이들은 더 의기양양 힘을 내서 단합된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다른 반 아이들은 1등은 정해졌다며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결국 댄스경연대회까지 1등을 차지하여 나는 빕스에서 39인분을 결제했다.

벌써 8년전 일이다.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와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이것도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그 아이들도 빕스에서 밥을 먹으며 종례를 했던 그날을 기억하고 있겠지?

 아이들에게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다면 이룰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그 아이들이 사회에서도 그때의 성취감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에 남는 제자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