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신앙인으로 이끌어준 결혼생활-
며칠 전 결혼 40주년을 맞았습니다.
당시 여자나이 25세를 넘기면 노처녀 취급을 하던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딱 맞게 결혼한 편이죠.
연애기간 7년을 포함하니 47년째 한 남자와의 인연이네요
40주년이라고 좀 더 특별하지도 않게 케이크를 마주하고 서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아침에 카톡으로 엄마와 아빠의 결혼을 축하한다며 딸이 보내준 두둑한 특별 용돈에 감사가 더하여지기도 했구요
우리 집 애완노견 보미 때문에 못하는 것이 많아진 요즘 우린 마음 놓고 외식도 못하는 형편이죠.
그래서 배달음식으로 대신하기로 했지만 어느때보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서로를 통해 인내를 배우고 서로를 인정해주며 조금씩 깍이고 다듬어질수 있어서인것 같아요.
결혼 전에는 결혼기념일마다 뭔가 큰 이벤트를 하며 살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며칠씩 여행도 다닐 목적으로 일부러 방학 때를 결혼날짜로 잡았죠. 눈치 보지 않고 결혼기념일을 챙기려는 마음이었는데 말이죠…
제주도 남자라 신혼여행은 설악산으로, 그리고 시댁식구들에게 인사차 제주도로 긴 여행을 다녀왔어요.
결혼 예물은 쌍가락지가 전부였지만 돌아오는 결혼기념일마다 남편이 한 가지씩 채워줬어요.
아마 7주년까지 그렇게 비어 있던 보석 상자를 채워나갔던 것 같네요. 아이들이 성장해서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졌을 때는 방학을 맞아 여행을 가는 것이 우리들의 결혼기념일 행사였죠. 남편이 공황장애를 앓기 전까지 말이죠. 이젠 어느 정도 공황도 극복하고 여행도 마음껏 다닐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 보미라는 복병이 나타났네요. 물론 애완견 동반 가족여행을 계획할수도 있지만 추운 날씨에 노견이라 걱정스럽더라구요.
그래서 꼼짝없이 집에서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무슨 날인지 아랑곳하지 않는 녀석은 코를 골며 낮잠이 들었다가도 수시로 눈을 떠서 엄마가 안 보이면 온 집을 찾아다니죠.
오늘 오랜만에 결혼식 사진을 꺼내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서로 얼굴이 많이 변했어요. 남편은 당시 너무 말라서 정말 볼품이 없었네요.
그나마 내덕에 지금이 훨씬 잘생겨졌다고 큰소리를 쳐봅니다.
“여보! 당신 해골 본 적 있어? 해골 보고 잘생겼다 못생겼다는 말 하는 거 들어봤냐고!”
당시 못생겼다는 제 말에 남편이 어이없는 논리로 항변을 하네요.
남편은 없는 돈에 대학원을 다니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장학금을 한번이라도 놓치면 학교를 못다닐 형편이었으니 말이죠. 결국 매학기 장학금을 받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할수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은 대학원 졸업 논문비도 없어 남편과 나의 결혼반지는 얼마 껴보지도 못하고 다른 주인을 찾아갔어요. 그때의 슬픈 기억도 오늘은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살면서 서로 안 맞는 사람이라 여기며 이혼까지 생각해 본 적도 있었고 미워한 적도 많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래서 참 다행입니다. 남편만 믿고 의지할수 없었던 환경은 오히려 신앙적으로 성숙할수 있었고 이젠 허락하신 모든 환경에 감사할수 있는 지혜를 주셨으니 말이죠. 그리고 결국은 이렇게 든든한 동지애를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남편이 쑥스러워하며 “나와 결혼해 줘서 고맙고, 이쁜 아들딸을 잘 키워줘서 더 고맙다”는 말을 듣고 살짝 눈물이 납니다. 어떤 선물보다 더 남편의 진심이 느껴졌거든요.
별다른 이벤트 없이 조용히 지나간 하루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 이유입니다.
이젠 남은 여생을 우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면서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마지막 숙제인 남편이 신앙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렸습니다.
47년간 알고 지냈지만 아직도 그분이 계획하신 그때는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