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구정이 돌아오면 웃지 못할 큰 사건이 떠오른다.
정말 잘못했으면 신문에 날 수도 있었는데.... 너무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다.
나는 운전기사를 붙여주겠다는 남편의 말에 속아 운전면허를 좀 늦게 딴 편이다.
같은 지역에 근무하는 부부교사여서 웬만하면 학교에 등교시켜 주고 출근해도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굳이 운전의 필요성을 잘 못 느끼기도 했지만 내가 운전하는 것에 대해 불안한 면이 있어서 일부러 운전을 못하게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암튼 수원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하필 집에서 제일 먼 곳이라 이 학교만 아니었으면 하는 바로 그 여고로 발령이 났다.
1년 동안은 카플로 같이 다닐 수 있는 선생님이 3명이나 있어서 그냥저냥 함께 다녔다.
그런데 이듬해에 부장이 되면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내 맘대로 기동성 있게 움직여야만 했다. 그래서 남편도 할 수 없이 면허를 따도록 도와주었다.
그래서 남보다 좀 늦은 40이 되어서야 면허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늦게 배운 만큼 도로 연수를 많이 해야 한다며 40시간 연수를 시켜주었다.
그래도 못 미더운 남편이 구정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한가한 도로에 같이 나가주겠다고 했다.
나는 운전 연습재미에 푹 빠져있던 터라 신이 났다.
제사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명절이라 갈비찜에 잡채, 각종 전을 조금씩 해 먹어서 설거지 거리가 제법 많이 나왔다. 나는 빨리 운전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식기세척기에 대충 때려 넣고 식기세척기를 작동시켜놓고 나왔다.
물론 아이들이 집에 있었다.
꼼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남편은 조수석에 앉아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40시간 연수받았다며 대체 뭘 어떻게 배운 거야?”
“서야지!! 서야지!!!!!”
우회전을 위해 막 돌려는데 남편이 귀가 아플 정도로 큰소리로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직진차가 막 달려오는데 우회전하면 어떻게?? 일단 섰다가 차 안 오는 거 보고 가야지!!”
“우회전은 신호 없이 가는 거 아니야?”
“이 사람 큰일 날 사람이네 내려!!!!!”
남편은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면허증이 나오자마자 새차를 뽑아줘서 고마웠던 마음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둘 다 말을 안 하고 냉랭한 분위기 속에 남편은 다시 아까 그 자리로 차를 몰았다
다시 우회전 연습을 시키려는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이 소방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질주를 했다.
나는 속으로 명절에 불나면 참 심란하겠다고 생각했다.
큰 불이 났는지 이어서 소방차가 2대, 3대 연달아 달려오고 있었다.
“어디 큰 불이 났나 봐 새해 첫날부터 걱정이 많겠다”라고 말하는 순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우리 집에 불나서.... 소방관 아저씨들이 와서 불다 끄고 갔어!!”
“뭐??? 그걸 왜 이제말해 집에 불이 나면 아빠한테 전화를 해야지!”
“어차피 아빠한테 전화해도 아빠가 불 못 끄잖아 그래서 우리가 119에 신고해서 아저씨들이 왔다 갔어”
순간 손이 벌벌 떨리고 아이들 걱정에 남편과 급히 집으로 향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파트 사람들이 모두 나와 우리 집 쪽을 바라보고 웅성이고 있었다.
우린 마치 대역죄인이 된듯한 기분으로 급하게 집으로 올라갔다.
오 마이갓!!!
불이 났다는데 얼마나 물을 뿌려댔는지 홍수난집같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내가 식기세척기를 돌려놓고 간 게 문제였다.
요즘은 아파트 옵션에 식기세척기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 빌트인으로 잘 설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2000년) 빌트인으로 설치할 수 없다고 해서 하는 수없이 뒷베란다에 설치했다.
하지만 코드를 꽂을데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딸방 창문을 통해 긴 콘센트를 연결해서 쓰고 있었다.
그런데 선이 꺾여져 있었는지, 식기세척기과열인지 원인 모르게 불이 튀면서 선을 따라 불이 붙기 시작하더라는 것이었다.
관찰력이 좋은 딸의 눈썰미덕에 119에 바로 신고하고 임신 중이었던 강아지를 안고 1층으로 뛰어내려 가 1층에 잠시 있게 해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1층에서 신고하고 몇 번씩 사람들이 신고해서 총 5대가 출동했다.
다행히 딸방만 반쯤 타서 나중에 방을 완전히 새로 꾸며야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우리 아이들 모두 다친데 없이 무사해서 너무 감사하다.
물론 아파트 화재보험에서 수리도 다 해주고 보상도 받았다.
관리비중 아주 작은 돈을 내는데 이렇게 쓰이나 싶어 감사했다.
우리 때문에 명절에 급하게 진상조사를 나온 분들에게도 정말 미안했다.
암튼 그래서 우린 지금도 식기세척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식기세척기는 물론 전자레인지 등을 아예 사지도 못하게 한다.
나도 불편하긴 하지만 수동으로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 딸 말대로 진짜 하늘에서 누군가가 늘 돌봐주시는 것 같다.
식구끼리 차려 먹는 명절의 소박한 상차림이지만 그래도 평소 보다는 기름진 음식도 많아 개수대 가득 쌓인 설거지 거리를 보면서도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