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자두 서리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두

by 글마루

동네 뒷길로 이어진 배밭에 늦자두 한 그루가 새파란 열매를 품고 있다. 배나무밭 가장 귀퉁이에 주인이 먹을 요량으로 재배하는지 복숭아 몇 그루와 그 옆 자두나무에는 채 알이 다 굵지 않은 자두가 대롱대롱 매달린 것을 보기만 해도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이젠 나이가 들어 새콤한 맛이 예전처럼 그립지도 않고 먹어댈 용기도 없지만 유년 시절에는 은은한 향을 풍기며 발그레 익어가는 자두의 유혹이 꽤 끈질겼던 것 같다. 남의 밭에 열린 자두 하나 똑 따서 와삭와삭 씹고 싶은 갈증은 자두나무 옆을 지날 때면 더 심했다.


종중 땅으로 부쳐 먹는 남산 밑 밭을 가자면 동산을 지나고 워남 할머니 집을 지나야 한다. 워남 할머니 집 앞 텃밭에는 심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자두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신품종이라서 그런지 굵은 열매는 탐스러우면서 새콤하고 달았다. 우리는 여름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그 밭을 지나가기가 망설여질 만큼 자두를 맛보고 싶었다. 언젠가는 아버지를 졸라서 자두를 몇 개 얻어먹기도 했다. 마을이 서 씨 집성촌이었기에 좀 멀고 가깝고의 차이뿐 거의 친척이었다.


아무리 친척이라도 먹을 것이 귀한 시절에는 얻기가 힘들었다. 아버지도 자식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말씀을 하셨다. 자두 한두 개로는 계속 감질이 났다. 드디어 언니의 제안이 있었다. 저녁에 자두 서리를 하자고 했다. 난 싫다고 했고 몰래 몇 개만 따면 모를 거라고, 동조하지 않으면 못 먹을 거라며 엄포를 놨다. 결국 몇 번의 유혹 끝에 자두 서리에 가담하게 되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서리를 감행한 것이다.


언니, 나, 동생 이렇게 셋은 저녁을 먹고 엄마 아버지 몰래 집을 나섰다. 더워서 동네 느티나무에 가서 바람을 쐬고 온다는 핑계를 대고서였다. 나는 그 일을 결행할 발자국을 띄면서부터 가슴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동산을 넘어서 살금살금 언덕을 내려갔다. 드디어 자두밭 아래에 당도했다. 그 밭 바로 옆이 우리 밭이었다. 동생과 나는 우리 밭에서 망을 보기로 했다. 워남 할머니 집 마당에는 전등불이 켜져 있어서 제법 환했다. 그 불빛이 자두나무까지 훤히 비출 만큼 밝아 보였다.


나무 곁으로 기어서 간 언니는 살금살금 자두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자두나무 키가 작아서 조금만 올라가도 되었다. 나는 간이 콩알만 해졌다. 난생처음으로 하는 서리인지라 무척 긴장되었다. 들키면 어떡하나 걱정이 너무 앞섰나 보다. 꼭 워남 할머니가 우릴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두나무 잎이 마구 흔들리는 착시까지. 언니는 자두를 따서는 자기가 입고 있는 티셔츠 속으로 집어넣었다. 몇 개만 따고 내려올 줄 알았던 언니는 금방 내려오지 않았다.


결국 워남 할머니가 나오신다는 내 거짓 엄포로 곧 내려왔다. 언니는 따 넣은 자두로 인해서 배가 불룩했다. 동산으로 황급히 올라가서 자두를 쏟아놓고 보니 서른 개 남짓했다. 아직 덜 익어서 새파란 것도 있었고 노랗게 먹기 좋을 정도로 익기 시작하는 것도 있었다. 세 자매는 집으로 돌아가 몰래 씻어서 건넌방으로 갔다. 몫을 나누는데 서리에 앞장섰던 언니가 제일 많이 차지하고 동생과 나는 똑같이 나누었다. 미처 덜 익어 단단하면서 새파란 자두를 깨무니 입안에 침이 돌았다. 우리 세 자매는 여간해서는 맛볼 수 없는 자두를 목에서 신물이 넘어올 정도로 먹었다.


한편 먹으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갑자기 워남 할머니가 찾아오실 것 같은 불안감. 그런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면 퇴학당하는 것은 아닌지, 부모님까지 우리 때문에 할머니께 죄스러운 사과를 하는 것은 아닌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꼭 워남 할머니가 알고 계실 것 같았다. 언니는 절대 엄마 아버지에게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마음이 켕겼지만 입 밖에 낼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채 여름밤은 무르익었다.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서리였지만 선생님이나 부모님 말씀을 하느님처럼 여기면서 자라온 내게 그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잘못이 되었다. 그 자두 서리 한 것을 워남 할머니가 알면서 넘어 가주는 것은 아닌지, 의심은 가는데 말씀을 못 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은 여름만 되면 계속되었다. 들어보니 시골에서 자란 사람치고 서리 한 번 안 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다들 웃으며 무용담처럼 얘기하는 서리가 내게는 죄책감으로 남았다.


몇 년이 흘러 아버지는 마당에 자두나무를 네 그루나 심으셨다. 워남 할머니 밭에 있는 나무와 똑같은 품종 두 그루, 겉은 파랗고 속은 새빨간 깨물면 과즙이 핏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수박자두 나무였다. 과실은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서야 그 열매를 맛볼 수 있었다. 다 자라서는 자두가 열려도 탐내는 사람도 없어지고 제대로 수확을 안 해 저절로 나무에서 빠지는 적도 있었다. 우리가 한 창 먹고 싶을 때는 구할 수도 없었던 자두나무가 나중에는 쓸모없는 나무로 전락한 것이다.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자두나무는 이후 베어 없어졌다. 지금 친정집 마당 한 귀퉁이에는 외래종인 보리수나무가 한 그루 있다. 토종보리수에 비해 알은 엄지손가락만큼 굵은데 맛은 시큼털털하다. 그것 역시 저 혼자 열렸다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버린다.


어린 시절은 과일도 무척이나 귀했다. 또 다른 친척 집에는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었는데 달콤한 향을 풍기는 주황색 자두가 왜 그리 먹고 싶든지. 나무에 달린 것을 마음대로 따먹으면 안 되는데 땅에 떨어진 것은 먹어도 괜찮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살구나무 아래에서 살구가 떨어지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것도 주인 할머니의 눈치까지 봐가면서 그랬으니 어린 날의 과일은 지금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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