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추억
여름이 되면 빈한한 초가지붕 아래도 구수한 내가 난다. 모기에게 피를 빨리고 가려워 긁은 자리가 부어올라도 여름이 푸근한 것은 먹거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초여름에 들라치면 채 알이 굵어지지 않은 감자가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고, 알알이 영근 옥수수가 익어가는 냄새는 밖에서 뛰어놀던 우리를 저절로 집으로 향하게 했다.
자식 많은 집에 걸맞게 밭에서 꺾어온 옥수수는 포대 자루로 가득했다. 옥수수 껍질을 벗기다 보면 겉껍질은 아주 억세어 어린아이들이 잡아당기기는 힘에 겨울 때가 있었다. 세 자매는 서로 많은 껍질을 벗기겠다고 앞을 다투었다. 그러면서 길게 난 수염을 뽑아서 코에 붙이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이따금 들쥐가 파먹어 모양새가 이상하고 이빨 자국이 선명한 옥수수를 버리기라도 할 요량이면 엄마는 그것을 버리지 못하게 하셨다. 쥐가 파먹은 부분은 잘라내고 미처 설익어 여물지 않은 알갱이는 쇠죽솥에 넣어졌다.
서로 고르고 잘생긴 옥수수를 먹겠다고 우기는 통에 우리 세 자매는 각자의 몫을 배급받기도 했다. 옥수수는 길고 곧으며 몸통도 중간 굵기에 알도 적당히 익은 것이 쪄도 맛있다. 서로 많이 먹으려는 욕심에 재래식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미처 소화가 덜되어 알갱이 그대로 나올 때도 있었다. 각자의 성격에 걸맞게 세 자매 중 언니는 맛있는 것을 먼저 먹어 치웠다. 그런 다음 하이에나처럼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동생들 것을 노리기도 했다.
동생과 나는 어떨 때는 그 요구에 순순히 응하기도 했으나, 언니 혼자만 욕심부려서 다 차지하는 것 같아 얄미워서 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때는 우리가 아껴먹으려고 놔둔 것을 언니가 몰래 먹어 치우기도 해서 나름대로 숨긴다는 것이 너무 꼭꼭 숨겨 그것을 잊고 다음 날 쉬어버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아끼느라고 알이 좋지 않은 것은 먹고 진짜 좋은 것은 정작 먹지 못하고 버리는 아까움은 컸다. 오히려 언니처럼 아끼지 않고 먼저 먹어 치우는 것이 현명한지도 모른다.
다 먹은 옥수수깡은 까칠까칠해서 칫솔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옥수수깡으로 이빨을 문지르면 칫솔질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 똥이 낀 치아가 매끈해졌다. 우린 그것을 장난으로 했지만 지금은 과학적으로도 효능이 뛰어나다고 입증되었다. 잇몸 치료제에 옥수수깡 성분이 들어간다고 한다. 먹고살기도 어려운 가난한 형편에 칫솔을 따로 구매해 줄 여유도 그럴 상식도 부족했던 부모님이셨다. 그나마 아버지는 굵은소금으로 예전부터 양치를 해오셨기에 우리에게도 굵은소금을 손가락에 묻혀 양치하는 시범을 보여주시기도 했다. 우린 거칠고 각진 데다 그것으로 문지르면 잇몸도 아프고 짠맛이 꺼려져 소금으로 무슨 양치를 하냐고 투덜거렸다.
옥수수는 사카린이나 삼성당과 약간의 소금을 넣고 삶는다. 외진 시골인 데다 문화적인 혜택이 어려운 곳이다 보니 웬만큼 땅마지기나 있는 집이 아니면 대부분 나무를 때 난방하고 취사도 나무로 했다. 가마솥에 푹 삶긴 옥수수를 건지면 뜨거워 손에 쥐기도 힘든 것을 먹느라 손바닥을 연신 불어가며 먹기에 열중했다. 옥수수 한 통을 다 먹고 그때껏 남아있던 옥수수깡을 쪽쪽 빨면 거기에서 달큼한 국물이 나왔다.
단물까지 다 빨아먹고 나면 그것을 가지고 장난감 삼아 놀기도 하고 그러다 지겨우면 그것을 부엌 나뭇단 속에 던져놓는다. 옥수수깡이 어느 정도 마르면 아궁이로 들어가 나무들과 어우러져 활활 타오르게 된다. 시골에서 나는 것은 일회성으로 쓰고 버려지는 게 별로 없다. 먹고 남은 옥수수깡은 땔감으로 대신하기도 하고 마지막까지 재로 남겨져 농사의 거름으로 순환된다. 좀 불편하고 번거로워도 자연에 거슬림 없이 알뜰하게 소멸하고 부활한다.
굵고 잘생긴 옥수수는 그 모양새가 사람의 치아를 닮기도 하고 풍금의 건반처럼 가지런하다. 적당히 잘 여문 옥수수는 이빨로 뜯어먹는 것보다 엄지손가락으로 몇 개씩 벌리면 가지런히 붙은 채로 떨어져서 깔끔하게 먹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우리는 누가 옥수수 알맹이를 붙은 채로 많이 떼어내는지 먹으면서 내기를 하기도 했다.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고 흡입하는 것이 아니고 일종의 놀이도 곁들여 있었다. 장난감이 따로 없어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자매가 친구이기도 하고 삽작문 밖으로 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나이 불문 친구였다.
지금은 나보다 두어 살 많은 언니, 오빠나 한 살 어리지만 어울려 놀았던 동네 아이들은 하늘 아래 어느 곳에서 각자의 역할극에 바쁠 터이다. 그네들도 삶의 난관에 부딪히거나 지루함을 느낄 때면 나처럼 유년 시절을 회상해 볼 것이다. 함께 뛰놀던 고샅은 아이들이 사라져 인적이 끊어진 지 오래다. 잔디가 닳아서 미끄러울 만치 넘나들던 동산은 잡풀만 무성해졌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줄기 땀방울을 식혀주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보아주는 이, 찾아주는 이 없는 지금은 삭막하고 처량하기 이를 데 없다. 비 오는 날은 둥근 호박 채 썰고, 매운 고추 송송 떨어 솥뚜껑 뒤집어 들기름에 부친 호박전이 여전히 그리운 것은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음이리라. 호박전 잔뜩 먹어 입가는 기름칠로 번질거린 채, 한 손에는 삶은 옥수수 하나 들고 누가 뺏어먹을세라 눈을 깜빡이는 촌스러운 소녀는 지금 지천명을 넘겼다.
며칠 조용하던 장맛비가 종일 오려나 보다. 비에 젖은 장작이 타는 냄새와 눅눅해진 마루에 걸터앉아 옥수수 하나를 들고 하모니카 부는 흉내를 내던 아버지. 남는 옥수수 있으면 건넌방 어느 구석에 하나쯤 다시 숨겨놓고 싶다. 철없던 세 자매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제 살아갈 길만 바쁘다. 나 혼자만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청승을 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는 오지 않고 되돌아갈 수 없기에 더 그리운 그때의 정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