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총량의 법칙
길거리를 걷다 보면 이따금 오십 원이나 백 원짜리 동전이 떨어진 것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굳이 주우려고 하지 않지만 나는 줍는다. 꼭 돈 욕심을 내서라기보다 가치가 떨어진 동전을 외면하기 싫어서이다. 그런 내 모습을 궁상맞게 볼지도 모르지만 엄연한 사실은 지금도 쓰이고 있는 화폐라는 점이다. 요즘 아이들도 쳐다보지 않는 동전이 어느 순간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바닥에 굴러 떨어진 동전이 나를 보고 제발 주워달라고 애원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초등 일 학년 때였다. 어찌어찌해서 내게 십 원이 들어왔다. 주운 것인지 심부름하고 받은 것인지 하도 오래돼 분명하지는 않다. 나는 동전을 놓칠세라 주먹에 꼭 쥐고 한참을 망설였다. 친척 어른들께 가끔 용돈을 받아도 한 번도 나 스스로 쓰지 않았기에 엄마에게 줄까 군것질할까 주저한 것이다. 내 안에서는 과자를 사 먹으라고 자꾸 부추겼다. 제대로 군것질 한번 해 보지 않았기에 나도 무언가를 사보고 싶었다.
나는 사오리 거리의 재 너머 마을에 걸어갔다. 그리고 가게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우물쭈물 서 있으려니 뒷집 오빠가 내게 와서 뭐 하러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 손바닥을 펼쳐 십 원짜리를 보여줬다. 오빠는 나를 가게 안으로 이끌었다. 그러면서 아무거나 골라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가게 주인인 할아버지에게 이것저것 묻기만 했다. 아이스크림 하나에 십 원, 연두색과 주황색이 섞인 쫀디기는 두 개에 십 원이었다. 묻기만 하고 선뜻 사지 못하는 내게 뒷집 오빠는 뭐라도 사 먹으라고 몇 마디 하더니 답답하다며 밖으로 나갔다.
오빠가 나가고도 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서 고민만 했다. 보다 못한 할아버지는 이것 살래 저것 살래 묻더니 안 살 거면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망설이기만 하다 그냥 돌아서 나왔다. 결국 십 원은 엄마에게 주었다. 나는 엄마에게 착하다는 칭찬을 듣기는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오래도록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과 쫀디기가 떠나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그랬기에 어쩌다 친척들이 방문해 돈이라도 쥐여주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구멍가게로 달음박질쳤다.
그 후로도 나는 친척들이 어쩌다 주고 가는 돈을 써본 적이 없다. 태생이 검소해서인지 돈을 쓸 줄 몰라서인지 모르지만 내가 어딘가에서 군것질을 한다는 것을 죄악처럼 여겼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는데 나는 어쩐 일인지 어릴 때부터 집안만 생각했다. 늘 칭찬받기 위해 어른들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집에서 존재감이 없는 내 처지에 인정받기 위해서는 착한 아이가 되는 것이었다. 관심받고 싶은 본능으로 칭찬받을 짓만 골라했다. 한 마디로 애어른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옥죄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틀에 가둬버리는 것, 내 존재를 느끼고 싶어. 인정받고 싶어서.
만약 그때 십 원을 내 마음대로 쓰고 군것질에 대한 달콤함을 알았다면 나는 좀 더 철없는 아이로 자랐을지 모른다. 그런 습관은 성인까지 이어져 나를 위한 지출을 아까워했다.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 언제나 내 가족이 우선이었다. 나를 위한 소비는 이기적이라고 여겼다. 절약만이 최선이라 생각했으나 그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젠 알게 되었다. 어린아이로서의 천진함이 부족했던지 나는 뭔가의 결핍으로 허덕이고 있다.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보상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을 때는 나는 이미 나이가 너무 들었다.
나 자신에게도 내가 번 돈의 일부를 투자해야 함이 당연한 권리인데도 나는 누가 그걸 나무라기라도 할 것처럼 주변에 눈치를 봤다. 어쩌면 지독한 가난 때문일 수도 있고 어려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보니 그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는지도 모른다. 부모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면 결핍이 생기듯이 자신에게도 투자하지 못하면 결핍이 생긴다.
십 원 이야기를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해준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이 워낙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라는지라 내 말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라테처럼 선생님은 옛날에 십 원이 아까워 군것질을 못 했다고 말하자 아이들에게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너무 착하다는 말과 어릴 때 내가 가엾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돈과 물질에 대한 소중함과 현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는 내 의도는 다행히 통했다.
요즘 ‘인생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고생, 고통, 행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비도 총량의 법칙이 있을까? 돌아보면 나는 내 평생에 쉰 적이 3년 남짓이다. 물론 그냥 쉰 게 아니라 치열하게 살림하며 살았다. 남동생, 시동생까지 거두며 처절하게, 알뜰하게. 성실하게 앞만 보고 일만 하느라 나 자신에게는 번 돈을 제대로 써본 기억이 별로 없다. 고생, 고통은 많이 겪어봤으니 내게 남은 건 이제 행복, 소비만 남은 것인가. 그 이론이 맞는다면 은근히 그 법칙이 진리인 듯 기대 보고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