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기 귀찮고 뭘 먹어야 할지 막막할 때, 결국 찾게 되는 건 짜장면이다. 이젠 외식이라고 부르기도 무색할 정도로 흔하고 만만한 음식이 되었지만 내게는 특별히 대접받는 기분을 느끼던 때가 있었다. 학창 시절 짜장면은 인생 최고의 음식이었다.
세상 밖으로 고개를 비죽 내밀었다. 하늘 아래 첫 동네처럼 골이 깊은 빈농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해마다 어김없이 생일이 돌아와도 미역국을 먹은 기억이 없다. 가난한 집에 자식은 고구마 줄기 엮듯 여럿이다 보니 누구의 생일인들 특별하지 않았다. 생일이라기에 생일인 줄 알지 시래깃국이나 달랑 김치 한 가지인 밥상. 중학생이 되면서 자그마한 것으로 생일선물을 주고받으며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서 배워갔다. 그땐 대부분이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우리 집은 반에서 최소한 두 번째는 가난했다.
농촌에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 소유의 땅이 한 평도 없었다. 아버지는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소작농이셨다. 봄이 오면 일 년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집안은 부엌 천장의 그을음처럼 흙빛만 자욱했다. 그러니 용돈은 고사하고 버스비도 엄마의 눈치를 봐가면서 받았다. 차비를 받아야지 학교에 가는데 그조차 죄스러워해야 하는 현실에 낭패감을 삼켰던 순간. 버스비 아끼느라 왕복 10km 거리를 걸어서 등하교하곤 했다. 그 발걸음 위에 내 우정이 쌓였다. 친구들의 생일에 소박한 선물을 하는 기쁨.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내 처지는 더 곤궁해졌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엄마는 몸져누우셨다. 아픈 엄마에 어린 동생들 도시락까지 챙기며 농사일을 거드느라 힘에 부쳤지만 학교에 가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명랑했다. 학교는 내 도피처나 다름없었다. 학교에 가면 엄마 걱정으로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친구들과 소통하는 학교생활의 즐거움으로 불안감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친구들은 나의 그런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겉으로는 해맑고 명랑했으니 가까이 다가오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종일 땡볕에서 들일을 해도 백자처럼 보얀 내 피부도 한몫했다. 집안일을 속속들이 말하지 않으니 부잣집 막내딸인 줄 아는 친구도 있었다. 수업 시간에도 발표나 대답을 잘하고 태도가 좋으니 선생님께도 인정받았다. 그랬기에 집에서의 그 어두움과 절망적인 심정을 학교에서 어느 정도 전환 시킬 수 있었다.
고2 생일날이었다. 친구들이 어떻게 알고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내 주머니에는 짜장면은 고사하고 딸랑 교통비로 쓸 동전밖에 없었다. 내 상황을 짐작이라도 했는지 친구들끼리 돈을 거둬 먹으러 간다기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열 명 남짓의 친구들과 식당으로 향했다. 진미반점이라는 면 소재지에 유일하게 한 곳 있는 짜장면집이었다. 나는 쭈뼛거리며 식당에 들어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친구들과 둘러앉았다. 난생처음 외식을 짜장면으로 한 것이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짜장면이 우리 앞으로 날라져 왔다. 통통한 면발 위에 까만 소스에는 완두콩이며, 양파, 잘게 썬 돼지고기, 감자 등이 범벅되었다. 쫄깃쫄깃 기다란 면발은 집에서 삶는 국수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얀 플라스틱 사발에 담긴 짜장면을 휘휘 젓자마자 번들거리며 윤기가 돌았다. 까만 소스가 면을 감싸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이 고였다. 달짝지근함이 감도는 짜장면에 코를 박고 후룩후룩 면을 빨아당겼다. 짜장면은 내 목구멍을 타고 게 눈 감추듯 사라져버렸다. 짜장면과 함께 나오는 아삭한 단무지와 생양파도 말끔히 먹어 치웠다. 먹고 돌아서도 금방 배고파지는 나이였다.
생일상 한 번 받은 적 없고, 맨날 차비 걱정에 전전긍긍하면서 하루하루 이어가던 나. 짜장면이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었다. 짜장면값을 어떻게 할까 내심 고심하던 내 심사를 친구들이 읽었던 걸까. 친구들이 돈을 거둬 음식값을 치렀고 나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고마움과 부끄러움이 교차하는 순간. 친구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고, 짜장면을 먹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찼다.
그날은 짜장면 한 그릇에 세상 최고의 행복감을 안고 집으로 와 짜장면 먹은 일을 자랑했다. 아버지는 참 좋은 친구들이라고 하셨고, 동생들은 입맛을 다시며 세상 부러운 눈으로 날 쳐다봤다. 이후 담임선생님께 운 좋게 짜장면 얻어먹을 기회가 한 번 더 있었다. 그때도 세상 어느 음식보다 진귀한 맛을 느끼면서 그릇 밑바닥까지 핥듯이 해치웠지만 말이다.
도시에서 어려움 없이 자란 사람은 짜장면 한 그릇 얼마나 한다고 감동까지 하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짜장면 한 그릇의 가치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가난한 사람에게는 아주 조그마한 것에도 감동하고 잊지 못한다. 모든 게 귀한 시절이다 보니 짜장면 한 그릇에도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그토록 오묘하게 감칠맛 나던 짜장면은 점심 메뉴가 마땅하게 생각나지 않을 때 먹는 편하고 만만한 음식이 되었다. 어디 짜장면뿐인가. 외식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재 귀한 음식은 드문 편이다. 지금이야 동네마다 반점이 몇 곳씩 있지만 옛날 내가 살던 궁벽한 시골에서는 특별한 날에도 맛보기 힘든 진귀한 음식이었다. 닿을 수 없을 때 느낄 수 있는 간절함이다.
짜장면을 함께 먹었던 친구들은 지금 중년을 지나 장년이 되었다. 어느 하늘 아래에 살고 있는지 소식조차 모르는 친구도 있다. 까마득한 기억 속에 아련한 친구들의 모습. 그때의 친구들을 만난다면 재잘재잘 다시 한번 깨알 같은 수다 보따리를 풀고 싶은 상상을 한다. 그날 짜장면 한 그릇이 내 인생에 준 무지갯빛. 가난의 어둠 속에서 잠시라도 빛을 보게 해준 소중한 순간이었다. 그에 보답해 이젠 내가 탕수육 곁들인 짜장면을 곱빼기로 대접하고 싶다. 그때 받은 마음에 고마움 가득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