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한 송이

할아버지의 사랑

by 글마루

지인의 과수원 일부가 도로에 편입하게 돼 그냥 버려둔 포도나무가 몇 그루 있다. 관리도 전혀 하지 않고 버려두었지만 작게나마 매달린 열매가 푸른 기운이 도는 가운데 드문드문 검은빛을 띠기 시작한다. 방치되다시피 한 열매는 땡볕에서도 이름값 하겠다는 듯 동글동글 영글어 간다. 쳐다만 봐도 새콤함에 한쪽 눈이 찡그려지고 혓바닥에서는 침이 샘물처럼 솟는다. 신 과일을 유난히 좋아했던 기억을 되살려 설익은 포도알을 따 입에 넣는다. 생각보다 달콤함이 내 미각을 자극한다. 뒤따라온 신맛이 유년 시절의 포도 향기를 가만가만 불러온다.




큰집 뒤꼍에는 굵은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한 그루지만 제법 실하고 굵은 포도가 많이 열렸다. 할아버지가 큰집에 살고 계셨지만 엄연히 우리 것은 아니었다. 포도 열매가 커지기 시작하고 빛깔이 제법 거뭇거뭇하게 익어 가면 향기가 먼저 나를 유혹했다.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좋아 나는 포도나무 아래를 자주 서성거렸다. 나이 차이가 많은 사촌오빠의 눈치를 봐가면서 검보라색 열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아롱아롱 영롱한 빛깔의 열매는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계율을 어기고 따 먹음으로써 원죄를 범한 선악과처럼 끝없이 나를 유혹했다.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작은 책상을 앞에 두고 한문 서책을 보시는 것이 일과였다. 희고 긴 수염을 이따금 쓰다듬기도 하시며 우리가 큰집에 가면 엄마 아버지는 뭐하냐고 묻고는 하셨다. 자식 중에서 제일 가난한 우리 집을 늘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쟁쟁하다. 할아버지는 동네에서는 항렬(行列)을 떠나 제일 큰 어른으로 모셔졌다. 한문에 능하고 붓글씨 또한 명필이라 그 명성으로 관직 제의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게다가 종갓집 장손이었기에 집안에서 할아버지의 위치는 꽤 상징적인 존재였다. 외지에 나가 있는 일가친척들은 고향에 내려오면 꼭 할아버지께 와서 큰절하고 인사를 드렸다. 일가친척에게 신처럼 추앙받는 할아버지가 어린 내 눈에 위대하고 어렵게 여겨진 건 어쩌면 당연한 정서였다.


언제나 희고 정갈한 한복에 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계시니 어느 날은 학처럼 고고하고, 어느 날은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의 기상이 엿보였다. 할아버지가 입은 마고자에는 커다랗고 붉은 호박이 단추로 쓰였다. 주황빛이 도는 유리알처럼 맑은 호박 속에는 곤충이 한 마리 박여있었다. 나는 아이 주먹만 한 주황색 호박이 신기해 할아버지 무릎에 기대어 만져보기도 했다. 또 운이 좋으면 할아버지와 겸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밥상은 모든 식기가 놋으로 된 것이었다. 하얀 쌀밥에 반찬도 가지가지. 들기름을 직접 발라 구운 고소한 김과 정갈한 반찬은 우리가 받는 밥상과는 격이 달라 보였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주들을 생각해 당신의 반찬을 자주 건네주기도 하셨다. 근엄하게만 보였던 할아버지도 손주를 향한 인정은 깊었다.


아들이 없는 우리 집에 남동생이 태어나고부터 할아버지의 관심은 더 많아지셨다. 큰집에 가기만 하면 남동생 잘 자라는지 물으셨고, 과자를 꺼내 남동생 갖다주라며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은밀한 지원군이셨다. 포도 향이 큰집 담장을 넘기 시작하면 뒤꼍으로 나를 가만가만 부르셨다. 큰엄마와 사촌오빠가 들에 나가고 없는 사이에 가위 하나를 들고 잘 익은 포도를 한 송이 따 주셨다.


수많은 송이 중에서도 가장 잘 여물고 탐스러운 포도를 골라주셨다. 빈틈없이 빽빽이 들어찬 포도알은 과일이라기보다 보석 같았다. 짙은 보랏빛의 알맹이 하나를 똑 따서 입에 넣으면 달콤한 과육과 함께 향은 아찔할 만큼 달콤했다. 할아버지는 뒤꼍 담장으로 포도를 몰래 건네주시며 큰엄마께 말하지 말라는 당부를 꼭 하셨다. 우리는 함께 도둑질하는 공범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작전을 개시했다. 나는 그사이 큰엄마가 돌아오셨을까 봐 소리도 내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고는 포도를 들고 우리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한 번은 할아버지와 비밀작전을 수행하다가 큰집 오빠한테 들킨 적이 있었다. 우리를 몰래 챙겨주시는 것을 마뜩잖아하는 오빠를 할아버지가 나무라셨다. 어린 것들이 얼마나 포도가 먹고 싶으면 포도나무 밑을 맴돌겠느냐고. 채 다 익지 않은 포도를 먹고 싶어 하는 손녀의 애절한 눈빛을 모른 척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 대여섯 살밖에 되지 않는 내가 무슨 철이 있어서 눈치를 알았을까. 할아버지가 아무리 집안의 어른이고 큰소리를 치셔도 큰엄마 눈치를 안 볼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인지 포도를 따주실 때면 늘 “너 큰어머니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아라.”라고 하셨고, 나는 눈을 껌벅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007작전을 방불케 한 은밀한 포도 따기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지속되었다. 할아버지의 깊은 속정에 고마움을 느끼며 내가 성인이 되어 돈을 벌면 꼭 효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석 달을 앞두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흔두 살의 연세에도 깔끔하게 사셨던 할아버지가 점심 진지까지 잘 드시고 난 후 뜨락에서 넘어지신 것이다. 넘어지신 그대로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잠이 드신 할아버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호상이라고 했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다가 편히 돌아가셨으니 잘 돌아가셨다는 것이 인사였다. 일가친척들이 모여들었고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마흔 넘어 일찍 돌아가신 친할머니 산소 옆으로 모셔졌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이따금 마음이 변하신 할아버지가 밤에 갑자기 지팡이를 들고 오셔서 아버지를 때리려고 하신 적이 있었다. 또 한 번은 혼자 산속을 헤매셔서 아버지랑 사촌오빠가 온 동네 산을 다 뒤지기도 했다. 약간의 치매기가 있으셨던 모양이나 다행스럽게 더 악화하지는 않았다. 어른들 말씀대로 아흔두 살이면 오래 사시긴 했다. 그래서 이젠 편히 주무셔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슬프기보다는 할아버지께 손녀 노릇을 할 수 없어서 속상했다. 몇 달만 있으면 돈을 벌어 할아버지 좋아하는 것이라도 사 드릴 수 있었는데 베풀어주신 정에 보답하지 못한 것이 마냥 아쉬웠다. 친할아버지이지만 응석 부리기보다 서당의 훈장님처럼 근엄하고 어렵기만 했던 할아버지. 속에 감춰진 손녀를 향한 사랑은 꽉 찬 포도알보다 더 단단하게 영글었나 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많던 서책이며 진기한 벼루와 붓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할아버지의 옷가지며 물건들이 태워져 연기와 함께 훨훨 하늘로 날아올랐다. 세상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확연한 차이가 비로소 실감이 난 것이다. 이후, 여름이면 그토록 탐나던 큰집 뒤꼍의 탐스러운 포도 열매가 더 이상 나를 유혹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심과 동시에 나의 관심도 포도송이에서 자연스레 멀어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서인지 나는 잘 익은 포도보다 설익은 포도에 더 많은 유혹을 느낀다. 쳐다보기만 해도 침샘을 자극해 새콤함에 눈을 찡긋해도 왠지 모르게 더 생기있어 보이는 탱글탱글한 푸른 알맹이의 유혹을 떨쳐내기가 좀체 어렵다. 설익은 포도알을 입에 넣고 와작와작 깨물어본다. 신선처럼 흰 한복 정갈하게 차려입고 흰 수염 쓰다듬던 할아버지가 눈앞에 선연하다.


※ 2025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입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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